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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데스크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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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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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크칼럼 '많이 고민했다'는 것은... voice21 편집장으로서 기자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 있다. "크리스천은 고민을 합니다. 크리스천이라면 고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치열하게 살면서 끊임없이 고민하십시오. 고민한 흔적을 기사를 통해 보여주십시오…." 그래서일까? (설마..) 우리 기자들은 고민이 참 많다. 이런 저런 잡다한 고민들부터, 보기에도 거창한, 그런 수준 높은 고민까지 하면서들 산다. 쓸'고'(苦) 번민할 '민'(悶)... 고민하는 삶은 그 과정이 너무나도 쓰고 힘들다. 그러나, 자꾸 말하지만, 크리스천은 고민을 하면서 살수밖에 없다. 세상에 발을 딛고 살지만 세상과 다른 세상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벌써 이 문장 자체가 고민스럽기 그지없다.) 처음엔 통 고민을 안 하며 사는 것 같았던 후배들이, 요즘은 툭하면 "고민중"이라며 머리를 싸매고 빨간 신호등을 켠다. 나 지금 고민중이니 건들지 말라는 것이다. "어라?" 그럴 때면 교만한 나는 이번엔 그가 도대체 뭘 어떻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고민을 안 하고 사는 사람들 때문에 고민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그들이 고민을 시작한다 하니 또 다른 고민이 생긴 것이다. 이제부터는 고민을 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어떻게 고민하느냐가 문제인 셈이다. 흔히, "고민한다"는 것은, 그 사고의 흐름이 발전적이고 정당한 방향으로 개선되어 가기보다는, 자꾸 오래된 사상들, 즉 인류 역사를 통해 사람들이 만들어 낸 수많은 철학과 가치관과 사상의 흐름들 중에서 적당한 답을 찾아, 그 흐름에 확 휩쓸려 가는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고민함이라는 과정이 언제나 우리의 올바른 이성과 제대로 된 판단력에 의해 이끌어지고 진행된다면야 상관이 없겠지만,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그저 막연히 "우리가 좋은 결론에 이를 것이다"라는 환상에 빠져있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 내리기 위해서는 성경적 세계관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그만큼 정립된 세계관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데 언제나 문제가 있다. 모든 생각과, 행동의 기준과 동기가 되어야 할 하나님의 법칙이 마음과 정신을 꿰뚫고 있어야 하건마는,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쉽게, 그 결정권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잡다한 세속 정신과 사상과 전통의 거대한 흐름에 맡겨버리고 마는 것이다. 성경대로 한다고 하면서 결과는 자율주의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주위에서 안타까운 사례를 종종 접했으리라 생각한다. "고민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빠지기 쉬운 함정을 경계하자. 우리가 "많이 고민을 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결과를 너무 믿지 말자. 성도라 할지라도 여전히 타락한 존재로서, 손상된 이성, 불완전한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지하고, 늘 고민함의 과정 속에 틈타기 쉬운 세속 사상과 인본적 가치관을 떨쳐버려야 한다. 이를 위해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늘 필요한 것은 '계시 의존 사색'의 변함없는 원리인 것이다. 오직 성경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맥을 찾아, 그에 따라 그만큼 사고하는 것이 우리의 지적 활동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그 원리에 따라 우리는 고민의 결과를 검증하는 기준을 세워야 하며, 그것은 곧 교회 공동체에 최종 결정의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된다. (그 교회가 진리 안에 바로 서있는 교회일 경우.) 상황 판단에의 최종 결정권이 자기 개인에게 있다고들 말하는 것은, 그것이 결국은 그렇게 되고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며 그렇게 말을 해 왔던 것 뿐이지, 실은 결정권이 공동체에 있으며 교회에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자율주의는 언제나 성공할 수 없으며, 그것은 곧, 진리에 대한 반역이 된다. V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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