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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 잡지의 오늘과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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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매스컴, 그 필연적 한계

모든 운영을 사업 정신이 아닌, 순교하겠다는 정신으로 일간해야 한다

본주의 사회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이나 상품을 제조하는 구조가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물품을 생산해 놓고 고객을 기다리는 식으로 경제가 돌아가는 사회이다. 좋게 말하면, 자기 희생적 노동과 투자를 통해 타인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셈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람들의 탐욕을 자극하여 허영심이 충만한 사회로 만들어, 없이 사는 사람들을 상대적으로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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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 속의 인간성

가진 자를 사회의 영웅으로 대접하는 행위는 인간성의 본질을 소유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풍조를 만연시킨다. "어떤 인간입니까?"라는 물음이 아니라 "얼마나 가지고 있으며 어떤 근사한 직업에 종사합니까?"라는 것에서 대화는 시작된다. 사람의 신용도와 신뢰성을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기준으로 측정한다. 돈 안되는 정의와 양심과 윤리는 그 어느 조직에서도 천대받고 결국 배척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직을 지탱하는 것은 조직원들이 만들어 낸 자본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성품 그 자체를 확실히 보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24)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라이벌(?)로 재물을 꼽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재물까지 섬길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재물을 섬긴다면 이는 필히 하나님을 미워하고 있다는 증거요, 하나님을 섬긴다면 이는 필히 재물을 싫어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이 본문에 담긴 더 중요한 사실은, 결코 재물에서 하나님으로 건너가는 방법도 없고 하나님에서 재물로 건너오는 연결선도 없다는 점이다. 각자 폐쇄된 세계를 고유적으로 형성하고 있다. 즉 돈 많이 모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것은 전부 거짓말이다. 하나님의 일은 재물과 전혀 무관한 다른 차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흔히 다음과 같은 경솔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나중에 변호사 되어서 없는 자를 위해 변호할래요"라든지, "나중에 의사 되어서 낙도 아이들에게 실비로 치료하며 사는 슈바이쳐 같은 의사가 될래요"라든지, "멀리 나이지리아나 알라스카의 선교사로 갈래요"라는 포부. 대단히 훌륭하게 들리겠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얼마나 식견 없는 생각인지 단박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변호사나 선교사라는 직업과 전도 기술자라는 기능 소유자 되기 이전, 선교사와 무관한 상태에 놓여 있는 지금의 인간성이 과연 무엇을 지향하고 있느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계 매스컴의 위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조직체는 장사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사업을 해도 일단 운영이 되어야 한다. 흔히들 '기독교 문화' 혹은 '선한 문화 창달'이라는 모토로 사업을 시작하지만, 그 기초부터가 자본주의 사고 방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 열매도 필히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를 최종적인 조직의 정의로움으로 삼게 된다. 얼마 못 가서 본색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물론 교회도 마찬가지요 선교 단체도 마찬가지이다. 직원들의 월급은 매달 나가야 하고 직원(목회자)을 굶겨서는 조직체 고유의 상품인 서비스(설교)의 질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빚쟁이에게 빚을 제 때에 갚지 않는다든지 직원들에게 제 때에 봉급이 안 나가면서도 "구제하는 좋은 단체입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위선적인 행위이다. 자기 직원도 구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돕는 건전한 단체라 할 수 있는가. 빚쟁이들에게 돈이 없어 못 갚는다는 슬픈 소식을 전하면서 어떻게 제 3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겠는가? "너나 잘해!"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흔히 '선한 문화 창달'을 부르짖는 쪽에서는, "돈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 쓰기 나름이다. 칼을 주부가 사용하면 선하지만 강도가 사용하면 나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란 있는 칼을 사용하는 사회가 아니라 없는 칼을 일단 만들어 내도록 요구하는 사회임에 문제가 있다. 이 시대는 자기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허영심과 사치성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고 유도하는 쪽으로 노동이 투입되어야 칼이 나오든 돈이 나오든 한다. 마치 어린이들에게 10만원짜리 신발을 사 신게 만들어야 사업 경쟁에서 살아남고 직원들 월급도 줄 수 있는 것이다.

즉, 양심을 잠재우고 악에게 타협한 대가로 돈이 나오게 되어 있고 그 돈을 기반으로 해서 더욱 더 돈을 벌어야 그나마도 조직이 운영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이다. 예를 들어, 선교비를 많이 내는 병원 원장이 있다면 평소에 그 돈을 어떤 식으로 벌어 들이고 있느냐를 조사해 봐야 한다. 무리한 CT 촬영을 환자 측에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간호사에게 돌아갈 이윤으로 부동산 사 모으는데 혈안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병원 시설을 개선하고 보완해야 하는 돈을 증권 투기로 날리지는 않는지, 의료 기술 향상과 지식 확보를 위해 공부해야 할 시간에 바람이나 피우고 있지는 않는지 조사해 봐야 한다.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신명기 23:18)

인간이 아무리 자신의 직업과 재물 속에 자아를 숨겨도 하나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목회자나, 교계 신문·잡지나 방송이나 서점이나 출판사를 운영하고 종사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바른 인간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지 자신의 관련된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물량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립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죄인을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가 관통되는 모든 현상에는 인간의 속살이 보인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는 오직 그 사회의 존재성(국가이면 국가, 민족이면 민족) 그 자체가 선이요 의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에 대한 미련과 애착과 애정(사랑)을 맹목적으로 보이지 않는 자는 모두 배척하고 물리쳐 버린다. 여기에서 교계 매스컴의 위상이 난처해진다. 하나님의 복음은 전해야 하겠는데, 자신의 조직이 처해 있는 현장은 오직 인간만을 위하지 않으면 추방당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1:8, 10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사람을 좋게 하지 아니하면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을 상품으로, 설교로 제시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입장. 여기서부터 오늘 한국 교계 매스컴의 한계성이 보인다.


영세 교계 매스컴이 범람하는 이유

과다 경쟁이 되고 있다. 실 수요자는 몇 안되는데 너무 많은 잡지사나 출판사나 신문사들이 뛰어들고 있다. 복음에 관심을 두고 책읽기를 원하는 자들이 날이 갈수록 감소 추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스컴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가 부도를 내면서 뒤로 넘어진다. 교계 매스컴뿐만 아니라 개척 교회의 실상도 이러하다. 소비자의 구매력은 거의 떨어졌는데 갖가지 교회들과 선교 단체와 소위 '목회연구원', '전도자 훈련원'이라는 이름의 영업 단체들이 쉴새없이 등장된다. 수요 공급의 불균형은 상품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고, 할인 판매 내지는 덤핑 세일을 거듭하면서 결국 노는 목회자, 노는 선교사, 백수 건달 같은 '선한 문화' 종사자들을 다량으로 배출하게 된다.

확실히 그 동안의 수요는 거품이었다. 교계 경제 수요가 이렇게 거품으로 일관된 원인은 무엇인가? 다음과 같은 싸이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재물이 우상이 됨

2.잘 살기 위해 신에게 찾아 들기.

3.고소득이 학력 높이기로 이어짐.

4.학력 증가가 곧 신분 상승의 원인이 됨.

5.사회에 엘리트층이 두꺼워짐.

6.구태의연한 설교에 짜증을 냄.

7.젊은층부터 교회 이탈 현상 심화됨.

8.경제 성장 둔화 현상을 보임.

9.고소득 직종 선호로 경쟁 심화.

10.교회 다닐 시간 없음.

11.부모들, 아이를 교회에 보내지 않음.

12.공부에 소질 없는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박탈감 느낌. 이를 만회하려 신학교 지원.

13.지원자 늘어 공급도 자연 증가. 소자본으로 출발, 공납금으로도 운영 가능해짐.

14.신학교 출신이 갈 곳 없어 기존 교회를 기웃거리며 선교비 타내기 위해 몸부림.

15.경기 침체로 선교비마저 조달 어렵게 됨. 십일조 꼬박꼬박 내고 헌금에 후하던 옛 교인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별세.

16.소자본으로도 교계에 남을 수 있는 광고비로 운영되는 신문·잡지사나 기독교 계통 서점, 성구사, 광고사, 출판사나 팬시 사업에 뛰어들어 현상 유지나 기대함.

17.교회에 젊은이가 없으니 설교의 질까지 떨어져 신비 체험 등 일회성 자극에 치중. 성경의 내용이나 심오한 진리 탐구, 논리성이 요구되는 일 기피.

18.교인들은 스트레스 푸는 장소로 교회를 이용. 교회가 회의 해서 놀러 가는 장소 정하는 곳으로 전락.

18.갈수록 기독교 서적 판매율이 떨어짐.

19.천이백만 성도라는 환상은 깨지고, 남은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교계 대불황.


바람직한 교계 매스컴상

'하나님이고 예수님이고, 우선 나 살고 보자'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이런 자들까지 교계 매스컴에 종사해서는 안된다. 복음을 '모르고' 있는 대다수 한국 교인을 상대로 해서 그들에게 '복음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건 자발적으로 거품에 빠지겠다는 꼴이다.

눈에 띄지 않는 택한 자, 복음만이 있으면 그 어떤 처지나 직업에도 감사하는 그런 자를 위한 매스컴만이 후원비를 받을 자격이 된다. 일하는 소에는 멍에를 매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린도전서 9:14)

그것도 그 단체가 자체의 존립을 위해 일하게 되는 그런 패역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만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항상 라이벌 되는 잡지사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도 주가 되시고 활동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활동에 관심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모든 활동은 오직 복음 중심으로 일하시는 활동이며, 복음의 내용은 교회나 단체나 민족이나 국가의 부흥과 번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가 지닌 구원의 능력만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라디아서 1:7-10)

그리고 운영함에 있어서 사업 정신이 나와서는 안되고, 오직 십자가 정신만이 나와야 한다. 즉, 순교하겠다는 정신으로 일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직원들이 다음 말씀에 대하여 믿음을 보이며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 6:31-34)

이근호 목사 / 박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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