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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커버스토리

 

커버스토리
 

당신은 어떤 유형입니까?

눈감으면 코 베가는 대학, 눈감고 코 내주는 크리스천?

"난 예수를 사생아 출신의 영웅이라 생각해!"

홍길동, 대학에가다 역자 김성현씨(GSF 협동간사)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데스크칼럼
 

'많이 고민했다'는 것은...

커버인터뷰 2

신념과 학문은 둘이 아닌 하나

- 신적 관념을 배제하는 과학 및 학문계의 현실 -

조정일 교수(41, 광주벧엘교회, 전남대 생물교육학)

한국창조과학회 조정일 교수편집자주 : <한국창조과학회(이하 창조과학회)>는 기독교 학문적 입장을 가진 연구집단으로서 세속 학문의 흐름과 명확한 대치상태에 놓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창조과학회> 전남지부장을 맡아 활동하시는 조정일 교수님을 만나 학회와 학회 회원으로서 당면하게 되는 현실에 대해 질문하였다.

<창조과학회>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대학원생 시절이었던 1982년에 처음으로 <창조과학회> 활동을 시작했다. 참고로 <창조과학회>가 창설된 해는 1981년이었다.

<창조과학회>가 구체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당시 학계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창설 당시 매스미디어는 학회에 대해 크게 주목했으며 홍보를 많이 해주었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크게 반대하진 않았다. 그러나 결코 학문적 정설(定說)로는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연구 및 활동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을 텐데.

학문적 정체성을 얻기가 매우 어려웠고 학자들도 정작 연구 활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쉬운 예를 들자면 창조론은 논문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연구자가 대학에서 논문을 쓰는 것과 견지하는 신조를 조화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과학계는 어떠한가. 창조론에 대해 가지는 반응은 여전히 배타적인가.

매우 배타적이다. 철학자들이야 상대주의적인 입장으로 대응하지만, 과학계는 여전히 배타적이다. 과학계가 기존에 경험주의를 신봉했을 때도 그러했고 경험주의가 약화된 지금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창조론에 대해 '지적 자살'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신앙을 가진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텐데.

이러한 경향이 워낙 일반적인 까닭에 크리스천 중에서도 창조론을 개인적인 신앙으로만 국한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타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을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하는 과학자의 신념에 따라 과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학은 과학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 없고 믿음의 지배를 받는다.

창조론적 관점에서 과학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 <창조과학회>에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지금까지도 창조론적 관점에서 과학에 대한 논의를 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학회 자체적으로라도 논문집을 내고 그것을 출판하는 데 힘을 써야 하며, 이 작업을 현재 진행 중이다.

진화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자연계의 현상들이 있다. 진화론을 견지하는 과학자는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설명할 수 없는 자연계를 바라보는 과학의 입장은 알다시피 크게 두 가지, 즉 진화론과 창조론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진화론자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발견하더라도 '창조'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진화론만을 주장한다. 그들의 눈에는 진화만 보이므로 갈등의 여지가 없다.
한편 이러한 자연계 앞에서 창조론자들은 세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첫째, 신앙과 학문을 분리하여 자신의 신앙을 합리화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이들은 창조론을 신앙으로만 믿고, 학문 활동을 할 때는 진화론을 추구한다. 둘째로 신앙과 학문을 조화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사실로 인정된 진화론을 창조론과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대표적으로 창세기의 어느 부분을 진화론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등의 시도가 그것이다. 이런 시도는 대부분 신학자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세 번째로는 완전히 진화론을 추구하는 크리스천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신앙에 별 관심을 갖지 않고 진화론을 추구한다.

요즈음 신과학이나 대체의학, 민속공학 등이 대두하고 있다. 기존의 과학적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과학의 이름으로 수용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은 왜 그것을 과학이라고 하는가.

우선 과학과 공학을 구별하고 이야기를 해야할 것이다. 즉 과학은 현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고 공학은 인간의 필요와 활용을 위해 고안하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과학 철학자들 가운데엔 포스트모더니즘, 상대주의적 관점을 가진 이들이 많다. 질문에서 제기한 것들이 요즘 과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흐름인 것은 사실이다. 과거엔 서구의 과학과 습관, 행위만 옳다고 했지만 이젠 다른 유형의 것들이 가능하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런 인식의 변화에서 시스템 과학이나 뉴에이지, 신과학이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관점은, '관점의 또 다른 개방'이라고 여길 수 있다. 또한 인류와 문화의 축적에 기여했다는 점에 있어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과학은 합리성과 객관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것을 무시할 때는 또 다른 위험이 우려될 것이다. 비합리성과 주관성을 강조하는 요즘 새로운 과학 조류들은 이런 점에서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이다.

교육학의 전제는 인간을 기본적으로 선한 존재로 인정하고 있지만 기독교는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라고 본다. 교수님 개인적으로 교육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한 마디로 '갈등관계'다. 기독교 학교가 설립된다면 기독교적인 관점을 담은 내용이나 방법대로 가르치고 공부할 수 있을텐데 주어진 교육과정이 있고 그에 따르다 보니 세상 학문과 철학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있지만 기독교적 교육철학을 펴기엔 어려운 점이 많다.

대학에서 생물학과 교육학을 가르치면서 크리스천 학생들이 기독교적으로 정립된 그들의 관점을 답안에 반영하는 모습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없다. 크리스천임을 밝히는 이들은 있지만 기독교적 세계관을 밝히거나 정립하고 있는 이들은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기독교적 관점을 세상에서 펼치기 어렵다는 갈등 속에서 나름의 대응방식을 터득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먼저 공직에 있으므로 주어진 임무에 충실히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학문 자체를 '잘못'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진화론자가 밝힌 내용이라고 해서 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교육기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문제는 해석이 다르다는 점이다. 논문을 모아 교수 기법과 교과과정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해석하여 가르치는 것, 그리고 기독교 소양과 철학을 가르치는 것. 이 두 가지를 통합하려는 노력이 매우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에 <창조과학회>에서는 교사 연합회를 결성하려고 한다. 그 동안 이 두 가지를 따로따로 가르쳐왔지만 이번 시도를 통해 연합회의 회원들에게 통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즉 학습이론과 세계관을 동시에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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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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