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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교회, 점검하면서 대안교회라고 불리거나 스스로를 대안교회라 말하는 교회들은 그 시작부터 기존교회와 다르다. 대안교회의 탄생이 기존교회의 불합리한 모습이나 비성경적인 모습에 반(反)한 새로운 움직임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존교회의 기복신앙적 요소, 율법주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배타적 성향 등은 이미 불신자들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까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기존교회와 달리 율법 안에서의 자유함과 성도의 따뜻한 교제, 적극적인 사회 참여 등을 말하는 대안교회들은 '테크닉에 몰두하는 교회들'의 모습(8월호 커버스토리 참조)에 지쳐있는 성도들에게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현상은 신학적인 흐름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 기존교회의 잘못된 양상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입장을 가진 신학들이 한국교회에 뿌리 내리는 과정 속에서 생겨난 자연스런 결과이다. 대안교회의 탄생 역시 그렇다. 기존교회에 영향을 미쳤던 신학과는 또 다른 입장의 신학이 도입되고 정착해 가는 과정 속에서 대안교회라는 새로운 모습의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신학의 성립과 정착은 교회의 모습과 신앙의 형태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신학적 흐름을 통해 지금까지의 한국교회의 모습을 살펴봄과 동시에 앞으로 한국교회에 바르게 세워져야 할 신학이 무엇인지,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초기 한국교회, 흐려지는 개혁신앙 초기 한국교회에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라는 두 개의 커다란 신학적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색채가 분명히 다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그들은 그 차이점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복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한국의 상황 때문이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한국 고유의 토속 색채를 유지하여 거부감을 없애면서 연합적인 전도를 통해 우리 나라를 복음화 시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서 하나님의 초자연성, 사탄의 실재성들을 부정하는 경향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들은 인간의 이성을 강조했고, 성경은 하나의 윤리나 도덕을 기록한 책 정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반발로 성경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신정통주의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들은 성경이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을 뿐이며 자신의 삶에 와 닿을 때 비로소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사성을 갖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결국 신정통주의는, 하나님의 초자연성과 초월적 체험은 회복했으나 역사성과 성경 계시를 깨뜨리고 만 것이다.
혼란에 빠진 한국교회, 한국교인 이런 상황 가운데서 자유주의에 대한 보수적 입장으로 '근본주의'라는 새로운 신학적 흐름이 생기게 되었다. 그들은 연대를 맺고 몇 가지 근본 핵심조항을 두었다. 이것은 자유주의자들이 부정한 하나님의 초자연성과 신성을 회복시켜 나가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후기 근본주의에 접어들면서 이들은 흑백논리와 율법주의, 이원론적 사고 등으로 초기의 순수성을 잃어 버렸다. 문화에 대한 배타주의도 이 때부터 비롯된 것이다. 한편, 1928년 한국에는 현세 구복을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은 많은 교회들의 반발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곧 사그러들었다. 그러나 1950년 성령, 은사 등을 강조하며 일어난 신오순절 운동은 열광주의와 왜곡된 성령론 등에도 불구하고 급속히 퍼져 거의 모든 교단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혼란을 거듭하던 한국교회사에, 1970년대에 이르러 하나의 세력이 더 가세하면서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선교단체의 탄생이 바로 그것이었다. 선교단체는 열광주의와 물량주의, 성장·상업주의에 빠진 한국교회에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그러나 이들 역시 세대주의와 경건주의라는 한국교회의 주된 신앙의 형태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새로운 신학의 태동 이러한 어두운 상황 속에서 젊은 크리스천들은 '힘없는 기독교'에, '사회와 문화적 책임을 지지 못하는 기독교'에 회의를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교회의 양상과 급변하는 사회적 변화에 발맞춰 '복음주의'가 서서히 그 움직임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서의 권위와 복음의 유일성, 전도의 필요성과 긴박성을 재확인하며 일어난 이 복음주의 운동은 1974년 7월 스위스 로잔에서 일어난 '세계 복음화 국제 대회'를 계기로 빠르게 확산되어 갔다. 이어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개혁주의' 신학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같은 신학적 흐름에 발맞춰 교회의 각종 사회참여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를 기본으로 하는 개혁주의 신학에 기반하여 사회운동을 실천하고자 하는 움직임과 함께, 복음주의권에서도 활발한 사회운동을 벌이면서 '창조 과학'의 강조와 기독교 대학 설립 등을 거론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참여 운동들은 또 다른 문제점을 낳고 말았다. 복음주의와 개혁주의가 신학적으로 분명한 입장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신학적 논증없이 사회참여라는 상황논리에 서로의 입장을 절충하고 말았다. 이 때부터 교회 안에도 개혁주의와 복음주의가 혼합된 두리뭉실한 신학이 흘러 들게 되었다.
그러나 개선의 가능성은 남아 뚜렷하게 구분 지을 수 없는 이러한 신학적 흐름 속에 한국교회는 혼란스러움을 더해갔다. 무엇보다 기존의 복음주의와 개혁주의의 혼합은, 종교개혁 당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세워진 개혁주의가 교회 안에 정립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복음화 초기 우리 나라는 개혁주의 신학을 제대로 공부한 선교사들에 의해 칼빈주의와 개혁주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개혁주의가 우리 나라에 들어올 당시, 피선교지인 우리 나라는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 나라는 일제 치하에 있었고, 더구나 복음을 수용할 수 있는 계층이 주로 무지한 사람들이었다. 목회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교양과 학문적 소양이 미비한 그들에게 철저한 '신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한국교회의 초창기에 개혁주의 신학을 구체화 시키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1900년대 초반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 문답을 우리의 신조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이것들이 공식적으로 한국교회의 신앙고백으로 채택되었다. 즉 개혁주의 신학이 대부분의 한국교회에 기본적인 신학으로 자리 잡았다는 말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흐름상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개혁주의 신학이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은,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이며 종교개혁 당시 하나님의 섭리가 충만히 드러났던 개혁된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 여기까지 내가 아는 전부야.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지만 아는 게 없어서 말야. 너에게 내 무식을 드러내면서까지 대안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따분하고도 어려운 신학적 흐름을 애써 이야기 한 이유를 아는지 모르겠다. 더운 여름, 두 달 동안이나 지리하게 교회 이야기를 한 이유를 말야. 가만 생각해 봐. 우리가 교회로 모인 것이 얼마나 엄청난 기적인지. 타락으로 인해 서로 불화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할 수 있음은 분명한 기적이야. 그런데 우린 그 기적같은 일을 체험하면서도 늘 불평 불만을 일삼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일을 자행하고 있어. 교회는 하나야. 교회로 모인 우리는 '일치'의 삶을 살아야 해. 기독교가 단순히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관계에만 국한된 것이라면 분열은 당연히 있을 수 있겠지. 그러나 기독교는 그 이상이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삶의 의미를 깨우쳐 주신 것은 우리를 세상에서 역사하는 그의 '교회'가 되라고 부르셨기 때문이지. 나 하나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로 부르신 것이라구. 그럼 일치란 무엇일까?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불편하지 않은 관계인 척 하는 것이 일치니? 아니. 오히려 차이점을 사랑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올바른 하나의 진리를 찾아 나가는 것이지. 그렇게 일치를 이룬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위해서는 개혁과 개선이 뒤따라야 하는 거야. 그럼 어떻게 개혁하고 개선해 가야 하느냐가 남아 있는 문제겠지? 찰스 콜슨이란 사람을 알고 있니? 그는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필가이자 연설가이며 칼럼니스트란다. 그가 쓴 'The Body'라는 책을 보자.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는가? 인간이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이나 공식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른바 억측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고 가정하는 것이고, 확실하게 구원을 보장받는 방법을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경과 다른 이러한 억측은 교회의 증거를 병들게 하고 절뚝거리게 하여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결국에는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망각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게 되는 것이다. 불일치보다 더 성도간의 교제를 해치는 것은 없다." 그래, 우리 불일치가 더 이상 교회 안에 머물러 있게 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다면 그 부르심에 합당한 교회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니?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해. 이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 무슨 말인지 정리가 안 된다구? 에이… 그래, 알겠어. 나 혼자 지껄이고는 너에게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건 무리라는 걸 나도 알아.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이번엔 내 무식이 가장 큰 잘못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파격적인 서비스를 하나 제공해 줄게. 눈 내리는 12월, 밖에 나가기도 귀찮고 시간은 남아 도는 그 때 다시 너에게 편지를 띄울게. 12월에 우리 다시 더 깊은 이야기를 해 보자.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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