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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10

 

 

 

 

 

 

  

■ 커버스토리

 

정치와 부패

구약시대 민족이 형성될 때는 통치개념이 없었다. 때문에 왕이 아닌 대표자가 세워져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가 이루어졌다.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백성의 다양한 의사를 하나로 묶어주는 대표자. 성경 최후의 대표자, 사사였던 이는 바로 사무엘이다.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삼상 8:19)"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인정치 않으려는 불순한 동기에서 눈에 보이는 왕을 요구했다. 이스라엘이 고통 당할 때마다 하나님게서 친히 그들을 도우셨음에도 말이다. 그러던 중 암몬이 쳐들어 왔을 때 이스라엘은 왕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려 하지 않고 사람을 왕으로 세워 해결하려 했다. 이는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의지하려는 불신앙의 표현인 것이다. 그들의 우선적인 만족을 충족시켰던 준수한 외모의 사울왕. 그의 나중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정치가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후유증들을 알게 한다.

어쨌든 이렇게 왕이 세워지고 나서야 통치와 정치라는 개념이 생겨났으며 왕의 탄생은 인간 사회의 부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타협하는 기독인, 회피하는 기독인

지난 날 우리의 정치와 나라 형편은 지극히 혼란스러웠고 어지러웠다. 복음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그 상황이 내비친 틈들을 용감하게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자신을 해치려 했던 수많은 위험들, 위정자들의 부패와 권력 남용으로 어두웠던 정국에도 상처받고 핍박받던 백성들에게 과감히 복음을 선포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그러나 마땅히 상황을 뚫고 복음을 전해야 할 우리 크리스천이 오히려 상황과 현실에 결탁하여 자신의 안일만을 누리려 했던 추한 역사가 있었다. '국가와 민족의 장해를 위한 조찬 기도회'가 바로 그 중 하나이다. 로마서 13장 7절 말씀을 보면 "모든 자에게 준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를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하셨다. 이는 성도들이 세상 정부가 하나님의 사자로서 정당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에 대하여 복종하는 것이지 권력을 남용하고 사탄의 사자 노릇을 하면서까지 복종하라는 뜻은 아니다. 5·6공 시대의 독재자들에게 굴복하여 그들을 찬양하는 설교를 하고 그들의 행적에 박수를 보내는 등, 자신의 안전과 교세 확장만을 위해 신의 이름을 뒤에 두고 권력에 빌붙었던 종교계의 지도자들이 지금도 여전히 높은 자리에서 영향력을 행사함을 볼 때,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비굴하게도 자신의 사명을 망각한 채 현실에 타협하는 지도자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아예 회피하고 마는 모습도 있다. 날마다 기도하고 예배에 참석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에는 관심조차 없으며 그들에게 정치, 사회, 시사는 말만 들어도 골치가 아픈 것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들은 정작 세금을 내고 의무교육을 이행하는 등 법과 정치 사회의 테두리에 살고 있으면서 말이다.


정치하는 크리스천

요즘 교회의 집사님들, 장로님들의 서거 출마가 잦아지는 추세다. 하나님의 구원과 복음을 입은 이들이 나라의 일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됨은 나라의 대사를 주님의 뜻에 좀 더 흡족하게 이룰 수 있음이요, 그 안에서 축복받게 되는 일일 것이다. 때문에 기독인의 선거 출마나 정치 활동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총선 때도 이러한 추세는 예외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교회적인 모습이 필요하리라 믿는다. 당선된 사람이라면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당당히 내세우고 모범된 모습으로 일관하여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매사에 당당히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밝히고 딱 부러진 자세로 정계를 이끄는 중국의 이등휘 총통을 그 모범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선거는 원래 붙는 이가 있으면 떨어지는 이도 있게 마련이다. 선거에서 탈락되는 종교인도 상당하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목표한 자리에서 떨어지면 그것으로 그만인 듯 싶다. 목표량보다 조금 아래의 직분에 도전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어쩌면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 그 모습의 저변에는 아마도 '난 집사니까', '난 장로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는 건 아닌지, 세상적 위신을 소중히 여기는 건 아닌지. 한 번 정치 활동으로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고 봉사를 하겠다고 작심한다면 시장 선거에 낙선하더라도 저 아래 동네 통반장 직위에도 기꺼이 도전하여 일하는 크리스천들이 있는 그 때를 기다린다면 어리석은 일일까?


청년들의 정치 무관심 증후

지난 날 어른 세대의 모습이 그러했다면 다음 세대를 짊어질 청년 크리스천들은 어떠한가?

요새 젊은이들에게 정치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물어보면, 현 대통령을 비롯하여 십여 년 전 대통령 선거에 출마,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너 정치인들의 이름만 겨우 손꼽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정부의 고위직에 누가 있는지 그들이 과연 어떠한 일들을 전개해 나가는지에 대해서는 머뭇거리는 이들이 태반이라 한다. 심지어 자신의 선거권이 몇 연도에 유효하게 되는지 조차 모르는 이들조차 많다는 것이다. K신문에서 광주지역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이번 선거에 유권자로서 자신의 지역에 어떤 인물이 출마하는지 알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20대의 72.9%가 모른다고 답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층의 이같은 정치 무관심 현상은 매우 극심하다.

여론의 힘은 무시할 수 없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지난 몇 달 간의 전직 대통령 구속사건과 그 외 비리 척결과정에 있어서 여론이란 힘은 더욱 건재함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었다. 때문에 조만간 지금의 젊은이들이 이 나라의 중역이 되는 그 때, 우리 청년 크리스천들에 있어서 젊은 시절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가 힘들게 일구어 낸 '여론의 힘'을 훗날 유명무실케 하고 말 것이다.

보통 민주주의라 하는 말은 국민의 대의로 나라의 일에 좌우됨을 의미하지만 우리 한국의 현실은 결코 그렇지가 않은 듯하다. 지금가지 높은 지위와 권력, 경제력을 가진 소수의 생각과 주장 하나로 이 나라의 중대사가 좌지우지 되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이러한 때 과격한 데모 행위가 아니더라도 주님의 뜻에 맞는 평화적인 방법, 우리의 옳은 뜻을 전달하고 실행시키기 위한 대응 방법들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여왔던 타협과 굴종도 아니요, 회피와 무관심도 아닐게다.
 

글 : 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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