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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1996년 2월 청주시에서는 "역사실천협의회" 등 14개 시민 단체로 구성된 "사회민주단체 연대회의"가 정춘수 목사라는 사람의 동상을 철거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전국 50개 대학의 한국사 전공교수 120여명은 성명서를 발표하여 이들을 지지하는 의사표시를 하였다. 목사라는 사람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서 죽은 후에도 동상을 철거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 데에 대하여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정춘수 목사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기독교인들이 자랑으로 여겨야 할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사람이다. 그러나 반민족문제연구소와 독립기념관의 조사에 다르면 그가 그 뒤에 변절하여 교회의 종과 철문을 일제에 헌납하는 운동을 일으키고, 일제의 태평양 전쟁을 돕기 위한 종교보국운동에 앞장서는 등 친일 행위를 하였다. 또한 그는 1944년 3월 3일 교단 상임위원회에서

  "애국기 헌납 및 교회병합실시에 관한 건"을 통과시켜, 교회를 통폐합하여 전쟁 물자를 댈 것을 결의했으며, 그 해 9월에는 교단 본부에서 상동 교회에 "황도 문화관"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교역자들을 일본 정신으로 재교육시키기에 열을 올렸다.(김승태,"일제 말기 한국 교회의 과오" 복음과 상황 1996년 3월호, p.62-67) 그 사람은 왜 한 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하고 이렇게 속없는 짓을 했을까.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아마 가장 잔인한 정치인 중의 한 사람으로 기억될 전두환을 국민 앞에 제일 먼저 민족의 지도자로 소개한 것은 1980년 8월 6일의 소위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였다. 이 기도회에는 이름만 대면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23명의 목사들이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기도회로 모였으나 그들은 당시의 대통령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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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중 다행히도 23명의 목사중 2명을 포함한 교계 인사 32인은 금년 1월 1일 두 전직 대통령의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에 협조한 것에 대한 참회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나머지 21명의 거룩한 목사님들은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 23명의 목사들 중에는 자신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반하여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자신들이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참으로 힘없고 무시당하고 억눌린 자들의 편에 서지 않고 늘 양지쪽에만 섰던 것이 아닌가 반성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 교회는 이승만 정권과 결탁하였고,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때에도 이를 하늘의 도움이라고 환영하며 지지했다.(조이재, "박정희 정권 편들기" 복음과 상황 1996년 3월호, p.56-57) 뿐만 아니라 억눌린 자들의 편에 서서 독재자에게 항거하였던 양심적인 목사님들을 신령하지 못한 때묻은 목회자들이라고 매도하기까지 하였다. 이분들에게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역사의식이 없는 분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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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식이란 무엇인가?

사의식이란 사람들이 시간적, 공간적 차원에서 가지는 존재론적 자아의식을 말한다. 즉 인간 개개인이 따로따로 동떨어진 존재들이 아니라 시간적(종적)으로나 공간적(횡적)으로 서로 연결된 고리들 중의 한 고리로 존재한다는 결속의식, 혹은 뿌리의식을 의미한다.(임희완, 역사학의 이해,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5.) 바꾸어 말하면 나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행위의 결과로 오늘날의 내가 있으며,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나의 이후의 모습이 달라지며, 내가 비록 지구상의 한 점에 불과한 광주시의 작은 동네에 살고 있지만 나의 행동이 서양이나 동양이나 아프리카 미개지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말하자면 역사의식이다.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역사의식의 부재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식을 아주 거창한 말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의식은 큰 일을 하는 사람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나같은 사람에게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그저 드러나지 않는 소시민의 삶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역사의식을 지니고 사는 사람은 작은 일,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삼가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일제 때 미국과 일본으로 유학가서 많이 배운 사람들 중 다수가 친일하며 자신의 영달을 누리다가 해방 후에는 독재자의 앞잡이가 되어 반민족적인 행동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보다 덜 배운 김구 선생은 초지일관 민족을 위하여 일하셨다. 이것이 바른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차이이다.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역사학자인 E.H.Carr의 말대로 과거의 빛을 통하여 현재를 바라보고 현재의 빛을 통하여 과거를 바라보는 동시에 미래를 전망하는 전체적이며 종합적인 조망을 가지고 있다.(임희완,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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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식의 필요성

바른 역사의식이 왜 필요한가. 우리가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종교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곧 애국하고 애족하는 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로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역사의식이 있어야만, 오늘날 우리 시대의 부패와 부정을 정말 부패와 부정으로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척결할 힘과 용기를 갖게 된다.

주기철 목사님은 자기 몸을 던져서 순교하면서까지 승리한 삶을 사신 분이다. 이분이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복음주의에 기초한 나름대로의 통찰력과 역사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어느 노회도 신사 참배가 우상 숭배라고 결의한 노회는 없었다. 오히려 1938년 일제가 혹독하게 신사 참배를 강요할 때 장로교 총회는 신사 참배를 국가 의식에 지니지 않는 것이라고 결의하고 신사 참배를 용인했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님은 1930년 벌써 신사 참배는 우상 숭배라고 선언하면서 반대 투쟁을 시작했다. 결국 이분은 몇 차례 옥고를 겪고 옥에서 순교하셨다. 이것은 바로 보수 신앙, 기독교 복음주의적인 신앙 위에서 일제 침략이라는 자기 민족의 현실에 대한 큰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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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무개 목사는 일제 때 도에 지나치게 일본에 협력하였으며, 창씨개명에 앞장섰고, 천황에 대하여 충성하라는 글을 쓰고, 연설하러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에는 자신이 속한 교단의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또 다른 김아무개 목사는 본인이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교인 중에 신사 참배를 안한 사람들을 앞장서서 고발하였으며, 3·1운동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매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방 후에도 여전히 행세를 하며, 학교를 많이 세웠다고 문교부로부터 공로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김 목사는 여러 가지 문서와 서적에 친일파였다고 하여 더러운 이름을 남기고 있다. 주기철 목사님과 두 김 목사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5공때 안기부장을 지내며 전두환의 폭정에 앞장섰던 장세동은 집사였고, 12·12쿠데타의 주역인 박준병은 권사였다고 한다. 박정희의 심복으로 갖은 못된 짓을 하며, 결국에는 박정희와 함께 김재규의 총에 죽었던 차지철도 집사였으며, 당시에 궁정동의 술자리에 같이 있었던 김계원은 장로였다. 이러한 예를 들자면 온 지면을 채워도 부족할 것이다.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지 않고 왜 독재자와 같은 길을 걸었을까. 그것은 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한다. 그래서 그들이 쓴 역사책의 주인공은 나폴레옹이며, 징기즈칸이며, 히틀러이며, 씨저이다. 그러나 구원사적 관점에서 볼 때 세상에서 말하는 영웅들이란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그분이 사용하신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부터 백년 전 신앙의 선배들은 조선 역사를 결정하는 자는 강대국이 아니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신앙에 근거하여 일제에 항거하였다. 올바른 역사의식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용기를 갖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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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과 시간을 창조하셨다. 비기독인들은 우주가 우연히 생겨났으며 적자생존의 원리에 의해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의 힘과 선택에 의해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주 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지금도 그분이 섭리하시며, 그분의 뜻 가운에서 역사가 진행되어 간다.

셋째, 시간과 역사에는 끝이 있다. 비기독교인들은 인간의 역사가 끝없이 전개되리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면 인간은 자신들의 지혜를 이용하여 이땅위에 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또다른 생각도 있다. 그것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하여 자원이 고갈되고, 황폐화됨으로 인하여, 또는 전쟁으로 인하여 인간은 멸망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 두가지 생각이 모두 역사의 주인은 인간이며, 인간은 자신들의 뜻에 따라 이 땅위에 낙원을 건설하든지 파멸하든지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간의 역사가 끝난다고 말씀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이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그날이 올때까지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한다. 이것이 종말론적 역사관이다. 이러한 역사관에 믿음이 더하여질 때 우리는 용기있게 역사의 흐름에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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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에 참여

리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주일 성수나 십일조나 전도를 열심히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예배당 안에 가두어 두어서는 안된다.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역사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사회에 대하여 끊임없이 감사하여야 한다. 이 나라의 역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는가, 이 나라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스려지는가, 가난한 자가 존중되는 사회인가, 힘이 없는 자가 억압받지 않는가, 못배운 자가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가, 개인의 양심이 존중되는 사회인가를 살펴야 한다.

기독교인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바르게 실천하여야 한다. 선거 때 바르게 투표하며, 직장과 사회에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소금의 역할을 하며, 미래 역사의 주역이 될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으로 양육해야 한다. 한 시민, 가장, 주부로서 자기 삶의 현장에서 비록 작은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실히 행하여야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나라와 민족 앞에 올바른 길을 제시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예언자의 사명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라와 민족 앞에 복음에 근거한 길을 제시하여야 한다. 도무지 방법이 없다고 낙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기도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사장의 사명을 주셨다.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 민족을 대신하여 민족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맺는 말

사의 주재자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이끌어갈 책임을 주셨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자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 시대에 대해서도 책임자로서의 사명이 있다. '역사가 자신의 정의를 밝혀줄 것이다'라고 말하는 자들의 기만에 속아서는 안된다. 오늘을 사는 기독교인들은 죄로 물든 세상을 사람 살만한 세상으로 바꾸고, 뒤틀려진 역사를 주님께서 친히 주관하시는 역사로 바꾸어야 한다. 지금은 복을 달라고 징징거리면서 엎드려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는 일어서야 한다. 올바른 역사의식은 궁극적으로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본인들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잘못된 행동들이 얼마나 많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던가. 우리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역사의식을 지녀야 한다. 올바른 통찰력을 가지고 우리 시대, 우리 사회 역사의 흐름을 바로 잡는 힘있는 기독교인, 영향력있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글 : 조인선 (전남대 교수, 광주중부교회 장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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