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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


기독교인의 국가관. 기독교회가 탄생 이래 교회와 국가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 오고 있다. 중세에 있어서는 교회가 교황청을 통하여 국가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래 교회와 국가는 서로 다른 영역으로 이분화되었다. 국가인 세속 정부가 교회인 영적 실체를 부정하거나 탄압하려할 때 강한 저항이 일어났다. 우리는 이것을 스코틀랜드 종교개혁과 영국 청교도 혁명에서 볼 수 있다. 청교도들은 칼빈 신학에서 세속정부에 대항하는 이론의 틀을 차용하였다.

『칼빈은 시민 정부가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명령을 내릴 때 순종을 하라 했으나, 만일 정부나 국가가 비성경적인 요구를 집행하려 할 때는 평화롭게 해결하려 하되 최악의 경우에는 시민들의 순교나 피신을 권면했다.』 칼빈은 시민을 보호해야 할 군주가 폭정을 행할 때, 헌법상의 관리인 즉 "고대 스파르타의 왕들에 대한 감독관, 로마 집정관들에 대한 호민관, 아테네의 원로원에 대한 지방장관"과 같은 자들이 군주의 사나운 방종에 대해 항거를 허용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Ⅳ, 20장). 칼빈의 제자인 베자는 시민 정부의 비성경적이며 불법적인 요구에 부딛칠 때 시민은 잔인한 치자에 저항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칼빈보다 한층 농도 높은 시민 저항권을 인정하였다. 베자의 시민 저항권은 영국 청교도 지도자들에게는 더욱 확대 해석되어 시민의 무력 봉기를 고양시키게 되었다. 이 확대 해석은 당신의 상황이 급변하고, 또한 왕당파의 적대행위에 대항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영국 청교도 지도자인 크롬웰 (Oliver Cromwell, 1599-1602)은 1649년 1월 챨스1세를 교수형에 처하면서 혁명군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들로서 영국왕을 처리한다고 공언하였다. 즉 왕도 하나님보다는 위가 아니며 법률에 저촉되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놀라운 말을 토해 낸 것이다. 죤 낙스나 윌리암 퍼킨스 (William Perkins, 1558-1602) 같은 청교도들도 시민정부에 대한 무력항쟁에 대해서는 칼빈 사상보다는 베자 사상을 따랐다.

실질적으로 시민저항군은 의로운 전쟁 이론으로 영국사회에 깊게 침투되었다. 퍼킨스의 제자인 윌리암 에임즈 (William Ames, 1576-1633)는 전쟁은 악한 것으로 추론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수 불가결한 악으로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우에 기독교인이 양심에 거리낌없이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가? 에임즈는 3가지 조건을 든다. 첫째,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평화로운 수단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위대하고도 놀라운 일을 수행하기 위해 불가결하게 사용하는 무력이다. 둘째, 시민정부의 최고 통치권자의 권위적인 명령이 있을 때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 셋째,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거나 회복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 청교도 혁명전쟁 기간 중에 에임즈와 같은 전쟁이론은 폭 넓게 수용되었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16,17세기와 같은 청교도 혁명 사상이 문자적으로 운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가르침은 국가가 직접 교회를 탄압하여 복음이 위협을 받지 않는 한 무력 봉기를 금하기 때문이다. (로마서 13장, 베드로전서 2장 참조)』 혹 어떤 자는 이러한 우리들의 설명에 반발하려 할 것이다. 『예수 믿고 거듭나고 천국을 가면서도 이 세상에서는 억압받고 착취당하고 좋은가? 복음만 선포하고 사회악이나 사회 구조의 모순은 방관만 해야 되는가? 교회는 보수주의 온상이요, 사회 구조악의 동반자가 아닌가? 교회가 비정치적이기 때문에 독재자가 날뛰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견해들은 교회의 근본 원칙을 모르고 말하거나, 아니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오도하기 때문에 생긴다. 교회는 말씀 선포의 장소이지 정당이나 국회 의사당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물론 교회도 사회악이나 사회 구조의 모순에 깊은 관심을 표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에게 정치를 포함한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수행시켜야 한다. 구체적으로 교회는 말씀을 주고, 말씀을 받은 평신도들은 말씀에 근거, 사회에 나아가서 정치제도를 고치고, 사회 개혁을 하고, 사회악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교회가 교회 되도록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나 교회가 정부가 되라고 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나 교역자는 정당인이 아니다. 교역자는 성경 말씀을 선포하여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다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기에 허황스러운 지도자 숭배나 정부 조직의 시녀화나, 대중적인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는다. 교회는 말씀 선포를 안 해서 또는 잘못해서 문제시 될 수 있지만, 정당 간판을 안 붙였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말씀 선포를 통하여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선지자 역할을 해야 되겠지만, 교회 그 자체가 정치 기구화 되어서는 안 된다.

정준기
장로교회 광주신학대학 문화사 및 역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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