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장이란 무엇인가

지난 글에서 필자는 지금의 교회가 뭔가 더 잘 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세상의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이것은 결코 진정한 승리가 될 수 없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면 이제 구체적으로 무엇이 세속의 수용이며, 그것이 우리 주변에 어떠한 형태로 다가와 있는지를 하나씩 이야기하도록 한다.

한국 교회가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성장'이다. 그런데 그 성장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인간의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양적 팽창'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교회는 '외형적 성장'이라는 열매에만 크게 관심을 두고 있다. 아니, 관심을 두었다기 보다 아예 눈이 뒤집혀 있다. 눈이 뒤집혔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 눈이 바른 것을 보지 못하고 반대의 것을, 엉뚱한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생명이 있는 것은 성장하게 되어 있다."라는 명제를 내세우면서, "교회도 생명이 있다. 고로 교회는 성장해야 한다."라는 논리의 흐름을 용감하게 만들어 나간다. 그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성장이라는 단어의 뜻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선한 것을 기대하기란 이미 틀린 일이다. 말장난으로 계속 흐르게 될 뿐이다.

교회가 생명 있는 존재라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교회가 양적 성장이 안되면 이를 비정상인 것으로, 발육이 안 되는 것으로 매도하고, 자꾸만 무슨 성장 발육 촉진제 같은 것을 사용하려 든다. 그렇게 해서 사용되는 것이 바로 우리 주변의 각종 교회 성장 테크닉들이다. 그 중에도 지금 한창 잘 나가는 테크닉이 있는데, 그것은 미국제이며 시중에서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새들백 교회와 윌로우크릭 교회를 모르는 목회자는 없을 것이다. 두 교회는 한국 교계에 '지금 하나님께서 한참 크게 들어 쓰시는 교회'로, '성장하는 교회의 표본'으로 알려져 있다. 두 교회를 소개하는 각종 서적들을 통해 우리는 이들 교회의 사역 모습에 대해 자세하게 배우게 된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 책을 읽고 감명 받고 도전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책에서 제시한 방법들을 자신의 교회에 알맞게 가공하여 조금씩 적용한다. '21세기 목회 전략'이라는 제목을 내걸고, 아예 대놓고 모방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것이 어느덧 한국 교회 성장을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론이 되어 가고 있다. 지금 일개 방법론이라고 우습게 볼 수 없는 것이, 이를 초기에 도입한 몇몇 선각자적인 교회들로 인해 벌써 이같은 방법론이 얼마나 효과적인가가 수치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이같은 방법론을 모르고 접근했다가는 대번에 고리타분한 교회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방법론의 골자는 바로 '마케팅'이었다.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이는 상업 용어로서, '소비자의 취향과 기호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판매 전략'을 뜻한다. 따라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치밀하고 전문적인 계획이 요구된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이다. 이런 개념이 교회와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교회 마케팅'이라는 특이한 개념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지가 벌써 오래다. 새로운 세대를 전도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끌어들이려는 교회 스스로도 구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제는 누구에게나 너무나도 쉽게 먹혀 들어가게 되었다. 전통을 고집하려는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사고로 재무장하라고 오히려 권고를 당하기 일쑤다.

드디어는 이런 실용주의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예배의 형식도 달라지고, 새신자에게 좀더 인간적으로 정이 가는 접근 방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세상이 변했다. 따뜻한 차와 안락한 분위기 속에서 새신자를 맞이하고, 정서 상담 등의 각종 심리 치료까지도 제공하는 교회가 지금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좀더 철저하게 조직화되어야 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비자들에게 공감시키는 일등 공신이 마케팅이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매력적인 도구로 주님의 교회를 날로 성장시킬 수 있다. 기가 막히지 않은가! 자, 이제 바야흐로 복음의 생산성 증대가 눈앞에 있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매달리는 새로운 접근 방법이며, 성장 논리의 실체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어떤 목회자 개인의 변화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 시대 신학 전반의 부재와 왜곡에 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신학의 흐름이 이같은 변화를 겪게 되었는가? 이어지는 글에서는 그 근본적인 이유를 논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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