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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28

 

 

 



 

 

■TheSight

편집장의 교만



 더 이상은 참고 봐 줄 수 없다. 인간의 인내의 한계는 이럴 때 드러나는 것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저 교만을 참고 봐 주어야 한단 말인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참아 주기에 이건 말 그대로 한계다.
 

사람들은 그를 '편집장님'이라고 부른다. 깍듯하게 아주 깍듯하게. 그러나 그에 대한 깍듯함 뒤엔 무언가가 숨어 있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어느 것 하나 자신 없는 게 없다. 그는 입만 열면 자기 자랑이다.

그가 쓴 자서전 같은 걸 보면 그가 얼마나 교만한 사람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그의 이름은 기쁨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단다. 이름 뜻이야 앞으로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바램을 담은 것이니 탓할 수야 없다. 그러나 그는 그 이름 자체로 자신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라는 생각 속에 빠져 산다.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와 모든 행동들이 모두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기가 막히게도.

그는 또 그의 박식함이나 명철함을 늘 자랑하고 싶어한다. 대체 그런 것들이 있기나 한 것인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영특했고 지금도 여전히 지독하게 똑똑한 놈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한다. 그가 어린 나이에 일찍이 컴퓨터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남들이 잘 모르는 컴퓨터에 관한 지식을 몇 가지 더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 자신 우쭐한 이유가 된다. 잘 모르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그를 조금 위대한 존재인 것처럼 평가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 가면 갈수록 철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날이 가면 갈수록 교만의 정도가 심해진다. 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더욱 더 교만해지기만 하는 것은 아무래도 여자들 때문인 것 같다. 이상하게도 그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왜 여자들이 그를 좋아하는 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의 잘난 '척'하는 것에 사람들이 속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약간은 깔끔한 척하는 그의 외모와 태도에, 혹은 이상하게 잘 변하는 그의 기상천외한 목소리에, 그리고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그의 유머 감각에 넘어 갔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가 갖은 애교로 상대방을 따뜻하게 해 주었겠지.

그도 아니면 그건 그의 동생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그가 그런 뛰어난 동생을 가질 수 있는 건지 아직도 난 모르겠다. 이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의 여동생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한 번 그녀를 본 사람이면 또 보고 싶어할 정도이다. 그녀의 앙증맞은 목소리는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천상의 소리다. 그가 여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분명 그의 여동생이 일러준 재미난 이야기들이나 목소리, 태도 등을 조금 비슷하게 흉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그런 연기에 많은 사람들이 속은 것이겠지.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이것이 전부라면 그나마 참고 봐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사람이다. 그는 미운 짓이란 짓은 다 골라서 한다. 그를 미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말이다. 그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한다고 늘 자랑한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로부터 인정받은 학생이었다는 것, 자신이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학생이었다는 것을 떠들어댄다. 그게 사실인지,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사람들이 잘 해 준 것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또 그는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늘 입에 담는다. 이제 겨우 22살인 그는 마치 인생 다 살아 본 사람처럼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말뿐 아니라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도 모두 할아버지 같다. 어떤 이상한 사람들은 이것을 '사려 깊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지. 절대 그렇지 않다. 가만 보면 아직도 그는 어린애 같은 구석이 많다. 사실 속은 하나도 없으면서 겉모습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교만으로 치장된 거짓된 모습 때문에 그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을 '하늘왕자'라고 하는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교만한 사람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아무도 그를 하늘왕자라고 불러주지 않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을 하늘왕자라고 우긴다. 그가 하는 말을 들고 있으면 온 몸에 퍼져 있는 미세한 세포까지도 치를 떤다. '내가 모르는 게 어디 있냐'는 둥, '그런 것도 모르면 내가 편집장 하겠냐'는 둥, '모르는 거 있으면 다 나한테 물어 보라'는 둥, 겸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다. 그는 애초에 '겸손'이라는 단어를 배운 적도 없는 것 같다.

정말 내 인격이 더럽혀질까 싶어 이런 이야기까지는 하고 싶지 않지만….그는 연극·영화과가 부전공이라고 할만큼 연기에 뛰어나다. 이것을 칭찬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한 가지 권유를 해 주고 싶다. 초등학교를 다시 다니든지 그것이 힘들면 초등학교 국어 공부라도 다시 하라고. 그의 뛰어난 연기는 사람들을 속이고 혼란에 빠뜨리는 데 어김없이 사용된다. 때로 사람들은 그의 연기를 보고 그가 정말 슬픈 처지에 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기도 하고 동정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그가 정말 선량한 사람인 것으로 잘못 인식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온갖 결점과 허점들을 감추고 은폐시키기 위해 이 연기 실력이 사용되는 것이다.

편집장 황희상뿐만 아니다. 그는 늘 자신의 생각과 논리가 옳다고 믿는 사람이다. 자신이 하는 생각, 고민들이 다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은근히 비아냥거리며 무시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다가와 자신의 생각과 고민들을 사람들에게 인지시키고 그대로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나는 때때로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어쩜 이단 아니 사단인지도 모른다는 두렵고 위험한 생각도 해 본다.

그의 자신만만함은 도대체 무엇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자신의 어떤 부분에 그렇게도 자신 있는 걸까. 인간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 그는 도무지 볼만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를 표현하는 말은 여러 가지가 필요치 않다. 그저 '교만' 그것 하나면 족하다.

편집장의 교만을 언제까지 참고 봐 줄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라는 데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한 내가 그를 미워할 수 있으랴. 이렇게 장황하게 그의 교만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괴롭더라도 너그러운 내가 이해하고 참아 주어야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참아야지. 그래 내가 참자. 내가….

아∼ 하지만 여전히 꼴 보기 싫다 정말.

편집장에게 불만 많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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