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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라이프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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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갈춘기
 김기동
 문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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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처럼 나도 좋은 선배가 되렵니다.

전남대 사회과학 대학 정치외교학과 2학년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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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대 모여라!", "정외, 신방, 인류, 지리, 문정, 심리, 사회학과 모두 모여라!" 목이 터져라 외치는 기동이. 아무래도 오늘이 지나면 기동이는 쉰 아저씨 목소리를 갖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오후 1시. 오늘은 '4.19 민중 집회'가 있는 날이다. 기동이는 일찍부터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일단 사회대 앞에서 모인 학생들은 전남대 캠퍼스 중심 광장으로 깃발을 높이 들고 걷는다. 학생들은 이 광장을 '5.18 광장'이라 부른다. 이미 500여 명의 학생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한쪽에서는 무대를 정돈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학생들은 이어서 후문으로 진출한 후 버스를 타고 조선대 정문으로 향한다. 운동(?)하는 사람답게 항상 튼튼한 두 발로 걸어다니고 뛰어다녔는데 오늘은 버스를 이용한다. 오늘 있을 집회가 심상치 않다.

기자가 조선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반. 노천 극장이 가득 찬다. 아마 2000여 명은 될 것이란다. 식전 행사와 정치 연설, 그리고 총 결의가 이어지고, 집회는 곧바로 시내 선전 활동으로 이어졌다. 오늘 시위는 전투 경찰과 대치한 상태로 밤 10시까지 계속되었다. 학생들은 경찰에게 밀리고 밀려 도청에서부터 전남대 앞까지 오게 된다. "김영삼 조기 타도", "재을이를 살려내라", "4.19 정신 계승하여 민주주의 완성하자" 등 다양한 구호와 최루탄 연기 속. 제법 피곤할 법도 하지만 선배가 된 입장에서 후배들에게 그런 모습 보이기를 거부한다.

집회 후 각 단대 별로 모여 갖는 반성 및 결의 시간. 기자 역시 몇 번 안 나가본 집회지만 매번 힘들다는 생각뿐이다. 매운 최루탄, 그리고 날아드는 돌이 무섭다. 왜 그들은 그렇게 힘든 투쟁을 계속하는 걸까. 집회 끝나고도 그냥 바로 해산하면 안되나? 꼭 이것 저것 반성을 해야 하고, 선배들은 후배들을 챙기고…. 모두가 지쳐있을 터인데 내색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그런 의문을 가지고 기동이를 다시 만난 것은 화창한 오후 잔디밭에서였다.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서,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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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때 보다는 여유를 갖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 인터뷰 제안에 쑥스러워 했지만 두 번째 만나면서는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학생 운동을 보는 시각이 대체로 곱지 않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그의 이야기는 자기의 삶을 나타내기 보다는 학생 운동을 대변하는 쪽으로 흘렀다.

늘 고민하는 삶으로

기동이는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95학번으로 2학년에 재학 중이다. 학내 활동으로 현재 자치기구인 '얼쑤'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96년에는 과 학생회에서 연사부장과 사회부장을 했다. 비교적 왕성한 활동을 펴던 그에게 자기 자신과 운동의 개념에 대해 깊이있게 고민해 볼 기회가 있었다. 작년 8월, 시위 도중 연행되어 광주 교도소에서 약 2개월동안 생활한 것이 그것이다. 그 공백 기간 중에 자기 자신과 부모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단다. 물론 지금도 그 고민은 연장선상에 있다.

기동이를 지켜본 후배의 말이다. "남들이 기동이 오빠의 모습을 보면 개념없는 대학생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오빠는 지금 운동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나름대로 고민하며 힘들어 하는 기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항상 웃고 그래요. 또 여전히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의 하루 일과는 보통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 8시경에 학교에 나가서 청소도 하고 신문도 읽으며 하루를 준비한다. 학생회 아침 조회를 시작으로 수업을 받고 종례로 하루를 마감한다. 많은 사람들과 같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학생회실이나 얼쑤방에서, 또는 농구·발야구·축구 등 운동을 통해서도 정을 느낀다."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는 그는 사회대 내의 생일 축하 모임이나 기타 다양한 자리들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그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누려고 노력한다. 이런 자리 저런 자리 참석하면서 피곤하기도 하고 미래가 불안해질 법도 한데, 굳이 이런 삶을 고집하는 이유를 들어보았다.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부터 운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데모하는 선배들을 보면 저런 일을 왜 하나 싶었다. 최루탄 때문에 밤낮 눈물 콧물 흘리기만 하고, 매번 이루어진 성과는 없는 것 같고…. 긍정적인 생각보다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처음부터 '민족', '자주', '애국 사랑' 등, 거창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풍물패에서 활동하면서 학생 운동하는 선배들을 자주 접하게 되고, 선배들을 따라 몇 번의 집회 참석을 통해, 그리고 우리 나라 정치와 역사와 경제를 학습하는 가운데 서서히 생각이 바뀔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운동을 시작한 더 비중있는 요인으로 한가지를 더 말한다.

"보통 다른 선배들과는 달리, 운동하는 선배들은 진정으로 나를 아껴주는 것 같았다. 늘 세상을 살아가면서 올바른 비판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조언해 주었으며, 동시에 내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하나의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나도 선배가 되었을 때 내가 만났던 선배처럼 좋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되물림 사랑을 주고 싶었다."

시대가 많이 바뀌어, 이제 학생 운동에 대한 시선이 예전같지 않다. 지금은 80년대와는 다르다. 어쩌면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기보다는 공부해서 국력에 보탬이 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일 수도 있다. 이러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대중을 믿는다. 정치 투쟁은 계속해서 해 나갈 우리 의무이고 권리다. 짧은 민주주의 역사임에도 지금까지 이만큼 진보할 수 있었던 것에는, 학생들의 피와 땀이 큰 동력이 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진전없는 민주주의, 계속되는 지배층의 부패,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과 악영향의 연속…. 때문에 학생 운동은 멈출 수 없다."

그는 지금처럼 개인주의화 된 현실과 정치에 대한 불신감이 가득한 사회에서, 끊임없이 현실을 재조명 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을 질타하며 정부와 언론의 조작으로 인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치적 투쟁이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운동에서 눈을 돌렸을지라도 아직 많은 분들이 관심과 지지를 아끼지 않고 있다. 자체적으로도 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한다. 혹자는 지금의 학생 운동을 단지 취미 활동이라 말한다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운동에 대한 자각이 뚜렷하지 않아 방황하는 학생도 없지 않지만, 단지 취미 생활이나 배짱으로만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청년의 끓는 가슴으로,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다. 솔직히 운동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항상 피곤한 모습이고, 수업도 많이 빠지고 학생으로서의 충실을 못한다는 점 인정한다. 운동을 하면서 타인의 본이 되고, 성실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함은 부끄럽게 생각한다."

끝으로 운동을 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달라진 점을 물었다.

"참 부끄럽다. 이렇게 말해놓고도 충실하지 못한 내 모습에. 또 진정한 신념 아래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린 마음에 그것이 옳다고 생각해 운동을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내가 두렵다.(웃음) 단지 지금 내 나름대로 삶의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고 주체 의식을 가진다는 것, 사회를 쫓아가지 않고 만들어 간다는 기쁨이 무엇보다 크다. 그리고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타인과 공존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어서 좋다."

나 자신 보다는 남과 함께한다는 공동체의식, 그리고 변질되지 않게 바르게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싶다는 기동이의 말이 무척 인상깊다. 처음에 가졌던 의문도 조금은 풀린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여전히 따사로운 봄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김송은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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