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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문화 = 군사문화 ?

며칠 전의 일이다. 나는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는 후배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약속 시간 1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기억했다. 허겁지겁 뛰어갔으나 안타깝게도 그 후배는 5분 전에 다른 동아리 방으로 가버렸단다. 평소 약속을 어기는 일이 거의 없는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나의 불찰을 꾸짖으며 그 1학년 후배가 갔다는 동아리 방으로 찾아갔다.

그 동아리 방 문은 열려 있었고 탁자에는 예닐곱 명의 신입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 곳에 내가 만나려고 했던 후배가 없음을 확인하고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리려던 참이었다. 그 때 그들 중 하나가 나를 보자마자 갑자기 일어서서 경직된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어리둥절 한 나에게 나머지 학생들도 모두 일어서서 똑같이 인사를 해 댔다. 고학년들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문 앞에서 달리 하는 일 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잔뜩 긴장해 있던 그들의 표정은 나에게 군 생활의 생각하기 싫은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신병 교육을 마친 후, 나는 비무장 지대 내의 작전을 맡는 수색 대대로 전입 명령을 받았다. 그때 나는 삭막하고 낯선 부대의 인사과에서 열네 명의 동기들과 함께 행정병들과 간부들의 눈치를 살피며 긴장한 눈으로 동기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그 뿐 아니라 소대 배치 받은 이후 대대의 선임병들로부터 갖가지 비인격적 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우리를 우리가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당시 그 부대에서는 병장들이 근무를 나가려고 하지 않는 관행이 있어서 재수없는 후임병들은 매서운 삭풍이 부는 초소에서 몇 시간씩 근무를 서야 했다. 특히 갓 전입해 온 신병들은 그야말로 병신 취급을 받았다. 선임병들이 후임병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의도는 처음에 그들의 기를 죽여서 그들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중에 중대 서무병으로 보직 근무 하면서 고참들의 그러한 작태에 나는 도전하기로 했다. 난 내무실 부조리를 근절해서 사고없는 부대로 만들어, 이를 구실로 진급하려 힘쓰는 지휘관의 속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대장이나 인사계의 이름을 팔았다. 인사과에서 얻은, 상급 부대에서 내려온 공문들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고참들을 근무처로 내보냈다.

힘든 일이었다. 나중에는 동기들이 선임병이 되면서 나를 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근무지로 나가서 후임병들과 고통을 함께 해야 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35년간의 일제 식민지 지배를 당했다. 해방 후에도 줄곧 권위주의 내지 권위주의 군사정권의 통치를 받아왔다. 특히 30년간의 군사정권 통치는 사회 구석구석에 군사문화를 심어 놓았다. 이런 문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권위주의 청산을 온 몸으로 주장해 온 캠퍼스의 뿌리까지 스며들었다.

캠퍼스의 군사문화는 그야말로 복구 불능이다. 신입생 환영회 때 선배의 강권에 의해 억지로 술을 받아 마시다가 죽어간 학우가 우리 주변에 있었고, 지금도 매년 캠퍼스 내에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M.T.(Membership training)라는 명목으로 독재 군사정권의 악습을 재현하면서 군대의 향수를 만끽(?)하는 선배들, 왜곡되어 버린 동문회 모임이 캠퍼스에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 내가 찾아갔던 동아리방으로 되돌아가서, 나는 처음에 내가 찾던 후배가 없음을 확인하고 되돌아가려고 했으나 도저히 그냥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찾아가서 동아리방 문 앞 탁자에 앉아 있던 학생을 한 명 불러 내었다. 그런데 고학년인 듯한 학우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난 1학년들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때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것은 저희들의 전통이예요"라고 대답했다. 난 더이상 할 말을 잃고, 답답하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 곳을 나왔다.

그 후에 난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신입생들에 대한 그 동아리 선배들의 태도를 알아보았다. 그들은 신입생들에게 아침 조회 때 PUSH UP을 시키고, 동아리 방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게 하는 등 인간의 자존심을 짖밟는 행위를 계속해 왔다는 것이다.

남의 동아리 활동에 감 놔라 팥 놔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난 그들이 건전한 대학문화를 자주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의 신입생에 대한 태도가 진정 건전한 대학 문화란 말인가? 난 권위를 좋아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권위주의에 대해서는, 특히 우리네 사회의 곳곳에 침투해 있는 권위주의 군사문화에 대해서 투쟁을 선포한다. 내가 처한 환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건전한 대학문화를 위해 작으나마 밑거름이 되고 싶다.

난 지금까지 대학 속에 있는 군사문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자신의 쌈지돈을 털어가며 후배들 밥을 사주고 고민을 들어주고 건전한 대학문화를 창조·발전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 또한 알고 있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각자의 재능과 처지에 따라 진정한 대학문화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새 날이 올 때까지 동역하고 싶다.

임장모 / 전기협 의장 (전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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