voice21 소책자 시리즈 (1)

 

1998년 12월 24일 발행

테크닉에 몰두하는 교회들

황희상 ( voice21 편집장 )

홈페이지 http://raysoda.com/joyance

 

머리말

이 글은 지난 1998년 7월부터 12월까지 "이 시대의 교회를 진단한다"라는 제목으로 기독교개혁신보에 10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내용입니다. 부족한 원고이지만 함께 차분하게 읽고 나누기 원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그리고 저 나름대로 교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며, 이번에 작은 책자로 묶었습니다.

교회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가진 성도라면 누구나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글 역시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지난 3년 남짓 기독 월간지 TheVoice 편집을 하면서 교회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아파하며 염려했던 내용들을, 이번 기회에 하나의 주제에 담아본 것입니다.

어려서 세상을 보는 눈이 좁고, 무엇보다도 삶으로 채득되지 못한 목소리이기에 무엇을 말하기가 몹시 두렵습니다. 목회자도 신학생도 아닌 위치에서 교회를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심히 부담되는 일입니다. 내용도 문제 제기와 방향 설정을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원론적이고 개괄적인 데 초점을 모았을 뿐입니다. 게다가 10회분의 신문 연재 글을 단순히 모은 것이어서 중언부언한 부분도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다만 이 책자를 읽는 독자가 하나님 중심·성경 중심·교회 중심의 우리 신앙을 다시금 확인하는 기회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부족한 이 글을 통해 어떤 유익을 얻는다면,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과 나라를 위해 주시는 은혜일 것입니다.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주신 기독교개혁신보 송영찬 국장님과 편집을 위해 수고하신 박미란 자매님께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이 글을 쓰는 동안 문장과 어휘 선택에 있어서 특별한 도움을 준 동역자 정설 자매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드립니다.

1998년 12월, 황희상 드림

 

글 싣는 순서

1. 시작하는 글 : 한국 교계에서 바람직한 교회의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는 '새들백 교회'와 '윌로우크릭 교회'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살펴보면서 그 실체를 논하고자 한다.

2. 교회다움은 죽었는가 : 오늘날 '성장하는 교회의 모델'이라는 말은 사실상 '세상과 적절히 타협을 보는 교회'를 의미하게 되어 버렸다. 비록 우리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3. 성장이란 무엇인가 : 교회가 생명 있는 존재라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교회가 양적 성장이 안되면 이를 비정상인 것으로, 발육이 안 되는 것으로 매도하고, 자꾸만 무슨 성장 발육 촉진제 같은 것을 사용하려 든다.

4. 인간중심 철학이 침투한 신학 : 신본주의 정통에 개입한 실용주의와 인본주의는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고 오염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것'을 설교하고 있다.

5. 왜 '마케팅'이라고 하는가? :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데 있어서, 그것이 인간의 재치 발랄함으로 될 것이 아님을 철저히 인정하고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소망해야 할 것이다.

6. 열린 예배 가능한가 (1) : 인간의 편의와 실용성을 먼저 생각한 예배는,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을 띄게 되며 결국 일종의 여흥(餘興)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인간 중심의 편의주의는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의 모습이 될 수 없다.

7. 열린 예배 가능한가 (2) : 진리는 결코 부드럽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전적 타락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길을 선포하고, 인간은 정녕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뼈 속 깊이 들려주는 것이 먼저 되어야 할 터이다.

8. 바람직한 예배와 교회 운영 : 교회는 인간이 뭔가 하려는 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교회는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며 세워 가신다. 교회가 진리 안에 바로 서 있는 그 때, 하나님께서 일하시리라 믿는다.

9. 예상되는 반박들과 그 정체 : 4세기의 교부 크리소스톰(Jhon Chrysostom)은 "세상아, 네가 나를 버리느냐? 나도 너를 버리노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이 시대의 보다 '세련된' 교인들은, 세상이 자신을 버리는 것을 정말이지 못 견뎌 하는 것 같다.

10. 진정한 성장은 : 진정한 성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셔서 사랑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깊은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교회가 있고 나도 있는 것이다.

 

추천사

성도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방도 중 하나가 곧 교회입니다. 교회가 은혜의 방도라 하는 것은, 교회를 통해 성도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자신의 본분을 수행함에 있어서 유효한 효과를 가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바른 교회관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림에 있어서 가장 초보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근자에 와서 우리는 하나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교회의 정체성(identity)을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로서의 예배에 대한 상이한 견해가 그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든지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한 시도는 개혁주의 교회가 늘 추구하던 일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근자에 일어난 예배 형태 중 어떤 것은 개혁주의 예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긴장을 주는 것입니다. 이미 교회사의 흐름에서도 여러 번 반복되었지만 인위적인 예배 형태의 변질로 인한 피해는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은 독소를 담은 새로운 예배 형태가 등장할 때마다 적지 않은 교회들이 혼돈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개혁주의가 추구하는 바른 예배는 성경과 신조와 역사적인 교회 전통에 근거한 새로운 예배였습니다. 그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배의 형태 중 하나는 칼빈이 제네바에서 행한 것이었습니다. 설교를 예배의 중심에 두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그전에는 예전(禮典)에 따라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강론에 많은 역점을 두고 예배를 진행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가 그 시대에는 중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개혁교회가 추구하는 예배의 형태는 바로 칼빈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설교에 대한 관심과 비중이 다른 어느 순서보다 앞서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 반동으로 일어난 것이 요즘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음악 예배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배의 흐름에 있어 음악이 그 주된 맥을 잇도록 꾸며진 예배 형태입니다. 때로는 그러한 시도가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땐 훨씬 색다른 감동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예배가 자연스럽게 인간적인 욕구를 앞세우는 모습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노파심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예배의 대상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예배의 주인공이며 핵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위적인 수단을 앞세우는 예배에 대하여 개혁교회는 늘 반동적인 태도를 취해 왔던 것입니다. 최근 발생한 소위 열린 예배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습니다. 몇 년 전 빈야드 예배 형태가 한국 교회를 흔들고 지나간 바 있는데 이제는 열린 예배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유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빈야드나 열린 예배로 인하여 이처럼 흔들리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한국 교회가 바른 교회관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또 다른 증거일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의 인위적 성장을 중시한 것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개혁 교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러나 막상 신학적인 접근을 시도하려 할 때에는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교회의 실력이 향상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황희상 형제가 바른 교회와 예배에 대하여 개혁주의적 시각을 제시한 것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기독교개혁신보에 "이 시대의 교회를 진단하다"는 제목으로 10회에 걸쳐 연재한 원고들로서, 검증된 바 있는 내용입니다. 금번에 새롭게 탈고하여 작은 책으로 엮어 낸 열정에 먼저 박수를 보냅니다. 아울러 이 책을 통해 한국 교회가 흔들림 없이 바른 예배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1998년 11월 24일, 설악산 권금성에서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송영찬 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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