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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22

 

 

 



 

 


22호 커버스토리를 준비하면서 생긴 의문이다. 만약 독자 중에 예배당이 성전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과연 그 분이 이번 기사를 원래 의도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예배당 건물이 성전이라면, 건물을 짓지 말자는 우리의 주장은 '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엉뚱한 주장이 되고 만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성전과 예배당 개념을 올바로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하나님의 성전은 더 이상 '건물'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우리가 바로 거룩한 성전임을 분명히 하고 싶다. - 편집자주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

"지금의 교회 건물은 성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매우 사랑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연인을 사모하듯이 성전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여겼습니다. 성전은 그들의 안식처요, 상한 심령이 치료받는 곳이요, 꿈을 꾸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행복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성전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이고 기뻐서 감격어린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올라갈 때 마치 천국에 올라가는 것처럼 기뻐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신앙고백시 가운데서 성전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시편 26편 8절)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며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편 27편 4절)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고 기뻐하였도다"(시편 122편 1절)

우리는 특히 고라 자손들에게서 성전에 대한 매우 감동적인 신앙 고백을 접하게 됩니다. 고라 자손들은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편 84편 10절) 하였습니다. 고라 자손들의 이 고백은 세상 것을 더 많이 얻기 위해 너무나 분주한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세상의 그 어떤 화려한 위치보다 하나님의 집에서 가장 낮은 문지기가 된다 할지라도 그것을 더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라 자손들의 기쁨과 꿈과 행복은 모두 성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왜 이처럼 성전을 사랑하였을까요?

 

첫째로 성전(성막)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죄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죄는 온 세상에 가득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전혀 희망이 없었습니다. 더 깊은 죄의 수렁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사람과 세상은 사랑할 대상이 못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25장 8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가득한 세상에다 성소를 짓게 하시고 그곳을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외면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성소를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든지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겔할더스 보스는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 분 자신을 동일시 하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며 사람을 찾는 하나님의 관심의 표현이다"고 하였습니다. 성전은 임마누엘이신 하나님의 구약적 표현입니다. 지극히 높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낮추어 이 땅에 거처를 두시고 사람과 함께 하신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전을 지극히 사모하였습니다.

 

둘째는 성전은 신앙과 삶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5장 22절을 보십시요.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괘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용서를 받았습니다.

시편 20편 2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저 죽게 될 것을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어 놓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며 감사드렸습니다(다니엘 6장 1∼10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다 지칠 때면 성전을 사모하였습니다. 살다 어려울 때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힘을 얻고 지혜를 얻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신앙의 중심지요, 삶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항상 성전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성전 신앙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신앙은 곧 형식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성전을 나올 때 하나님은 그 성전 안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세상을 살 때는 하나님 없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안식일이나 절기가 되면 온갖 거룩한 모양을 꾸미고 성전에 가서 제물을 드리곤 하였습니다(이사야 1장 10∼17절).

그들은 성전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전을 나올 때는 말씀을 성전에 버려두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자기들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정의를 땅에 던져버렸습니다. 바른 말하는 자를 미워하였습니다. 의인을 학대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짓밟고 착취하였습니다. 뇌물을 좋아하였습니다(아모스 5장 4∼13절). 그들은 심지어 가난한 자들의 머리에 있는 티끌까지 탐낼 정도로 탐욕에 빠졌습니다(아모스 5장 6∼8절). 그러면서도 정한 때가 되면 여전히 성전을 찾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성전 뜰만 밟아도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이킬 수 없도록 왜곡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신앙을 보고만 계실리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충격적인 예언을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장 9∼10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것을 파괴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대로 잘못된 것들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파괴하셨습니다. 첫번째 성전은 솔로몬이 BC 957년에 착공하여 7년만에 완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을 BC 587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통하여 파괴하였습니다(열왕기하 25장 13∼17절, 예레미야 52장 17∼23절). 두번째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지 70년만에 바사왕 고레스에 의해서 성전 재건이 허락되자 스룹바벨에 의해서 재건된 것입니다. 이 성전은 BC 538년에 착공하여 BC 515년에 완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도 BC 63∼62년에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서 파괴되었습니다. 세번째 성전은 헤롯 왕이 재건한 것입니다. 이 성전은 BC 20년에 착공하여 약 10년에 후에 완공되었지만 추가 공사가 파괴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 성전은 AD 70년에 로마에 의해서 파괴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그들의 생명보다 귀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타락했어도 성전을 찾는 일만은 계속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 세계가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충격은 오늘날 우리들의 상상을 훨씬 초월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성전의 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성전의 꿈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성전은 건물이 아닙니다. 공간에 제한되지도 않습니다. 영원히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비교가 안되는 큰 성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어떤 성전일까요?

요한복음 2장 19∼21절을 보십시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 지었거늘 네가 삼일 만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감추어진 보화와 같이 비밀스러운 진리입니다. 이 비밀스러운 진리가 드디어 온 세상에 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참 성전인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상징이요, 모형일 뿐입니다. 성전의 원형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상징이며, 모형인 구약의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파괴되어 버린 것입니다(마태복음 24장 1∼2절).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성전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함께 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는 정해진 때에 정해진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시간과 공간 안에서만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됨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한도 파괴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가정에 있을 때나, 직장에 있을 때나, 시장에 있을 때나, 거리에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성전으로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더욱 놀랍고 새로운 성전을 하나 더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6절 중반절을 보십시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었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도 성전이라고 합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죄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그 죄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던 사람들 아니었습니까? 그런 우리를 성전이라고 하니,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축복입니다.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 하나님은 다시 9무너질 건물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따라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하루에 3,000명씩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고 믿는 사람이 날마나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을 지으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에게 관심을 두었습니다.

오늘 교회들이 예배당 건물이 마치 구약의 성전이나 되는 것처럼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가면서 화려한 예배당을 짓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세기의 교회들이 사람에는 관심이 없고 화려한 건물 짓는데만 온 정열을 다 쏟았습니다. 그 결과 유럽 곳곳에는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화려한 예배당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베드로 성당입니다. 베드로 성당은 가로 길이가 115m, 세로 길이가 199m, 돔의 높이가 119m, 건물 내부가 7,000평이나 됩니다. 내부는 얼마나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지 입이 딱 벌어져 닫혀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예배당을 위하여 수많은 노예들이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속죄권을 파는 돌이킬 수 없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결국 중세의 화려한 예배당 건물들은 교회가 부패해지는 온상이 되었습니다. 유럽의 화려하고 큰 예배당들은 오늘날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고로 쓰이거나 그 예배당을 헐고 다른 건물을 짓기 위해 중장비들에 의해 높이 세운 십자가가 무참하게 파괴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도 계속하여 사람보다 건물에 더 관심을 갖는다면 유럽 교회의 전철를 밟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중심이 아닙니다. 건물이 크고 아름다워야 훌륭한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실 건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인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성전입니다. 아무렇게나 살지 맙시다. 우리는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우며, 영원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김종원 목사 (광주중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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