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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근정보7
저는 함북 ○○탄광에서 왔습니다. 제가 사는 탄광촌은 700세대에 총인구 2800여명이 됩니다. 당시 탄광에 출근하는 사람은 전체의 40%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출근만 겨우 했지 맥이 없어 갱에 들어가 잠만 잡네다. 모두 굶고 맥이 없어서 형편 없시요. 매일 3∼4명이 굶어 죽어 나갑니다. 우리 탄광에서는 작년 12월부터 굶어 죽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배가 고파 집을 떠나 무산역에 도착(2월 28일)해서 4월 20일까지 두 달여간 살았는데, 들어 봤는지 모르겠어요. '꽃제비'라고. 그 꽃제비 생활을 했시요. 3월 16일날 저희 운하가 죽었어요. 7개월 짜리 딸 아인데 젖이 통 나오질 않아서, (아기에게 먹일 분유나 우유는 없냐는 질문에)그런 게 어데 있습네까? 그저 물도 없어서 먹이기가 힘들단 말입니다. 역 안에서 먹고 잤는데 먹지 못해 누워 있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그득 하단 말입네다. 그냥 앉아 있다 누워 있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거란 말입니다. 내가 본 것만 해도 열 사람은 된단 말입니다. 작년까지는 그래도 견딜만 했는데, 올해들어 부쩍 더 어렵단 말입니다. 총살도 요즘에는 쎄게 시킨단 말입니다. 길주에 있을때도 자꾸 총살했는데, 목매달고 또 총으로 한 열방씩 쏘아서 죽인단 말입니다. 공터나 운동장에다 사람을 모다 놓고 공개적으로 죽인단 말입니다. 하도 배가 고프니 무얼 훔치거나 양식을 뺏을려고 사람을 죽이고 또 소를 잡아 먹거나 하는 일이 많단 말입니다. (소 잡아 먹었다고 사형을 시키느냐는 질문에) 그럼요, 조선에서는 소 한마리와 사람 목숨과 바꿉네다. 사람 없어지면 찾지 않지만 제 집 개가 없어지면 얼마나 찾는데.
4월 21일 두만강을 건넜시요. 저는 어떻게 제가 두만강을 건넜는지도 잘 모르겠시요. 무산역에서 거저 배가 고파 죽기 직전이었는데 내가 아는 할매가 '너 저쪽 동네에 가면 잇밥에 고깃국을 먹여줄께'하는 것 아니겠시요? 그렇다는데 더 무슨 이유가 있어야지요. 먹을 것 준다는 말에 정신없이 따라나섰습니다. 할머니 따라 우리와 같이 온 여자가 다섯이었는데 다 처녀들이야요. 그냥 할머니 따라가다 보니 밤 12시나 되었는데 막 산으로 데려가더란 말이예요. 조금 가니까 '엎드려' 그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 한참 엎드려 있었는데 어찌나 춥던지, 거기서 잠들면 죽고 마는 거지요. 또 한참을 기다렸더니 할머니가 '자 이제 건너라!'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보니 떡 두만강 같더란 말입니다. '이것 두만강 아니요?' 물었더니, 할머니는 '야 잔소리 말고 빨리 건너라' 하는 거였어요. 한참 가다 보니 강 반대쪽에 가 있더라구요. 먼저 건너간 치들이 붙잡아 주어 겨우 땅으로 올라왔어요. 중국에 와서 다섯 사람을 거쳤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가 우리를 팔았더란 말이예요. 처음에 안도(백두산 밑 산동네) 저 골짜기에서 온 아저씨가 우리를 데리고 갔단 말예요. 우리 아저씨는 사람이 영 실하고 좋게 생겼지요. 딸 11살 짜리가 있는데, 각시는 연길에서 한국 사람과 눈 맞아 돈 벌겠다고 달아나 버렸다고 해요. 근데 아저씨가 어찌나 잘해 주던지 영양실조 걸려 형편없는 날 살리려고 날마다 약하고 음식을 갖다 먹이고 했어요. 관계도 한달간은 참아달라고 했지요. 아저씨와 손가락까지 걸었어요. 약속을 잘 지켜 주었어요. 그런데 한 10일쯤 되었을 때 우리를 아저씨에게 넘긴 사람들이 와서 아저씨를 협박하고 돈을 내놓으라고 하더니, 결국은 우리를 붙들어 다시 연길로 데리고 나왔어요. 3월 초 개성을 떠나는 기차를 탔어요. 기차에도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탈 수가 없어서, 담배하고 술을 사가지고 창가에서 막 흔들었지요. 그랬더니 남자들이 손을 뻗쳐서 올려주어 창문으로 탔습니다. 무산까지는 10일이 걸렸는데 그동안 계모가 만들어준 옥수수떡 2끼분을 가지고 ㅁ일 조금씩 뜯어먹고 왔습니다. 열차 안에는 굶는 사람들이 많고, 노인들은 넘어지면 그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사람이 밑에 있어도 그 위로 막 밟고 지나가는데 정말 형편 없습니다. 오다가 황해도 황주에 있는 동생 집에 들렸는데, 바로 옆 마을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자기 애를 잡아서 삶아 먹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그 아주머니가 일주일을 굶었답니다. 방안에 앉아 있는데 솥단지 옆에서 강아지 한마리가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고 해요. 자기 아이가 솥단지 옆에서 움직이고 있었는데 너무 굶다보니 정신착란이 일어난 거지요. 빨래 망치로 머리를 쳐서 죽이고는 가마솥에다 끓였다고 해요. 한참 끓이는데 고기삶는 냄새에 반장이 무엇을 얻어 먹을까 와서 물었더니 개를 삶는다 하더래요. 한참 있다가 아주머니가 반장댁에 고기국을 떠왔는데, 국 속에 아기 손톱이 들어 있었다고 해요. 물론 그때까지도 아주머니는 제 정신이 아니었답니다. 반장이 신고를 해서 안전부에서 와서 붙잡아 갔습니다. 이것은 내가 실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일어난 일이니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수집자가 믿을 수 없다고 했더니 이외에도 지나가는 손님을 죽여서 젖담은 사람을 안전부에서 체포한 또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증언함). 무산역에 도착하니까 몸이 완전히 뼈밖에 남지 않게 되었더랬어요. 사람이 못 먹어도 물이라도 잘 마시면 되는데, 맹물도 5원씩 받고 판단 말이예요. 몸이 수분을 받지 못하니까 금방 살이 다 빠져 버리데요. 하는 수 없이 무산역에서 꽃제비가 되었어요. 10일동안 4끼를 먹은 적도 있고…. 정말 사람들이 쎄게 죽어나갑니다. 야! 내가 본 것 중 가장 지독한 것은, 우리는 날마다 무산역에서 잔단 말입네다, 그런데 내 옆 의자에 앉아 있던 여잔데 나이는 마흔세살 먹었는데 2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버티다 죽었어요. 그 여자를 보며 나는 인간이 정말 지독하다고 느꼈습니다. 안전부 야들이 와서 끌고 가는데, 다리를 한쪽씩 잡고 머리는 땅에 질질 끌고 가는데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내가 무산역을 떠날 때 역 안에만 누워 있는 사람들이 한 20명은 되었어요. 지금쯤(중국 온지 20일이 지난 시점임)은 다 죽었을 겁니다(홍씨와 함께 대화하며 '영도도 죽었겠지?' 하며 서로 물어본다. 홍씨 대답은 '이미 죽고 말고, 다들 죽었다야!' 라며 단호히 대답하였다). 홍씨 아이 운하 굶어 죽을 때도 봤어요. 그 아이는 눈망울이 얼마나 예쁜지 또릿 또릿한 눈이 점차 흐려졌어요. 내 손가락을 입 주위에다 가져다 대면 손가락을 먹을려고 고개를 연속 따라 돌리는 게 기가 찼어요. 엄마 젖은 안나오고, 먹일 게 없어서 맹물을 떠다 먹이고, 간혹 국수 한 줄을 얻어다 주면 정신없이 빨고 했는데 3월 16일날 죽었어요. 운하 엄마는 나중엔 몸을 팔았는데, 한번에 100원(한국돈 340원 해당)씩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사탕 10알을 사오라고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면, 나는 사오는 도중에 배고파서 못 참고 4알을 먹어버리고 했습니다.
북한은 '7월 8일 김일성 기념관(금수산 궁전) 헌납 제사를 드리고 남한을 친다'는 계획으로 '중조변경의 군대를 서서히 빼내 휴전선으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증언이다. '이동은 이미 시작되었다'며 '나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며 걱정하더라는 후문. 김일성 3년상까지는 참겠다는 일반 백성들의 정서가 있으나, 최근 탈북한 식량 난민은 북한 정부가 '7월 8일이 지나면 잇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와 관련, 북한에 자주 드나드는 조선족 정부 관리나 무역상들은 '칼 가는 소리가 쓱쓱 들려온다', '화약 냄새가 진동한다'는 표현으로 북한의 전쟁 의지가 예전과는 다르다고 증언. 전쟁 막기 위해서 남한에서 빨리 대규모 식량 지원 해야 한다며 남쪽의 어리석음을 강하게 성토했다. 한 개 마을이 굶주림으로 전멸한 곳도 있다. 함북 연사에서 탈출한 두 노인과 아들 손자의 증언은 5년 동안 배급받지 못했다고. 중앙과 달리 북부지방은 10년간 계속 굶주림에 시달렸다. 그리고 이젠 최악, 절망뿐, 국제 단체 식량 들어왔다는 소문은 들리지만 도무지 구경조차 할 수 없다고.
전체 자료 분석 요약 ― 아사자 수, 사회 현상, 전쟁 가능성, 지원 물량의 의미 북한 전역 현재 대기근 진행 중. 작년 초부터 대량 아사자 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 일부 사정이 나은 지역은 조금 늦게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전 지역 동일한 상황 전개. 굶주림으로 1개 군 적어도 최소 일일 50명 사망. 많게는 150∼200명까지 추정 가능. 그동안 이미 300백만명 아사 가능성 크게 존재. 북한 인구가 2천만명이 채 되지 못한다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떠돌고 있음. 남한 정부와 언론은 96년 11월부터 97년 6월까지 북한에 지원된 식량지원 물량과 예약된 것까지 포함 54만톤으로 집계하고 북한이 7,8월 고비를 넘길 것이라고 예측하는데, 이는 사악한 예측임. 순전히 북한 정권의 붕괴냐 아니냐는 시각에서의 예측일 뿐임을 상기해야. 북한이 7,8월을 넘기고 버티더라도 북한 내에서 죽어갈 겨레의 생명은 무수할 것임. 정권 붕괴 시각보다 북한 인민이 기근으로 인해 죽는 사람의 숫자에 대한 예측과 대안이 먼저 앞서야 할 것임. 북한에 1일 총 소요되는 식량이 1만 2,3천톤으로 볼 때 이 기간에 제공되거나 앞으로 제공될 물량은 10여년간, 특히 근 3년간 최고의 기아선상에 놓인 사람들에게 목숨도 지탱하지 못할 양일 뿐. 매일 수천톤씩 들어가도 들어가는 순간에 먹어치우기에도 부족한 물량임. 따라서 일시에 최저 1백 50만톤 이상의 양식이 제공되지 않는 한 북한은 자체 재생산 능력을 갖출 수 없는 상태에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임.
기근 정보 8 ― 97년 5월 기근소식 이 소식들은 5월 말과 6월 초에 대체로 북에서 온 북한인들을 만나 직접 들은 내용들이고 일부는 북한에 다녀온 조선족들에게서 들은 소식이다. 정리 : 편집부·자료제공 : 통일강냉이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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