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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커버스토리

 

커버스토리
 

눈감으면 코 베가는 대학, 눈감고 코 내주는 크리스천?

"난 예수를 사생아 출신의 영웅이라 생각해!"

20년 넘게 계속해온 지적(知的) 자살

홍길동, 대학에가다 역자 김성현씨(GSF 협동간사)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데스크칼럼
 

'많이 고민했다'는 것은...

커버취재

당신은 어떤 유형입니까? (파트1)

- 대학의 토론문화 속에서 크리스천의 대응 방식 -

일반 기독 대학생들의 경우 성경적인 원칙에 대한 확고개인주의와 상대주의, 다원주의에 물든 대학내 커뮤니케이션 문화 속에서 크리스천의 대응방식은 곧 그들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토론문화에서의 그들의 다양한 문화적 대응방식을 유형화했다.

유형 4로 건너뛰기 (추천하지 않음)

학문의 전당이라고 불리는 대학의 권위는 실추되었다. 모든 학문은 실용성의 잣대로 판가름난다. 쓸모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진리가 되기도 하고 비진리가 되기도 한다. 대학에서 영원한 진리라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진리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학의 우상이 되어버린 실용성은 개인주의와 상대주의 다원주의 등 현대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현대성으로 일컬어지는 이러한 양상은 말 그대로 문화가 되어 대학생들의 삶 속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들의 사상을 지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에 크리스천들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진리가 하나라고 믿는 크리스천들은 진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여기에도 진리가 있고 저기에도 진리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무엇이 진리인지도 흔들리고 있다. 대학 크리스천들의 이러한 양상은 대학 내에서 이루어지는 갖가지 토론문화 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업 중에 이루어지는 토론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크리스천은 혼란과 갈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이 이러한 문화에 어떻게 적응하며 크리스천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특별히 인터뷰 대상자들의 이름과 사진은 생략했다. 일부는 그들이 원해서였으나 기자의 임의로 모두 생략했다. 약간의 각색을 거치기 위해서.

유형 1 침 튀는 크리스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를 가지고 당당히 맞선다. 그것이 크리스천이다!

김광팔 (모대학 철학과 4학년 26세)

일러스트 장은경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선교사의 비전을 품어왔다. 그래서 대학교 1, 2학년 때는 예수전도단에 들어가 활동했다고 했다. 순간, 잘못 짚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선교활동을 하느라 그 안에만 머물러 살았을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상상했던 대로 그는 1, 2학년 때는 다른 학생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그가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학과 일에 잘 참여하라'는 것이다. 왜? 학과 일에 무관심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데 있어서 설득력을 갖기 힘들기 때문에.
철학과라는 특성 상 그는 수업시간에 자주 토론을 하게 된다. 그는 철학이 "신학과 가장 비슷한 학문이면서도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다른 면에서는 신학과 가장 배치되는 학문"이라고 소개한다. 그래서 수업시간마다 크리스천과 교수님 사이에 많은 논쟁이 있게 된다고 한다. 중요한 이야기는 지금부터이다.
1, 2학년 때 그는 열을 내면서 싸웠다. 그가 자신의 성격이 "대책없는 유형"에 해당된다고 말할 정도이니 얼마나 침을 튀면서 이야기했을 지는 상상이 간다. 문제는 처음에 그에게 적극적인 동조를 해 주던 다른 크리스천들이 점점 시큰둥해지더라는 것이다. 그 때에야 그는 이렇게 하는 것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크리스천들의 배반(?)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혼자서 매던 총대를 이제 내려놓고 그는 다른 결심을 했다.
"사소한 것은 넘기고 큰 쟁점만 가지고 싸우자. 지식은 지식이고 신앙은 신앙이니까."
그러나 그는 신앙과 관계되는 시험문제의 경우, 신앙에 배치되는 답을 요구하는 문제에는 답안 작성을 거부하는 대범함도 보였다고 한다.
그가 목청껏 자기의 목소리를 외칠 수 있었던 것, 답안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던 것은 그의 평소 지론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크리스천은 수비적이고 비크리스천은 공격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한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 오히려 크리스천은 공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적극적인 자만이 살아 남는다" 뭐 이런 생각인 모양이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단순히 내 신앙만 지키면 되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더 많은 도전과 공격이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단순히 지키는 것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공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잘 모르면서 떠드는 것은 차라리 침묵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질문에 대해 적극 동조해 준다. 그는 토론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말한다. 특히 학문적인 영역에서 신앙 얘길 하면 왕따 하는 게 사실이라고 하니, 신앙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래서 많은 경우 얘길 하는 게 좋을까 참아야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분위기상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경우는 참는다고 한다.
공격적인 그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는 뭘까? 이야기를 꺼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이 "싫다"거나 "너 얘기 해라, 나는 안 들을테니" 한다거나 하면 그는 말을 못한다. 역시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적극적으로 얘기에 참여하는 특이한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침이 튀게 된다, 당연히.
그에게, 자신 없는 크리스천이나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크리스천에 대한 대안이 있냐고 슬며시 물었다. 개인적으로 싸우기에 너무 힘이 부치기 때문에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개인의 약함을 전체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몸이 그 사람을 보호해 줄 수 있어요." 좋은 말이다. 그러나 한편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즐기고 마니 문제다. 잘 싸우라고 몸을 준 것이건만.

유형 2. 잠잠한 크리스천
누가 묻기 전에는 크리스천임을 알리지 않는다. 알려지는 순간까지 잠잠하다. 미리 나서서 말할 필요는 없다. 왜?
크리스천임을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는 속사정은 무엇인가? 자신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더 깊은 뜻이???

황세비 (모대학 전산학과 4학년, 26세)

일러스트 장은경햇빛 한 번 못 본 것 마냥 하얀 피부다. 새까맣게 그을린 기자의 팔이 무척이나 무색하다. 토론은커녕 컴퓨터 앞에만 붙어 앉아 있었을 것 같은 인상 때문에, 이번에도 잘못 찍었다는 느낌이 팍! 온다. 아니나 다를까, 학과 특성상 토론문화가 활발하지 않고 특별히 모여서 이야기하는 시간도 없다고 한다. 이 땡볕에 무슨 고생인가 싶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재촉하니 조금 말이 나온다. 주로 모이게 되는 것이 술자리인데 그나마 군대 가기 전에는 그런 과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김이 팍 센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소외감이나 고립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제대하고 나서 나이도 먹고 하니 고민이 많이 된 모양이다. 그 때부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라면 술자리에 가셨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우와, 그 이유가 더 멋지다. "그곳에 사람이 있으니까."
이제 술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내용과 거절하는 방식에 초점을 모아보자.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당연히 그 이유를 물을테니. 적어도 그는 '신념'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말한단다. 특이하다. 신앙 때문도 아니고 신념 때문이란다. 보통 사람들은 이걸 신앙이라고 한다. 한 번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더 여러 번, 자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 거절하는 것이 신앙을 지키는 최소한의 힘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생각은 좋다. 그러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보자.
크리스천이라고 밝히냐고 당연한 질문을 했더니 아니란다. 친구들일 경우에 말을 못한다고 한다. 나의 약한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이러하다는 말을 하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친구들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말하는 것이 달라진다는 거다. 그러니까 평소에 잘 해야지.
그런데 이야기가 엉뚱하게 간다.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묻는데, 자꾸만 전도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그래도 들어보자. 크리스천이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는 권유 정도로 멈춘다. 언젠가 한 번 친구에게 '교회 한 번 와 봐라. 그리고 네가 판단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단다. 전형적인 전도방식으로. 불교를 믿는 그 친구는 "네가 한 번 (절에) 와 봐라. 그러면 나도 (교회) 가보겠다"고 했단다. 그 친구에 그 친구다. 그 때, 우리 주인공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단다. 왜 그랬을까?  내가 가지는 못하면서 오라고만 하는 자신의 편협한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윽! 상대주의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평소 이런 질문 받는 크리스천들이여! 이것이 상대주의임을 기억하시라. 그리고 넘어가지 마시라.
대학생 크리스천들은 몸으로 떼우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단다. 그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말을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어떻겠는가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행동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단다.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이 수반되지 않으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묻지도 않는 문화 이야기를 한다. 크리스천들이 자기의 테두리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비판도 한다. 세상 속에 파고들어서 바꾸어야 한다며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온다. 과거에는 기독교가 문화를 주도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면서. 기독교적 입장에서 문화를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 문화를 적절히 변형시켜서 교회에 들여오는 것 같다고, 이것을 고쳐야 한다고... 이랬다 저랬다...

유형 3. 넌너난나 크리스천
나만의 하나님이면 그만이다. 누구에게 강요하고 떠들어 댈 것이 무엇인가? 나만 잘 믿으면, 나만 지키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르게 살면 되는 것이다.

박수상(모대학 경제학과 3학년, 26세)

"말을 안 해요. 하면 지니까." 시작부터 마음에 든다. 솔직하다. 어렵게 말을 빙빙 돌려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번에는 제대로 찍은 듯.
일러스트 장은경그가 공부하고 있는 도서관은 모 선교단체(차마 이름을 밝힐 수 없다)의 아지트라고 불린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선교단체 사람들이 도서관 자리를 매번 불법적으로 차지하는 모양이다. 거의 한 줄 전체에 책을 뿌려놓고 자리를 맞추어 놓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학생들이 아주 싫어한다. 그들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런 이미지가 다른 크리스천들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된다. 망신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크리스천들의 행동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부정적이기 때문에 말이 먹히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알게 하는 게 옳은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린다. 모 선교단체에 이가 갈리는 모양이다.
얼마 전 그는, 우연히 단군신상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거기에는 단군신상을 반대하는 기독단체의 성명서 같은 것이 붙어있었던 모양이다. 그 순간 역시 그 앞을 지나가던 한 사람이 그 성명서를 발로 걷어차는 걸 목격하게 되었다. 그는, 그 사람 옆을 지나가면서 한 마디 할 수도 있었겠지만 하지 않았다. 몇 마디 하다보면 감정적인 이야기가 되기 십상이고 아무 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물론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좀 다르다. 그가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한다. 크리스천답게. 교회 다니니까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그의 친구들도 인정을 한다. 그도 역시 친구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그들의 말을 인정해 준다.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너는 너니까' 하고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그는 말을 맺으려는 듯 한 마디를 강한 어조로 내뱉는다.
"난상토론 하느니 차라리 땅이나 파라" 솔직한 답변에, 인터뷰를 마쳤다.

기독 대학생들의 경우 성경적 원리에 대한 확고함이 없기 때문에 많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신학을 공부한 사람의 경우는 다를 것인가? 신학을 공부한 뒤 다시 일반학문을 하고 있는 이상한(?) 대학생들을 만나 보았다. 다음 두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두 사람의 차이를 주목하시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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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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