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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36

 

 

 

 

 

 

  

특별기고

우리들의 글쓰기

    그리스도인들의 글쓰기는 어떠해야 하며,
    문제점은 무엇인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각종 문서와 통신 등을 통해서 수많은 단체와 개인으로부터 엄청난 분량의 글을 접할 수 있다. 그 중에는 기독교 신앙에 관한 내용의 글들도 많이 볼 수가 있다. 우리의 믿음을 북돋우고 삶을 일깨워 주고자 하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신앙인들을 위하여 훌륭한 글을 전해주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글쓰기의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널리 알리고자 글을 쓴다. 글은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 이런 이유로 쓰여진 글 속에는 글쓴이의 생각과 정신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그 속에 담긴 정신은 다른 사람(읽는 이)의 정신에 영향을 주어 삶의 양식에까지 미칠 수 있다. 한 사람이 쓴 글이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과 삶의 양식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글이 다른 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글쓰기의 문제를 짚어 보는 것은 소중한 일이라 하겠다. 더욱이 참다운 믿음의 정신을 전달할 사명을 가진 우리(기독교인)에게 올바른 글쓰기는 더욱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신앙인의 글들 중에서도 간혹 글쓰는 이가 고려해야 할 점들이 무시되고 있는 것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에 우리의 문제점을 돌이켜 보고 필요하다면 올바른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전문가적인 수준에서의 글쓰기 기술이나 형식에 여념할 필요는 없다. 다만 누구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갖추어야 할 점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형식보다는 자세에 있다. 글쓰는 이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항을 알아보고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여 우리의 정신을 보다 선명하게 정리하고 많은 영혼에게 건강한 정신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신중한 생각과 진지한 자세

우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신중한 자세가 중요하다.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글은 다른 이의 정신과 삶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글쓰는 이의 생각에 의해 읽는 이의 생각이 좌우될 수 있다. 쓰는 이의 사고의 게으름으로 다른 이에게 그릇된 정신을 심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에는 신중한 생각과 진지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기분으로 글을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여과되지 않은 감정을 표출하거나 신중한 판단 없이 느낌으로 글을 써서는 안 된다. 감정에 충실하여 극단적인 표현과 거친 말을 하는 것은 타인을 생각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는 이기적인 글이 된다. 자신의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글을 쓰는 동기와 목적을 분명히 하여 자신이 쓴 글에 책임을 다하려는 진지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주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는 자세

다음으로 글은 형평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지 않고 타인과 주변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글을 읽는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을 생각하여 공정성을 가져야 한다.(물론 읽는 사람은 글쓴이의 입장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편견을 버리고 공정한 입장을 고수하여 동일한 잣대로서 관찰하여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편견과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기 쉽다. 부자(富者)에 대한 편견, 가난한 자에 대한 편견, 지역에 대한 편견, 세대간의 편견, 이념에 대한 편견, 운동권 학생에 대한 편견, 종교에 대한 편견 등 수없이 많은 편견에 지배될 수 있다. 동일한 상황에서도 이러한 편견 때문에 부당한 대접을 받고 그릇된 처분을 받는 경우는 허다하다. 드러나는 현상에 대한 집착으로 내면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속단하여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무분별하게 몰아세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진실이시다. 진실을 분별하고 진실의 편에 서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진실을 찾으려는 우리의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때로는 진실이 거만하게 보일 때도 있으며 거추장스럽고 믿지 못할 모습으로 비춰질 때도 있다. 하지만 보이는 느낌만으로 판단하여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부끄러운 모습일지라도 따듯한 관심과 포용력으로 진실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 이해관계와 편리에 따라 진실을 덮어버리고 묵인하는 나태함은 없는가. 진실을 외면하는 나태함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무엇인가. 적당한 가식과 외식이 주인의 자리에 앉아있고 진실은 빈객이 된다. 우리가 타인에게 또는 다른 입장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정성을 가지려고 노력하였는지 반성해 볼일이다. 참된 형평성을 유지한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편견과 고정 관념을 깨뜨리고 자유롭게 진실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형평성을 위한 깊이 있는 고찰이 있어야 하겠다.

 

현상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

다음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바탕이 있어야한다. 현실에 대한 통찰과 객관적인 투시력을 가지고 사물을 내면 깊숙이 바라보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 모든 현상들 속에는 또 다른 이면이 있기 마련이다. 보이는 것만을 전체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나타난 현상 속에서 사실과 허구를 판단하고 보이는 허상보다는 보이지 않는 실상을 알아내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현상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현상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거짓된 글을 쓰게 된다. 정의되지 않은 개념, 관념적 언어(내면 세계)와 객관적 사물(외부 현실)의 그릇된 혼용,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 부족, 이상과 현실 구분의 결여 등으로 잘못된 현상 인식을 전달해서는 안 된다.

올바른 현상의 이해를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다원적인 현실 인식을 가져야 한다. 다양해서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한다. 삶에 대한 이해, 역사에 대한 이해, 말씀에 대한 규모 있는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또 다른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뒤따르지 않는다. 소설가 박경리씨는 이렇게 말한다. '현실을 면밀히 관찰하는 투시력, 그 현실 가운데 스스로 지나가는 푹 젖은 체험, 그러면서도 거기에 삶의 거리를 유지하는 객관화의 힘과 달관의 표현력이 없는 글은 진정한 가치와 무게를 지닌 글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박경리 강의 노트 '젊은이를 위한 문학') 형평성과 현상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말이다. 절대성이라는 미명 아래 또 다른 이면을 보지 못하고 왜곡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쉽게 형평성을 잃고 현상을 잘못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그릇 적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자문(自問)해야 할 것이다.

 

설득력 있는 논지 전개

우리 신앙인들의 글쓰기의 중요한 문제 가운데 또 하나는 잘못된 방식으로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을 통해서 사람을 이해시키려면 무엇보다 타당하고 합당한 방식으로서 납득시켜 나가야 한다. 글은 자신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쓰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을 느꼈으며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논리적인 전개로서 주장을 한다거나, 보편적 상식을 바탕으로 한다거나, 확인된 경험을 근거로 한다거나 어떠한 형태로든 받아들일 수 있는 설득력으로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단히 안타깝게도 신앙인들 가운데는 타당한 설득력으로 호소하려고 하기보다는 심리적 긴장과 불안감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경우도 있다. 신비주의와 권위적 강압으로 호소하는 경우도 있고, 적대심을 유발시켜 감정에 호소하는 경우도 있고, 운명론이나 유교적 명분론에 호소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합리적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가운데 하나는 문제에 대한 분명하고 구체적인 대안이 없고 결론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글들 중에는 새롭고 독창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한 글들이 많이 있다. 더러는 구체적인 사회현상을 다루는 글이 있기는 하지만 문제제기만 하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글은 대책이 서지 않는 글이다. 문제를 지적하였으면 해결방안을 내놓는 것이 글의 기본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문제해결을 전재로 하는 것이다. 해결이 없는 문제제기는 가치가 전도된 글이다. 상대에 대한 문제점만을 늘어놓고 해결에 이르는 제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이것 역시 형평성을 잃은 것이라 하겠다.

또한 분명한 해결책이 담긴 주장이 없이 모호한 결론으로 끝맺는 이유는 설득력 있게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비판적인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비판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물과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나타나는 현상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구체적인 현상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여 결론을 내리지 못하거나, 실질적이지 못하고 원론적이고 모호한 결론으로 급하게 끝맺게 되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비판이 없이는 문제 해결에 바짝 다가 설 수 있는 근접하고도 핵심적인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피상적인 위치에 머무를 뿐이다. 비판력을 가지고 합리적인 설득력으로 문제에 접근해 나갈 때에 발전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문제를 제기하고 냉엄하게 지적하는 것으로도 자극을 줄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으나 보다 애정이 있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남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독창적이고 새로운 해결방안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글의 소재가 한정적이어서 곤란

마지막으로 글의 소재나 내용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신앙인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글들의 내용이 다소 한정적이다. 우리의 가정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접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관한 내용을 담고있는 글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스도인들이 다루어야 하는 내용이 한정되어 있어서는 곤란하다. 넓은 세계를 등지고 교회(신앙 공동체)가 언어를 따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세상을 품고 세상의 문제를 함께 나누려는 마음으로 교회는 세상으로 다가서야 한다. 교회와 세상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버려야 한다. 교회의 문제 속에는 세상의 문제도 포함되어야 한다. 교회의 문제와 세상의 문제가 다르지 않다. 세상의 문제가 교회의 문제가 되어야 하고 세상의 관심에 교회도 폭넓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세상의 관심에서 소외된 교회는 참다운 하나님의 교회라고 볼 수 없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를 찾아내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성(性)문제, 사회문제, 환경문제, 정보의 문제 등 교회가 다루지 못할 내용은 없다. 세상 밖에서 세상을 조롱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 문제에 함께 고민하는 적극적인 마음으로 세상의 십자가를 먼저 짊어지고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글을 마치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을 열거하고 원인과 해결점을 찾아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문제점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효과적인 해결책이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다. 글쓰기에 대한 문제를 스스로 찾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느끼고 자기반성을 통하여 거듭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종류의 글을 쓰던지 정돈된 마음으로 자신의 독창적인 창의력을 무시하지 않고 설득력 있는 비판의 자세로 글을 쓰고자 노력한다면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영향을 주고 진지한 삶의 정신을 일깨울 수 있는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하나님이 주신 값진 선물임을 기억하여 신중하게 사용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박성규 / 여의도순복음교회 바이블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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