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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부터 연속기획이 시작됩니다. 지난 호 커버스토리 "믿으라 복받으라 돈내라 집짓자"를 다루면서 언급하였던 한국 교회의 잘못된 점들을 이번 호부터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진단해 보고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5월호에서는 '헌금'을 다루었습니다. 헌금은 '믿음의 표현'인 만큼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각자가 헌금을 함에 있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점이 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헌금을 관리하는 교회의 입장에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다음 달은 창간 2주년 특집호 관계로 '연속 기획'은 쉽니다. 7월에는 '올바른 축복관'에 대해 살펴봅니다, 세상이 말하는 축복의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는 상당수 한국 교회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복의 개념을 살펴볼 것입니다. 8월에는 '성령 충만함과 은사'에 대해 알아볼 것입니다. 9월에는 '이단'에 대한 상식과 한국의 이단 종파들에 대해 심도있게 다룰 생각입니다. 10월에는 '전도'에 대해, 11월에는 '기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끝으로 12월에는 지금까지의 논의들을 정리하면서 한국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개혁되어야 할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다룰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관심 가져 주시고기도로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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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은 믿음의 표현이다.

 

십일조는 헌금의 하한선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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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관련 참고 서적

 

성경에 비춰 보는 것은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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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은 믿음의 표현이다.

십일조는 헌금의 하한선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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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2장 41절부터 44절에는 예수님께서 두 렙돈의 헌금을 하는 과부를 칭찬하시는 대목이 나온다. 예수님께서 헌금하는 자의 처지와 마음가짐, 액수에까지 소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계심을 알 수 있다.

'헌금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할 그리스도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헌금은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필수 요소이며,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헌금을 하거나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헌금은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믿음의 표현인 것이다.

헌금 생활은 그리스도인 자신의 믿음 생활의 지표라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더욱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헌금생활을 항상 점검해야 한다.

자칫 방심하여 습관처럼 행하게 된다면 예수님의 뜻에 어긋남은 물론이고 '외식하는 자'가 되기 쉽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6:1)"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헌금이란 무엇인가

박철수 목사는 '헌금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표시요, 헌신의 고백'이라고 말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헌금이란 무엇인가? 돈의 문제는 윤리적 차원의 문제이기 이전에 신앙의 선택과 결단의 문제를 제기한다. 돈은 사랑의 진정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사랑은 단지 입술의 고백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증거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긴다면, 돈을 미워하고 경히 여겨야 한다. 또한 그것은 마음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헌금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표시요, 헌신의 고백이다."(빛과소금,142호,p.104)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10장 17∼22절에서 '영생'에 대해 묻는 재물이 많은 한 청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헌금은 단지 자기 소득의 일부를 떼어 하나님께 드리는 차원이 아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헌신의 문제이며, 고백의 문제이다. 또한 '순종'의 문제이기도 하다.

 

십일조는 헌금의 하한선

저자 박민홍 장로는 그의 책 [십일조의 혁명]에서 십일조의 폐지를 말하고 있다.

"율법 아래에서 여호와께 드린 예물은 크게 나누어 하나님께 드린 제사 제물과 그 제사 제물을 관장하던 레위인에게 준 십일조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거룩한 제물이 되어 주심으로써 하나님께 드릴 제물은 이제 필요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제사가 없어진 이상 제사를 관장하던 레위인의 존재와 십일조는 마땅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박철수 목사는 헌금을 얼마나 바쳐야 하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약 성경은 십분의 일을 말한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 와서 십분의 일은 폐지되었다. 그것은 마치 구약의 성전과 제사 제도가 폐하여진 것같이 폐하여진 것이다. 그것은 한낱 의문(儀文,letter)이요, 낡은 것이다(롬2:25∼29,골2:14∼17). 그러므로 다 바쳐야 한다. 돈과 함께 마음도 바쳐야 한다(고후8:1-7)."

그는 [축복의 신앙]이라는 저서에서도 헌금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약 성경에는 헌금을 얼마 바치라는 말이 없다. 그러나 신구약 전체를 볼 때 이제 구약의 십일조는 헌금의 하한선의 의미가 있음을 보게 된다. 구약 성경에는 십분의 일만 내면 그것으로 끝났다. 더 이상 내야 된다는 강조가 없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십분의 일의 헌금은 최소한의 것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신약 성경에 들어와서 십일조의 의미가 내면화되고 더욱 강화된 것이다."

고린도후서 8장 3절을 통해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또한 9절에서는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 말하고 있다.

신약에 들어와 헌금은 더 이상 율법의 차원이 아닌 헌신의 차원으로 격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린다"는 표현으로 헌금에 대해 말한다. 십일조를 꼬박꼬박 내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삶을 '통째로' 드리라는 것이다.

즉, 신약에서는 구약에서처럼 얼마를 내라고 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힘에 지나도록' 헌금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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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생활의 자기 점검은 필수

칼빈은 "하찮은 재물로 하나님을 회유하는 짓을 그만두라"고 말한다. 칼 마르크스 역시 [자본론]에서 돈과 인간의 관계를 언급한다. 그는 "그 욕망은 끊임없이 갱신되고 끊임없이 돈을 구하도록 명령한다. 돈은 언제라도 출동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 욕망의 저장고이다"고 말한다.

예수님 역시 돈의 위력을 인정하신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율법이나 형식에 얽매여 헌금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점검해 보아야 한다.

[십일조의 혁명]은 "만약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서도 율법에 근거하여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분명 살아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무서운 죄가 되는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기독경제연구회의 김승욱 총무는 월간 [복음과 상황]에 기고한 글에서 "그리스도인이 십일조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 규정하기 어렵다. (중략)은혜대로 해야 하는 헌금을 이렇게 규정하려고 하는 시도는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 유전집을 만든 것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율법이나 형식에 얽매여 헌금을 하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 보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바리새인'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음가짐이다.

우리는 헌금을 할 때 '이름을 밝혀야 하느냐'로 고민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렇다 할 답이 나와 있지 않다. 성경은 오히려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고 말한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3-4)

성경은 헌금을 할 때 자신도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즉, 스스로 헌금에 대해 의로 여기거나 자신을 대견히 여기지 말라는 말이다. 결국 문제는 마음가짐이다. 설사 무기명으로 헌금하고서도 마음으로는 드러내고 싶고 자신 스스로 의롭게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된다. 이름을 밝혔어도 마음은 조용히 드러내지 않아야 진정한 헌금인 것이다. 오히려 박철수 목사는 "헌금 기명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기의 몸을 쳐서 복종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기명 헌금은 순종의 훈련이며, 여기에는 자신을 노출시키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헌금 관리가 더 어렵다

그리스도인 각자가 헌금을 올바로 하는 것도 중요한 반면, 이 헌금을 교회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느냐 또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사실 이 세상의 많은 교회들이 헌금을 잘못 관리하고 심지어 물질로 인해 부패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96년 9월 16일자 [기독저널]은 일부 목회자들이 교단의 총회장, 감독에 출마하기 위해 5억에서 30억원의 뇌물을 살포한다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물론 아주 일부라 치더라도 이러한 사실은 분명 귀한 헌금을 잘못 사용할 가능성이 어느 교회든 충분히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또한 예배당을 성전으로 오인하여 과다한 헌금을 건축비로 지출하는 교회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근호 목사([복음의 회복]저자)는 "교회가 돈에 신경을 쓰고 또 돈 없이는 아무런 복음 사업도 못한다고 불평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서 전혀 복음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교회가 교육시켜야 한다

그러면 교회는 헌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에 대해 성경은 '구제와 선교'를 말한다. 이를 모르는 교회는 한 곳도 없을 것이지만 사실 '구제와 선교'에 대한 각 교회의 모습들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마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을 칭찬하신 것은 그리스도인 개인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교회에게도 의미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또 교회는 성도들이 올바른 헌금을 드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교육해야 한다.

박철수 목사는 "헌금은 성도의 믿음 수준과 신앙 생활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이다. 그러므로 목회에 있어 성도가 헌금 생활을 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그의 신앙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다른 신앙 생활은 일일이 지도하면서 돈의 문제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은 일종의 직무 유기이다"고까지 말한다.

또한 교회는 특별히 헌금을 많이 내도록 하기 위하여 이름을 밝히려 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이는 성도를 시험에 들게 하는 아주 위험한 방법이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목사를 의식해서 헌금을 내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헌금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THE VOICE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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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관련 참고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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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비춰 보는 것은 기본"

성경에서 '헌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찾기란 매우 힘들다. 단지 물질관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많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생활 속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민과 구체적인 성경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헌금 문제는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쉬운 것이기에 말씀을 올바로 전하는 목회자들도 이 부분의 설교를 꺼리는 실정이다.

누구나 헌금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를 알고 싶고 올바른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기 원한다. 그렇지만 성경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모른다면 헌금에 관한 서적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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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내지 마십시오

우선 [십일조의 혁명]이라는 책이 눈에 띈다. "왜 십일조를 내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몇 가지 이야기함으로써 이 책의 머리말을 삼고자 합니다"는 말이 이 책의 인사말의 첫 문장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박민흥 장로(아르헨티나 비제가스 장로교회 개척)는 "다만 이 책으로 말미암아 귀한 돈을 바치고도 도리어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얻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는 가련한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줄어지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주님에 대한 다시 없는 보람으로 여기고자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응축한다면 "헌금은 율법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십일조에 대한 성경의 견해를 매우 상세하게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여러 문제점들과 대책에 대한 부분도 간간히 섞여 있다. 또한 교회의 부패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독일 교회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 하고 있다. 도서출판 <대장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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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한 헌금 태도 고쳐야

미국 개혁주의 신학교의 J.B.스코트박사가 쓴 [당신의 헌금 방법, 전통적인가 성경적인가]는 성경공부 교재로도 적합하다. 각 과별로 '복습 문제'와 '토론 과제'가 주어지며 부록으로 배운 바를 적용할 수 있는 질문들이 주어진다.

무엇보다 이 책은 "안일하게 습관(전통)을 좇아 드리는 헌금과 신자의 경제 생활 전반에 걸쳐 충격적인 교훈"을 주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으로는 헌금의 원리와 함께 실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정 헌금 문제'와 '교회 밖의 단체에 헌금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도서출판 <나침반>

 

돈의 가치와 신앙

박철수 목사 저 [돈과 신앙]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특히 이 책은 단지 헌금의 문제뿐만 아니라 크리스천의 전반적인 경제관을 터치한다. 배금주의 사상에 젖은 오늘날의 현실에서 기독교인과 돈과의 관계를 성경의 기준에서 깨닫게 하고 돈에 대한 가치관을 재검토할 수 있도록 해준다. 도서출판 <좁은문>

 

돋보이는 [깡통교회 이야기]

원리에 관한 설명은 많이 있지만 교회가 헌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하는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책이 나와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래서 더욱 [깡통교회 이야기]는 돋보인다. 이 책은 헌금 관리의 '원리서'라기 보다는 하나의 수필집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교회의 실제 사례들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깡통교회는 전주 안디옥 교회의 애칭이다. 기자가 방문해 보았는데 교회의 모양이 마치 깡통을 반으로 잘라 엎어놓은 듯 하다. 이 교회는 교회 재정의 60% 이상을 '선교비'로 지출한다. 헌금 수입이 너무 많아 나머지 40%로 교회 운영이 되는 것이겠지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동휘 담임 목사는 교인들을 향해 '불편하게 살자'고 외치고 있다. 음향 시설을 최고급으로 하고 꽃꽂이를 최대한 아름답게 하며 모든 시설품을 최고급으로 꾸미는 지금의 추세에 비추자면 안디옥 교회의 교회 운영은 독보적이다. 교계뿐만 아니라 주변의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는 별난 목회 이야기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신앙 서적은 단지 원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항상 성경에 비추어 스스로 고민해 보는 것이 기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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