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열린 예배 가능한가(1)

윌로우크릭 교회는 지금 우리들도 흔히 접할 수 있게 된 새로운 방식의 예배, '구도자에게 민감한 예배(Seeker Sensitive Program)', 일명 '열린 예배' 형태를 창시한 대표적인 곳이다. 2∼3만여 명의 사람들이 모이는 이 교회의 예배 특징은 불신자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데에 있다. 교회 문화에 낯선 이들에게 교회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하고, 오히려 예배와 교회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복음의 메시지가 더욱 쉽게 다가가게 한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예배에 사용되는 용어라든지 복장, 음악 등을 일반인에게 이질감을 주는 것보다는 누구나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바꾼다. 또 각종 편의 시설을 고루 갖춘다. 교인들의 불편함을 해소시켜주고 가족 단위나 성도들 간의 교제를 더욱 친밀하게 해준다. 또한 이같은 시설들을 이용하여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시도를 잘 살펴보면, 결국 여기에 인본주의적 발상이 가득 섞여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아주 중요한 문제점을 찾아내야 되는데, 하나는 '인간 중심의 편의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지난 글에서 잠시 언급한 '복음을 속이는 행위' 그것이다.

우리가 예배의 근본적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때, 개인의 유익을 위한 예배는 이미 예배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다고 봐야 옳다.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코자 하는 바른 동기가 벌써 희석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에게 복종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다는 자세에서 벗어나 인간의 편의와 실용성을 먼저 생각한 예배는,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을 띄게 되며 결국 일종의 여흥(餘興)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모든 종교가 그랬다. 뿐만 아니라 형식의 변화를 명목 삼아 때로는 내용까지도 변질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예배는 그 준비 단계에서부터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결여되어 있으며, 오히려 '성도들에게 어떻게 하면 보다 자극적이며 흥미로운 예배를 보여줄(show) 수 있을 것인가'에만 관심이 집중된다. 인간 중심의 편의주의는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의 모습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배는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이라는 우리 신앙의 확고한 명제이다. 이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인간은 여기에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전혀 없다. 그러기에 참된 예배에는 "신적 규정"이 필수적이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에 의해 제정(制定)되고, 하나님에 의해 한정(限定)되고, 하나님에 의해 규정(規定)되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의 방법으로 우리가 순종하여 드리는 것이며, 그렇게만 된다면 사람이 모여들건 모여들지 않건 따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그를 예배할 때 지켜야 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계시하셨다. 또, 그분의 명령과 무관하게 사람들이 고안해 낸 것들은 무엇이나 그가 싫어하신다는 것을 계시하셨다. 그 계시를 통해 신앙의 선배들은 오랜 역사를 거쳐 예배의 전통을 가꾸어왔다. 우리는 그것을 이어받고 있다. 참된 예배는 이렇듯 하나님에 의해 분명하게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예배를 받으시는 주체가 그분 자신이며 그분 홀로 영광 받으시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는, 혹은 무시하는 많은 교회들이 교회를 그저 쉽게 안식하고 즐기는 곳으로 알고 편안한 교회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간다. 딱딱한(?) 예배 형식을 바꾸고 거추장스런(?) 의식들을 간소화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 줄로 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개혁을 잘 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분명히 교회는 인간 집단의 '놀이터'가 아니다. 졸음이 오지 않도록 적당히 흥미 있으면서도 그들의 종교성을 만족시켜 주는, 천주교의 고해성사처럼 죄를 고백함으로써 마음이 후련해지는 정화 작용을 해주는, 또는 성경이라는 신비로운 책을 재미나게 풀어 해석하면서 서로 즐거움을 누리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교회는 그런 데에 초점을 맞추는 곳이 아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 꾸준히 고백되었던 수많은 신앙고백서들을 다 살펴보아도, 교회를 이런 식으로 가르친 부분은 단 한 곳도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것이며, 우리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바로 알도록 먼저 힘써야 한다. 지금은 거기에 정신을 쏟아야 할 때이다. 이것이 선행된다면, 이후 교회 생활의 기쁨과 예배에의 감격은 이전의 것과 그 차원이 다르다. 육신의 안락과 비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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