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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7

 

 

 

 

 

 

  

■커버논단

96, 한국교회의 도전과 응전


격동의 95년! 그야말로 대지각변동의 한 해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총총히 물러가고 대망의 96년 새해 새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실로 95년은 국내외에서 거센풍랑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나라 밖 세계도처에서는 참사, 테러, 전쟁 등의 연속이었다. 국내에서는 한때 총칼로 권력을 잡고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짐승과도 같은 절대권력의 수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형편에 놓여있는가 하면, 94년 성수대교 붕괴를 비롯하여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대명사격인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대참사에 이른다. 이같이 반문명적이고 비상식적인 사건은 현대산업사회의 물질문명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켜주고 있다. 이제 4년 후면 대망의 2000년 21세기가 도래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 세기의 황혼에서 새로운 한 세기의 여명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기말의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오늘도 흐르고 있는 역사의 강줄기를 바라다 보며 하나님의 역사적 부르심에 마땅히 응답하는 자로 서야할 것이다.



되돌아보기 - "세속주의의 도전"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좋은 시금석은 우리 뇌리 속에 오래 기억되는 아픈 기억들이다. 95년도에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것은 아주 잘된 일이지만 좋지않은 기억은 다가오는 해를 준비하기 위해서 꼭 반추해보아야 할 필수과정이다. 우리시대의 총체적 부정, 불의, 불법으로 얼룩진 한국병의 전형은 두가지 큰 사건으로, 천인공노할 전·노씨의 범죄와 수감 그리고 삼풍백화점 붕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의도는 두 사건을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있다. 적어도 이 두 사건은 한국병의 실상이면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기형적인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총체적 부정부패와 한국병의 전형으로서 두 사건의 실체는 권력유착형 성격을 모두 띠고 있다. 권력과 지성(학교), 이권력과 경제(기업), 권력과 종교(특히 교회)의 유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노씨의 12·12와 5·18 학살범죄는, 군사정권의 칼과 무력의 논리가 가져다준 극악무도함 바로 그것이었다. 여기에는 권력비호와 정권창출의 브레인(Brain)으로 기여한 '하수인'으로서 죽어비린 지성이 있었고, 돈가진 자들의 권력과 결탁한 문어발식 기업비리가 있었으며, 선지자적 외침으로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꾸짖어야 할 교회의 두둔, 묵시적 동조와 축복이 함께 어우러졌다.

여기에서 한국교회의 모습을 한 번 보자. 한국교회는 권력을 너무 좋아한다.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또 다른 불의한 권력이라도 밀월관계를 고수한다. 그래서 교권이라는 무서운 칼이 교계에 난무한다. 그뿐인가? 한국교회는 금권 또한 좋아한다. 암몬이 한국교회의 우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전·노씨의 범죄와 어떤 상관성이 있는가? 구체적으로 유신찬양의 교회지도자들과 그 후예들은, 전·노씨의 피묻은 총칼을 마치 성전에서 승리한 십자가 전사로 받아들여 그들의 죄를 덮어주고, 그들의 피의 정권을 하나님의 뜻으로 동조하였다. 사실 박정권 하에서 정교분리의 강한 제창으로 유신을 찬양하고 조찬기도회의 명분으로 인정해준 그때, 그사람들이 또한 수괴들도 동일하게 축복해 주었다. 그들중에는 해방 후 북한의 교회와 성도들을 내팽개치고 형통의 길을 택하여 내려온 자들도 있다. 그들은 불의와 싸우는 고난의 길보다는 영광의 길을 택했다. 권력을 늘 등에 업고, 명예와 교권도 쥐었고, 스타가 되어 교계 지도자들로 군림하였다. 지금 12·12와 5·18에 가담한 자들이 검찰에 출두하거나 앞으로 구속될 것이다. 이 과제에 유신과 12·12, 5·18 정권을 인정하고 찬양하고 축복해준 교계 지도자들은 정식 교계통로를 통해 공개되고 하나님 앞과 한국교회 앞에서 사죄하고 회개하여야 한다. 이는 비단 '역사 바로 세우기' 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더 중요하다. 여기에다 장로인 김영삼 정권의 회개도 함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준 여소야대 정국을 송두리채 팽개치고, 대권 하나를 위해 밀실에서 3당 야합이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극을 연출한 그 범죄 말이다. 성경에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할 땐 참새 한 마리 떨어진 것과 제비뽑는 것을 통해 가르쳐 준다. 하나님은 인간의 제비뽑는 것도 그의 주권으로 관여하신다. 하나님이 국민투표를 통해 군사독재정권의 독점에 제동을 걸고 민주화의 길을 보여주셨는데, 그는 야합을 결행했다. 필자는 이것을 하나님의 대주권 찬탈로 규정한다. 이것의 범죄성을 하나님은 12·12와 5·18 수괴의 입을 통해 들춰내고 말았다. 언젠가 그도 다른 권력의 심판대 앞에서 3당 야합의 범죄성이 폭로되고 단죄될 날이 오고 말 것이다.

또한 수괴 전·노씨와 그 추종자들의 구속수감을 통해 놓쳐서는 안될 것은,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으로 고백되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왜 15∼16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진상이 규명되고 단죄되었을까? 만약 80년대 민중운동이 극렬했던 상황에서 이 일이 이루어졌다면, 사람은 역사와 정의의 준엄한 심판자를 하나님 대신 민중의 힘으로 대처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철저히 그들을 낮추시고 또 낮추시다가 끝내 그들의 말로에 종지부를 찍으셨다. 그래서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철저히 보여 주셨다. 아울러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하는 절대권력의 멸망공식을 보여 주셨고 하나님 나라 외에 영원한 통치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은 「절대적 복음의 상대화」에 대한 우려이다. 절대적 가치관의 붕괴와 기독교 정체성 파괴가 그것이다. 즉 이시대 사람들에게 죄의 절대성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반민주적, 반민족적, 반역사적 큰 범죄만이 범죄로 취급되고 상대적으로 작은 죄는 죄로 여기지 않는다. 5천억에서 1조원 도둑은 죄인이어도 만원 도둑은 도둑이 안될 수도 있고, 수백명 살인자는 살인자이어도 한 명 정도 죽인자는 살인자가 아닐 수 있다는 등식, 그것이 우리 국민에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필경 기독교 복음은 필요없게 된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신화(神話)가 되고 절대적인 윤리기준도 없어지고 말 것이다. 세상의 법정에서는 법에 저촉되는 자를 죄인으로 취급하지만 하나님의 법정은 이세상 모든 사람을 죄인이라고 선언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많은 이들은 전·노씨와 같은 자들만 죄인이라고 하고 자기들은 죄인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복음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선포되어야 한다.

사진 : YTN다음으로 삼풍백화점 붕괴를 통해 한국교회와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 보자. 삼풍의 상징성은 한국식 자본주의의 악함을 철저히 폭로해 주었다는 데 있다. 황금만능주의와 배금주의, 물신(物神)주의라고 하는 암몬신의 실상이 입증되었다. 삼풍이 무너져내리는 언저리에는 이 시대의 각종부정, 부패, 불의, 물신주의의 잔해 덩어리가 나뒹굴고 있지 않았던가! 행정인도 기업인도 악할 뿐 아니라 이 백성이 얼마나 악한가? 사망의 곡성과 피내음이 진동한 사건현장에서 성행했던 도둑행위의 모습은 놀랍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이모두가 물신주의로 팽배한 시대반영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교회는 이와 무관한가? 모든 부정, 불법, 대형사고와 사건에는 그리스도인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좋은(?) 예다. 12·12와 5·18 주모자들 상당수가 교회에서 장로·안수집사들이다. 이번 삼풍의 회장도 모교회 장로였다. 그들은 무너져가고 있는 긴박한 정황에서도 돈, 돈, 돈... 진짜 돈에 돈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최대 위기이다. 이미 자본주의의 물신이 교회의 제 가치관을 잠식해오고 있다. 한국교회는 돈을 너무 좋아한다. 돈타령이 많다. 많은 헌금목록으로 성도를 수탈한다. 그리고 있는 자 중심으로 목회가 이루어진다. 돈있으면 땅사고 공동묘지 확보하고, 예배당 불리고, 호화수양관과 기도원을 짓는다. 목사·장로들도 가문좋고, 많이 배우고, 돈많은 가문에서 사위를 찾는다. 돈 없으면 한국교회에서는 기를 펴지 못하는 형편이다. 심지어 결혼주례도 물욕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는 이땅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기독세계관과 가치관의 부재와 기독윤리의 부정확, 기독문화의 뿌리없음에 기인하며 교회의 물량화, 외형화, 대형화의 추구에다 역사의식 결여, 교회의 분열, 사회적 책임외면 등에서 나타났다. 이로 보건대 전·노씨의 만행과 삼풍의 붕괴는 한국교회의 모습이요 우리시대의 합작품이다. 그들은 우리시대 우리 가운데서 난 우리들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새출발하기 - "한국교회의 응전"

세속주의의 도전 앞에 무기력했던 것이 한국교회의 지난 날의 모습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가? 우리는 지금 세기말의 한 정점에 서있다. 남북은 분단되어 고착상태에 있고, 동·서는 아직까지도 반복과 갈등의 총체적 분단구조속에 있다. 우리는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통일을 준비해야 할 시점에 서 있기도 하다. 지금 북한동포들은 사상최악의 흉년으로 기아선상에 놓여있다. 210만명의 어린이가 아사 직전에 있다. 참으로 비통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민족의 남·북, 동·서 분단상황 복판에 서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물신주의를 비롯하여 인본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 과학주의, 기술주의, 경제주의 등 현대 우상들의 도전 앞에 서 있다. 이러한 도전 앞에서 한국교회는 새로운 대안과 자정과 개혁으로 새롭게 되어 총체적 복음증거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세속주의 도전에 대한 응전이다. 삼풍과 함께 무너져내린 이땅을 다시 세워야 한다. 모든 영역에 말씀의 법을 세우고, 교회는 물신주의적 가치관을 극복하며,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을 양산해내야 한다. 기독교 세계관에 바탕한 제 가치관을 정립하여 구원과 윤리가 분리되지 않고 모든 영역에서 기독윤리가 회복되고 세워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96년엔 지자제 이후 첫 총선이 실시된다. 이런 때 건전한 선거문화 정착과 공명선거를 위해 교회가 앞장서고 기도하여야 하며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 교회는 힘써야 한다. 어느 한 지역을 배제하고 고립시키기 위한 정치권의 새판짜기 음모는 사탄적인 발상이며 배제되어야할 것이다. 또한 절대복음을 편만히 증거하여 기독교의 정체성을 세워나가야 하며 북한이 유혈극 없이 개방되고 화해되기를 기도하여야 한다.

 

교회의 대사회 정화능력 상실과 사명 망각이 지난 날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96년 새해엔 한국교회의 새출발과 시대재건의 원년이 되어야 한다. 이나라 이민족을 말씀 위에 세우는 성서한국과 양 이데올로기를 극복한 복음 안에서의 통일한국을 이루고 그 위에서 세계선교를 담당하는 선교한국을 실현해야 한다. 나아가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세워 기독문화 창달과 그것으로 인한 샬롬의 선포, 회복실현을 위해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시대적 사명감당과 역사적 부르심에 응답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땅의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아닌, 말 아래 숨겨진 빛과 맛잃은 소금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글 : 문병금(활빈교회 교육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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