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et The Voice Logo

 Voice21 No.16

 

 

 



 

 

■커버논단

방황하는 젊은 기독인

보편적 가치관의 붕괴와 그에 따른 윤리적 타락이 급속해져가는 사회 속에서 젊은이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갈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젊은 기독인에게서도 볼 수 있다.

 

문화파괴시대(='새롬병?')

문화혁명을 미덕으로 아는 시대라고 해야 더 옳겠다. 가격파괴에서부터 시작한 '파괴' 바람은 무엇인가? 자신마저도 파괴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자로 인식될 것을 두려워하여 너나없이 모두 파괴 바람에 뛰어들었다. 특히 젊은이들에겐 기존의 전통가치도, 보편적 윤리도, 민족적 동질의식도 새롭지 않으면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들이 점차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 '새롬병(새로워야만 좋은 것으로 여기는 병적 증세)'이 젊은 기독인들에게도 스며들어 그들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믿을까? 물론 새로움을 추구하고 변화를 열망하는 젊은이들의 성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젊은이들의 특성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배경이 다르다. 과거 젊은이들의 반항적 기질은 본질적 순수성을 가지고 있었다(젊은이들의 왕성한 혈기가 미성숙한 지성과 적은 경험을 앞지르고 발생하는 반항적 기질이 점차 시간이 흘러 경험이 쌓이고 합리적 이성판단 능력이 생기면 자제하거나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성향). 그렇지만 이 시대에 '새롬병'은 사회 전반적으로 전 연령층(유치원생에서부터 심지어 노인에 이르기까지)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젊은이들의 보편적 성향과 맞아떨어져 더욱 크게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대중문화의 특징 및 원인

1.대중매체를 닮아 가는 젊은 영혼들

대중매체가 미치고 있는 영향을 눈치 채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이루어지며 어디서부터가 영향이고 어디서부터가 아닌지도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매체의 영향으로 내가 바뀌어 간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식하지 않는다.

대중매체의 영향은 개인적, 개별적이기보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급속히 전파되며 문화를 만들어 간다. TV에서 '모래시계' 방영 이후 검도관에 사람이 몰려드는 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대중매체를 장시간 접촉하는 데도 이유가 있지만 대중매체의 메시지가 더욱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그것들이 고답적이거나 훈계적이 아니라 감정이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설득시키기 때문이다.

'문자'가 대표되던 시대의 사람들은 문자가 놓인 방식을 따라서 선(線)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기에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했다. 반면 이 시대 사람들은 전파나 영상의 특성을 본받아 디지탈식, 감각적, 비논리적 사고 체계를 발달시켰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날의 우리들은 하나님 또한 실제로 만져지는 대상이길 원한다. 하나님도 이치를 따져 가며 머리로 이해하기 보다(물론 꼭 이렇게 하여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영적이든 감각적이든 한 대 퍽 맞아 넘어지거나 가슴이 찡해야 믿어지는 것 같다.

 

2.대중매체를 집어탄 포스트 모더니즘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좋다> 등의 최근 도서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기존의 결혼관, 가정관, 가치관등 세계관이 무차별 폭격을 받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가치관을 파괴'함으로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이런 사상이 이렇게도 빨리 우리의 생활 속에 파고들 수 있었던 이유를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대중매체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멋지게 상품화하여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며 무지한 국민들은 그것이 어떤 배경에서 시작하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도 고려해보지 않은채 그것에 입맛을 바꾸고 있다.

 

3.자유주의적 개인주의

사회주의 정권이 몰락하면서 자본주의는 경쟁 상대를 잃고 말았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안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젊은이들도 경쟁 상대를 잃으면서 자기 만의 안녕과 풍요 만이 최고의 유익(가치)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을 형성하기 시작하는데, 다른 이의 의사나 눈은 무시하고 독특한 모습을 취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파격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4.대학가 안방엔 여전히 운동권

운동권 문화90년대 들면서 학생 운동권의 활동이 앞에 현상들로 인해 점차 수그러들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대학문화의 주도권은 맑시즘으로 무장한 운동권이 쥐고 있다. 맑시즘의 논리가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삼는 휴머니즘에서 나왔다고 해서 맑시즘이나 운동권의 논리가 무익하거나 악마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맑시즘은 한편으로는 못가진 자, 억눌린 자에 대한 뜨거운 온정을 갖고 출발했다. 자본주의(특히 초기 자본주의) 의 폐해의 본질을 지적하는 데에는 맑스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그러나 대안이 되기에는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한계가 있다. 인간의 갈증을 해결할 수 없기에 점차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

 

기독인의 문화보는 눈

그럼 이런 문화 현상에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보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먼저 크리스천들의 문화보는 눈을 살펴보자.

우선, 대중문화에 대하여 별다른 경각심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진지한 살펴봄없이 무분별하게 자신과 공동체에 받아 들이려하거나 그렇지않으면 어떻게 흘러가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방관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다.

둘째, 대중문화를 아직도 세속적인 것으로 보는 교회와 세상과의 분리관이다. 오히려 이러한 사고는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에게서 볼 수 있는데 대중문화가 영적인 성장이나 하나님과의 관계 유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이를 되도록 멀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비균형적 시각을 갖게 하기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직 영적으로 미숙하고 자기 의지가 불확실한 젊은 기독인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이다.

셋째, 완벽한 분리관은 아니더라도 대중문화의 내용에 대해서 끊임없이 회의를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이들은 대중문화에 노출되어 영향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위기감을 갖고 감시자의 눈으로 대중문화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대하는 자세이다. 비관적인 비판은 창조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없고 언제까지나 그 세상문화의 울타리를 넘어설 수 없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대중문화에 대해서 수동적 자세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사람들이다. 문화는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이라 인식하고 창조 이래로 계속해서 개척해야 할 사명으로 인식하는 자세이다.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바람직한 자세이다. 그렇지만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는 중요하지만 창조적이지 못하고 독단적이라면 대중문화와 기독문화 사이의 골만 깊어 갈 뿐이다.

운동권 음악이 Campus를 뒤덮는다고 해서 대항 차원의 찬양으로만 대처하려 해서는 안된다. 창조적이고 독단적이지 않아야 함은, 대항 문화를 통해 더 이상 침식당하지 않도록 해 나가면서 대안 문화를 제시하여 세상을 설득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려면 종교색은 감추고 복음정신으로 점차 적셔가는 접근도 해야한다. 이 때야말로 창조적이면서도 설득적인 생각과 자세가 필요하다.

문화에 대한 우리 기독인은 '개척자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 땅의 해아래 있는 문화는 새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사모하고 흠모할 만한 것도 없다. 오늘날 사회의 사고방식과 가치 유형을 이해하며, 창조적이며 능동적으로 설득력 있게 문화를 새롭게 형성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크리스천은 개척자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개척정신이라는 차원으로 성장 변화시켜 나가는 창조적 행위를 의미한다. '개척자 정신'이라 함은 미래에 대한 예지력, 꿋꿋한 정신력, 정선된 판단력, 견고한 믿음, 신선한 창조력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문화사명을 맡기실 때 이와 같은 모든 능력을 함께 주셨다.

그러므로 나는 이 대중문화의 단편적 현상에 대한 여러 말보다(더 급속적이며 다양하게 변할 테니) 궁극적인 문화 현상에 대처하는 크리스천의 자세에 더 역점을 두고자 한다.

앞으로도 수없이 변화하고 다양하게 그리고 충격적으로 쏟아질 문화 속에서 우리가 문화를 정복해 가기 위해선 나 자신의 교육과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신앙 철학(복음 정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성경적 계시와 기독교적 사고방식과 가치유형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성경적 탈을 쓰고 살며시 다가서는 사상들과 가치관, 문화 등을 어떻게 분별하고 극복해 나갈 것인가? 모든 것의 표준 척도는 성경이다. 성경으로 든든한 반석 삼지 않으면 거친 문화 속에서 정신없이 표류하다 침몰 당할 것이다.

신앙철학을 분명히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공부이다. 무조건적이고 형식적인 성경공부가 아니라 전투를 앞에 두고 긴장하는 군사처럼 진지하고 목적성있게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세상관이 분명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세상은 죄의 산물을 잉태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흘러 가려한다.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사고방식과 가치유형을 이해하여야 한다. 성경말씀만 통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세밀히 관찰하여 자신을 무장시키고 단련시켜 나가야 한다.

셋째, 전문가가 되라. 문화는 모든 구성원들과 어떤 모양으로라도 관련되어 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인정받는 실력가가 되어 각 구성영역에서 복음정신을 심어야 한다. 전문가적 소양과 성경적 복음정신으로 무장하여 창조적이며 설득력있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과거 타락한 세상문화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정복방법은 기독교 공동체가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도하는 방법이었다. 예배와 기도가 사회생활을 수동적, 방어적인데서 능동적, 창조적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기독인으로서의 영적 기본생활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창조, 정복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각자가 경건생활로 자신을 견고히하고, 공동체가 복음정신으로 무장하여 연합하고 힘을 모을 때 더 큰 능력으로 그 사명을 완수해 나갈 것이다. 세상문화라는 여리고성 앞에 두려워하거나 방관만 할 수 없다. 그곳은 우리가 어차피 정복해야할 과제의 땅이다. 담대하라, 젊은 기독인이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이미 세상을 이기셨다고.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한복음 16:33)

글 : 류정훈{E.S.F 간사}


  
관련기사
 

 

대학, 허물을 벗을 때다

 

캠퍼스를 부활 시키자

 

모여야 제대로 타오르는 장작불

 

낌새가 보이면 바로 연락해 주세요

 

 


Copyright(c) 1997, Voice21. But All right not reserved.
The grace of the Lord Jesus be with God's people. Amen (REVELATION 2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