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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29

 

 

 



 

 

■커버진단

Title

뭉치자, 스포츠로

여기는 바벨탑 건설 현장.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 인간이 만든 최대 높이의 탑을 쌓기에 여념이 없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사명아래 부지런히 쌓아 올라간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서 "우리도 이렇게 쌓았습니다. 이 탑 이름은 바벨탑이라고 하고요, 우리가 직접 이름을 붙였습니다."라고 예기할 계획이다. 그리고는 "우리도 이만큼 할 수 있어요. 우리 스스로도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라는 선언도 덧붙일 계획이다.

한편 여기는 98' 월드컵 결승이 열리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매인 스타디움이다. 전 세계에서 인류 최대의 축제인 월드컵 결승을 보기 위해 모였다. 값비싼 항공료와 숙박비, 입장료는 문제가 될 수 없다. 이 순간을 기다려온 사람들은 축구 경기에 빠져서 정신을 잃고 관전한다. 이 때만은 전 세계인이 스포츠 하나로 똘똘 뭉친다. 이념과 인종의 장벽은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축구 하나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환희에 차서 이렇게 말한다. "축구가 이 세상에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모든 사람이 하나로 되어 행복함을 맛볼 수 있는 스포츠라는 건 너무 멋진 것 같아."

크리스천이든 비 크리스천이든 국가적인 대항전이 있는 날은 텔레비전으로 관심이 쏠린다. 평소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우리 나라가 이길 때는 환호성을 지르고 만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보고 무어라 말씀하실 지 궁금해서 성경을 펼쳐본다.

 

질투의 하나님

성경을 보니 출애굽기의 십계명이 눈에 들어온다. 첫 장에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란다. 그 분은 인간이 자기보다 더 사랑하는 무언가를 두길 원치 않으신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우상이라 말씀하신다. 그 대상은 위로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이나 모든 것에 해당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지상에서 무엇보다 아끼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건 바로 우상이란 뜻이다.

월드컵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수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우상을 만든 것을 성경은 보여 준다. 홍해의 기적을 직접 경험하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이 나약한 인간의 본 모습이다. 오늘날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고 있다. 하나님으로 채워야할 인간의 근본적인 고독을 다른 어떤 것으로 채우려고 우상을 만든다. 그것은 사랑하는 대상으로, 카리스마적인 가치관으로, 그리고 집단주의적 사고 등 여러 가지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 특히 스포츠는 그것이 지닌 엄청난 매력으로 사람들을 쉽게 하나로 만들어 준다. 친목회를 할 때면 운동경기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스포츠의 결집력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 스포츠가 나타내는 힘이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막강하다. 창간 8주년 기념 특집으로 시사저널이 조사한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들' 중에는, 10위 권 안에 박찬호가 들어 있고 11위에 차범근 감독이 올라 있다. 몇 년 전 월드컵 유치를 위해 FIFA 집행위원과 같은 국적의 외국인들에게 식사를 공짜로 대접했던 서울 신촌의 식당 촌 소식은 스포츠에 대한 사람들의 열의가 얼마나 대단한 지 짐작하게 한다. 여기에 국가주의, 민족주의까지 더해지면 국가간의 자존심 싸움이 되어 스포츠는 전쟁이나 다름없는 것처럼 되고 만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이러한 스포츠의 집단적 열광을 누구 하나 특별하게 나무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 대항전을 시청하고 응원하는 것은 국민 된 의무로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는 반드시 이겨야 하므로 상대는 누가 되었든 원수 나라가 되고 우리가 이기는 것이 좋은 것이고, 바른 것이 된다. 문제는 이런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는 데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므로 그것은 하나의 진리처럼 무장된다. 그 것은 힘을 갖게 되어 인간이 하나님 외에 또 하나의 구심점을 만들 수 있는 여지를 부여한다. 편협한 사고일지 모르나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 그것은 결국 사탄의 장난일 뿐이다. 사탄은 집단의 자기중심적 성격을 이용하여 또 하나의 구심점을 제시한다. 스포츠가 지닌 경쟁 논리가 사탄의 우상 만들기 계획에 교묘하게 이용된다.

 

스포츠 살리기?

살아 있는 것의 근원은 하나님이다(창 2:7). 살아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스포츠는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또 하나의 금송아지가 되어 버린 것이 현실이 아닌지 생각해 볼일이다. 생명의 문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단정 내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이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인간이 뭉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스포츠는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스포츠는 무작정 경계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 스포츠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비 성경적일 가능성이 높다.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전 주권적 행위에 의해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스포츠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우주 창조 목적이 그를 찬양하는 것이라면, 스포츠도 그 도구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만일 스포츠를 세상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경계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소홀히 여기는 것이 될 수 있다.

 

대안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TheVoice>는 이번에도 문제의식만을 던진다. 시원한 대안을 제시하면 좋겠지만 그런 대안은 성경이외엔 어떤 화려한 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다. 스포츠에 있어서도 마냥 경계만 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만을 남긴다.

글 : 박형주 기자(neo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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