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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35

 

 

 

 

 

 

  

커버진단

교리 빠진 교회 교육

한국 교회 교육의 현주소 진단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대소요리문답…. 중세 이후 개혁교회에서 힘써 가르치고 보존하려 했던 교리(敎理)들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교회에서 이 같은 교리를 교육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평신도들을 위한 각종 공과 공부와 성경공부·연구 시간을 돌아보아도 '교리'를 가르치거나 그런 교재를 선택하는 곳은 없다. 아니, 교리의 내용은커녕 현재 교재들을 살펴보면 지나치게 적용 중심적이거나 교인들의 입맛에 맞추는 스타일이 주류를 누리고 있다.

 

교리를 소홀히 하는 현대 교회

A. Schlatter는 '교리'의 뜻을 '우리를 하나의 교회로 연합시키는 공통된 지식과 믿음'이라 정의하였다. 그럼에도 현대 교회는 교리를 교회 교육의 기본으로 두지 않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가, 아니 왜 교리를 등한시하는가. 교리를 강조하지 않는 교회로 인해 '교리'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평신도들이 허다하다. 심지어 교인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교리는 불필요하다는 생각도 만연되어 있다. 교리를 묵과하는 한국 교회. 언제부턴가 신자들의 머리 속에서 교리의 중요성이 사라지고 있다. 교리의 부재. 이것이 주님의 교회와 신자들에게 얼마나 무서운 영향력을 미칠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성경을 읽는 사람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믿어야 할 것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는 모두 성경에서 계시되었으며, 그 계시는 모두 믿고 순종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말씀은 교리의 유일한 표준이 된다. 특정한 인간의 주관적인 견해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 그 진리는 시대가 지남에 따라 더욱 분명하고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시대가 갈수록 점진적으로 복음의 진리를 분명히 밝히신 것이다. 인간은 과거보다 더욱 명확하게, 말씀을 식별하게 하시는 은혜를 입게 되었다. 하나님의 언약은 성경 가운데 통일되어 있으며, 일관적 흐름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이 때 성경을 정확히 해석하여, 성경에 계시된 진리 체계를 구성하는 위대한 교리들을 인간의 말로 정의하는 사업을 교회가 담당하게 된다. 물론 이같은 사업은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점진적으로 느리게 진행되었다.

교회는 그 시대에 새로 얻은 결과를 신앙고백의 형식으로 정확하게 표현해서, 얻은 것을 보존하며 일반 신도들을 가르치려고 했다. 주기도문, 십계명과 함께 성경책 앞 뒤 속표지에 부가된 사도신경도 이렇게 얻어진 것이다.

 

이단자들을 막는 역할

한편, 시대를 막론하고 각종 이단자들이 나타났다. 이단자들은 성경을 곡해하며, 진리의 어느 한 부분만 과장하거나 본질적인 것을 왜곡·부정하여,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만들었다. 이에 교회는 '자기 보존의 대원칙'에 따라 개개의 교리 전부를 정확히 규정해서, 잘못 전해진 것을 밝히며, 모든 오류를 제거했다. 이러한 작업으로 바르게 정립된 교리에는 진리가 골고루 포함되었다. 이로써 진리의 어떤 특정 부분만이 부당하게 축소·과장됨을 막고, 전체의 진정한 규형이 보존되도록 했다.

교리가 확립됨에 따라 교회의 공적 교사들의 가르침은 서로 모순됨을 방지할 수 있었다. 교회원들을 비롯, 특히 아이들을 위해 표준 문서를 작성해서 교리 위에 더욱 공적인 권위가 부여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렇게 확립된 교리는 교회의 모든 시대와 모든 교파의 필요와 진리를 보존·전파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단 맛에 길들여진 교인

이와 같은 사실을 볼 때, 믿는 자에게 교리는 주님의 크신 은혜의 산물이라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교회들에서 교리의 중요성이 점차 희석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은 교인들이 스스로 교리를 싫어하게 된 것에 그 이유를 둘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엔 교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교인들이 많다. 교리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맘에 들지 않거나, 그저 복잡한 이론으로 가득하다는 생각, 혹은 율법서와 같이 고어체가 가득하고 알아듣기 힘들다는 선입견도 많다. 그 중 가장 확고하게 자리잡은 오해는, 이것이 실생활에 아무 쓸모가 없다는 생각들이다. 지극히 실용적인 생각이다. 교회가 얼마나 교리에 대해서 묻어두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교리는 교인들로 하여금 거부감이나 부담감을 느끼게 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무지에 가까운 생각일지라도 그것이 교인 다수의 생각이라면 100% 반영되는 곳이 바로 현대 한국 교회다. 교회의 양적 성장이 하나님 나라의 건설·확장이라는 공식으로 슬로건화 된지 오래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창출하기 위해 교회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했다. 듣기 좋은 말, 편하게 대해 주는 서비스 정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리하여 위안을 주는 종교로 화(化)해야만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교회에서 중요한 교리 교육도 신자들의 반대에 부딪히면 실행하기 어려운 정책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교리배운 신자 앞에 교회는 쩔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한 존재인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다 받을 수는 없다. 기독교는 계시 종교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데까지는 힘써 배울 수 있지만 그분이 멈추신 곳에서는 우리도 더 이상 덧붙이거나 추측할 수 없다.

교리를 배우게 되면 하나님의 섭리를 합리적인 우리의 사고로 전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구원론에 있어서 '예정론'을 들 수 있겠다. 예정론을 가르치다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은 무엇일까. 성장이나 확장 등의 슬로건만 강조하던 성장주의 교회가 가장 싫어하는 물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그분이 모든 것을 다 하신다면서, 왜 우리에게 전도하라고 하나요?" 혼란에 가득찬 신자의 뾰로통한 물음 앞에 교회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막상 예정론과 같이 '하나님의 주권' 부분을 밝히면, 즉 이같은 진리를 선포(?)하자면, 성도들의 전도 열의는 금새 식어들게 마련일 것이다. 예정론을 올바로 차근차근 설명해 주면 좋겠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이같은 교회나 선교단체도 인간이 사는 이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 자신의 신앙 열심이 식을까봐, 혹은 조직의 열성이 식어 조직력에 해가 될까봐,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나는 예정론은 알게 모르게 쉬쉬 되어왔던 것이 사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의 진리가 자신들의 열심에 방해가 되면 진리의 특정 부분만 살짝 바꾸길 일삼아 왔던 것이다. 그래서 교리에서 검증된 '예정론'이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부분은 부정하고 변화시켜, '만인 구원설' 등을 자신들의 신조로 삼아 버리는 무서운 현실이 되었다. 자신들의 잣대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축소시키고 그 자리를 강등시켜버린 것이다. 자신들의 열심이 헛수고가 됨에 분노하고 자신들의 뜻과 수준에 맞지 않는 메시아라 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바리새인들. 그때와 다를 바 없는 현실 아닌가.

 

내 맘대로 성경 가르치는 교사 가득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 교회로 말미암아 교인들은 갈수록 우민화(愚民化)되는 현실이다. 설교에서 비진리적인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일은 허다하고, 오히려 진리를 분별하는 일이 '교만한' 것처럼 오해받는 현실이 되었으니 말이다. 교리를 가르치지 않으니 교인들은 갈수록 무지해가고 교회에 난잡한 사상들이 가득하게 된 것이다.

한국 교회의 미래가 더욱 암울하다 하는 것은, 이러한 때에 교리를 통해 성경의 통일성과 일관적으로 흐르는 원리를 아는 교사마저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 또한 한국 교회가 양적 성장에만 치중한 까닭이다. 교회에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나게 되자 이를 조직화하여 관리해 줄 교사가 갑자기 많이 필요해졌다. 이럴 때에 한국 교회의 교사 선정 기준은, 교사로서 교회 활동에 열심만 품으면 그만이다. 그가 진리에 대해 옳게 인식하고 분별하느냐의 여부는 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가르치는 교사가 무분별하게 세워져도 무방하다는 교회의 인식. 이로 인해 광주지역 대부분의 청년부가 갖는 문제는 더더욱 심각하다. 광주지역 청년부 대개가 전담 목회자나 지도자가 없는 상황. 어떤 이가 이 곳에서 3∼4년 정도 자라나 선배가 되면, 그 역시 교리에 대해서 무지한 가운데 어린 후배들을 책임져야하는 상황이 된다. 무지자가 무지자를 가르치는 상황은 매년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날이 갈수록 교회엔 진리를 분별하는 이는 사라져가고 말 것이다. 왜곡된 진리와 자기의 전통으로 완강해지는 신자들만 배가·양성되는 것이다. 제멋대로 자기의 전통을 가르치고 자신의 세상 가치관을 진짜 인양 전수를 시키는 교사들과 이를 배워 똑같이 기독교가 아닌 자기 생각을 전파하는 교인들로 가득 찬 교회가 될 것이다.

 

성경해석의 틀, 바른 교리

교리를 사람이 만들었다는 이유, 혹은 성경이 있는데 왜 교리가 필요한가 등의 이유로 교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성경을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들에게 A.A. 하지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교회가 오래 노력하여 자세히 교리를 밝히고 표현한 것으로부터 도움을 원하지 않는 개인이 있다면, 그는 자기의 지혜만으로 자기만의 신경을 작성하는 것이다. 교리에 대한 거부감의 근원은 하나님의 백성이 집단적으로 시험해서 증명을 얻은 신앙과 신경들을 부정하는, 그 자신만의 사사로운 판단과 지혜 사이에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서 서문 중)"

정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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