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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취재
당신은
어떤 유형입니까? (파트2)
- 대학의 토론문화
속에서 크리스천의 대응 방식 -
일반
기독 대학생들의 경우 성경적인 원칙에 대한 확고함이 없기 때문에 많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신학을 한 사람의 경우는 다를 것인가? 그래서
신학을 공부하고 일반학문을 하고 있는 이상한 대학생들을 만나 보았다.
다음 두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두 사람의 차이를 잘 보시라.
유형 4. 바른 길 제시형
옳은 것을 옳다 말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
가만히 있는가? 하나님을 핫바지로 아는가?
김명철
(모대학 철학과 2학년, 26세)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준비하느라고 바쁜 그를 붙잡고 아주 숨가쁜 인터뷰를
했다. 요점만 간단히. 그는 토론자들이 크리스천인 경우 신학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편이다. 그러나 크리스천끼리도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상대주의가 만연해 있음을 많이 발견한다고 한다. 그런 경우 그는 주저없이
말한다. 한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차이보다 공통점을 부각시키고
나누는 게 중요하지 않느냐고. 그는 단호하다. 그가 느끼기에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상대주의는 '자신의 열등감을 보완하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 같다고 한다. 그가 보기에 상대주의는 토론을 막는다. 토론에서는
공통점을 찾아 지향하는 게 중요하지만 상대주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크리스천들이 기독교에 대한 공격을 해 올 때
그는 삶으로 이야기한다. 그들이 공격하는 대부분은 왜곡된 시각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그럴 때는 참된 기독교와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그렇지 않음을 알리고 스스로 보여주려고 많이
노력한단다. 그러면 그들도 돌아온다고. 정말 그럴까? 뻘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다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맨날 붙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잠깐 만나는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삶으로 보여주는 것은 많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지 않는가?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어려운 경우, 특히 수업시간의
발표나 강의 시간에 진행되는 토론의 경우는 좀 다르단다. 이론에 대한
발표의 경우, 그것 자체가 불완전한 것임을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신의
부재를 통해 아는 영역은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이론이라 하더라도 자연의
영역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멋진 말이지 않나? 최대한 깊이 알려고
노력하되, 신의 영역을 전제하고 발표한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감추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신학생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생긴다. 그렇다면 일반대학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크리스천으로서 학문을 하려면 모두 신학을 택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일반대학의 장점을 이야기한다.
신학교와 일반대가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신학생들의 경우 신에 대한
학문을 한다는 것 때문에 우월성을 갖고 있고, 다른 학문에 대해서는
매우 폐쇄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대학의 경우 개방적이기 때문에
신학을 배경으로 다른 학문을 섭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 몰랐다. 그는 일반대학을 다니면서 오히려 철저하게
따지고 합리적인 논리로 이야기한다. 불완전한 학문영역을 드러냄으로
더욱 믿음에 이르게 된다고 하니, 미천한 기자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그러나 "신학을 하고 일반학문을 하게 된 것이, 신학교 안에만
머물러 있던 연약한 인간을 더욱 튼튼한 신앙인으로 설 수 있게 하는
것 같다"는 그의 고백은 아름답다.
유형 5. 침묵하는 크리스천 신학적 배경을 가지고 일반학문의 길을 선택했으나,
쉽게 입을 열지는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생각이 많아서 함부로
말하지 않지만,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만큼은 확신하는 크리스천...
내 것이 아니면 말하지 않는다!
허호정
(모대학 철학과 2학년, 27세)
사슴처럼
맑은 눈이 그의 침묵을 대변하는 듯 하다. 뭔가 깊은 뜻이 있는 듯.
그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경우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지만
되도록 논쟁은 피한다. 특히 크리스천들과는 더더욱 그렇다. "상식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성경이 가르치는 일반적인 교훈들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라는 반문에 할 말이 없다. 비크리스천들의 경우
지식적으로 더 많이 아는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관점이
다른 것 또한 사실이란다. 그러면서, 성경이 표준이고 원칙인 것은 사실이나
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남북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나 신앙적인 측면에서
예측하고 사고하여 방안을 모색해 보지만, 일반 사람들의 경우 경제적인
측면이나 정치적인 측면에서 남북통일의 필요성이나 방법들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내 원칙을 강요하는 것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진리가 가리워지는 경우에 말을 해야 하는데 상대주의나 개인주의
앞에서 말하는 것을 멈추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서도
그의 대답은 반대다. "멈추는 게 오히려 지혜롭지 않나?"
또 반문이다. 그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충분한 논리를 펼 수 있으려면
권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학생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권위가 필요하다. 그래야 그 논리에 수긍하고 인정하기 때문이란다.
그가 침묵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크리스천들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가치관을 사회전반에 실천하며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때,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고 본다. 진리체계를
부인하라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는 한동대 교수님들을
존경한다. 성경적 가치관을 사회 전 분야에서 실천하자는 취지로 한동대를
세웠고 그러한 이념으로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을 높이 사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회개혁은 사회 어느 한 부분에서만 일
어나는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 사회에서 어느 한 부분만 개혁한다고 사회개혁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회전반에 개혁이 일어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수업시간에 믿지 않는 자에게
침을 튀며 강요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자리에 서라는 거다.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위치에서 살라는 거다."
"진리를 가리는 것은 우리의 소극적 행위라기보다 우리의 무지
때문이다." 멋진 말을 툭 내뱉는다. 사람들이 진리를 말한답시고
떠드는 것에 어지간히 지쳐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그는 무지한 크리스천들이
변증한다고 떠드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흔히 변증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 학문의 허구를 드러내고 그 위에 성경의 올바른 진리체계를
드러낸다는 뜻인데 많은 경우 잘 알지 못하고 떠드는 것을 본다.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현명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기독교는 논리적, 체계적이라고
보는데 더러는 감정만 앞세운 광신자들처럼 자신의 신앙체계만 고집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그러나, 말해야 할 때
말하면 좋지만, 불완전한 인간이 충분히 알아서 말할 때가 오기나 할
것인가? 기자의 무지한 질문에 대해 그는 무안을 팍팍 준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기독교의 가르침을 알기는 어렵고 세상 학문의
벽은 어마어마해서 감히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점진적인 계시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세상 학문의 허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적인
가치관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계속되는 그의 주장이다. 그가
말하는 얘기할 때라는 것은 자신의 신앙에 대한 질문이나, 기독교 전반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때라는 것이다. 그럴 때는 당당하게 기독교의
대변자로서 말하지만 그 외의 경우 개인적인 가치관을 주장하는 것은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자신의
가치관을 자신의 것으로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사회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위치에 서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문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문학의 영역에서 신의 존재 자체를
무너뜨리며 기독교의 정체성마저 뒤흔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이러한 문학의
영역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쓸데없는 논쟁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이성관이나 결혼관 등이 바탕이 된 글들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겸손한 고백을 들어보자. "나는
나이가 들수록 어떤 한 주장을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체계가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 때문에 끝까지 주장하지 못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 절대진리라고 말하면 안 된다. 더 넓은 가치관,
신앙, 지식을 갖게 되면 더 넓을 것을 보게 되는 법이다.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아는 범위에서 말하되, 그것이 전부인양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다섯 가지 유형의 크리스천들은 비단 다섯 사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과연 당신은 어떤 유형의 크리스천인가? 성경에서 요구하는
크리스천의 모습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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