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교회다움은 죽었는가

프란시스 쉐퍼는 그의 책 '거기 계시는 하나님'에서 지난 1세기를 절대 진리의 선이 무너진 절망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우리에게 있어서 그러한 무너짐은 벌써 1세기 전의 일이 되었다. 절대적 진리가 완전히 희석되어 버린 오늘의 혼탁한 문화 속에서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하며 옳고 그름을 담대하게 밝힌다는 건, 그래서 더욱 힘든 일이 되어 간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교회의 떨쳐 버릴 수 없는 사명이기에, 계속되는 우리의 고민이 의미와 희망이 있는 것이다. 진리와 비진리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그래서 신부처럼 간직해야 할 교회의 순결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지금 이 땅 교회가 변함없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사단은 늘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교묘한 형태로 세상을 수용토록 교회를 유혹했다. 오늘날 교회는 부지중(不知中)에 점차 세상의 것을 수용하기에 이르렀고, 이것은 누구도 쉽게 인식하지 못할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이제는 교묘하게도 '세상의 것'이 '교회의 것'으로 위장하여 버젓이 행세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오늘날 '성장하는 교회의 모델'이라는 말은 사실상 '세상과 적절히 타협을 보는 교회'를 의미하게 되어 버렸다. 비록 우리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다 좋다. 당연히 교회는 세상의 문화와 세태에 민감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형제 자매들과의 친교를 위해 잘 준비된 안내 위원의 정감 있는 미소가 있어야 하고, 진리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을 채워 줄 청량제와 같은 설교도 있어야 하고, 상처받는 자들의 심령을 어루만질 포근한 안식처까지도 교회는 당연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진리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테크닉'은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구별해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가 전도의 테크닉과 복음의 본질을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살아 숨쉬는 책 사도행전을 대하며, 그 다이내믹한 초대교회의 역사를 우리는 보고 있다. 초대교회가 이같이 능력이 넘쳤던 이유는 교회가 삶의 압박 속에 찌든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었기 때문도 아니고, 세상적 가치를 융통성 있게 잘 수용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들은 누구나 다 하는 바벨론 국가의 황제 섬기기를 거부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참 주인으로 고백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들은 세상의 것을 '포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분노케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날로 성장하던 교회는 이제 굴욕적으로 무릎 꿇은 패배자의 모습이다. 세속 문화의 가치에 자발적으로 결박당함으로써 포로가 된 것이다. 스스로 무덤을 판 결과이다. 지금 이것은 양적 성장의 둔화 현상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것, 정신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교회는 코람데오(Coram Deo)의 표어를 버리고 너무 자주 세상의 눈치를 본다. 힘써 예수를 닮기 보다 세상을 본받고자 노력하며, 세상의 방식으로 그러한 자신의 나약함을 자꾸만 합리화시킨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가 될 수 있겠는가.
상대주의와 자본주의에 빠진 교회는 단지 성도들의 심리적 만족만을 채워 주는 소비자 중심의 문화를 수용하고 있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들을 내어쫓으셨던 예수님은 오늘의 교회를 향해 강도의 굴혈이라 책망하실 지 모른다. 우리의 종교적 행위들을 역겨워 하실 지 모른다. 주춤하는 한국 교회의 성장 곡선을, 인간의 온갖 상상력에서 튀어나온 테크닉을 사용해서 어떻게든 다시 끌어올렸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주님의 마당만 더럽히는 결과는 아닐는지 자성해야 할 때이다. 본질보다는 활동에 초점을 맞추는 그들에게 교회의 머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가 아니다. 인간이다. 바알신이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

이것을 오해하지 말자. 교회의 성장과 부흥은 인간의 열심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다. 오직 주께서 더하신 것이다.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진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했기 때문이었다.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 등의 것은 성장의 원인이 될 수 없는 성도의 마땅한 자세일 뿐.
쉐퍼의 글에서 다시 옮긴다. "교회의 가장 큰 재난은 진리를 진리로 나타내는 일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을 설명하는 단어가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현실 적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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