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재채기 같은 글들입니다. 엣취! 전 재채기가 좋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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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채기 04. 순수예술의 양면성소고(小考) ------------------------------------------------ ◎ 예술에서 순수를 느낄 때 고대 문명의 유산들을 살펴보면 예술은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영향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라스코의 동굴 벽에 그려진 소 그림을 예로 들어보자. 벽화의 생동감 넘치는 활력과 곧 뛰쳐나올 것만 같은 긴장감은 현대의 어느 누구도 재현해낼 수 없을 만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벽화를 그린 주체가 먼 훗날의 우리까지도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 벽화 속의 소가 벽화의 주체에게는 인생에서 매우 절실한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인간에게 소라는 동물은 생명을 연장하게 하는 대상임과 동시에 생명을 위협하는 대상일 수 있는, 한순간도 주의를 놓고 살 수 없게 만드는 그러한 절실한 대상이지 않았는가. 동서양의 '목적론적 적합성에 대한 인지의 표현'으로서의 예술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과 그 정신과는 떨어뜨릴 수 없는 존재였다. 특별히 예술을 그 창작자의 전인격적인 경지와 연결하여 생각했던 것은 동양의 전통이었다. 동양에서의 예술은 인격과 정신의 높은 차원을 달성하는 것으로서, 그것의 순수함이나 가치가 판단되었다.
◎ 순수예술과 참여 예술이 말하는 순수 『… 그러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예술이 예술 외적인 다른 목적에 봉사할 때, 그것은 순수하지 못하다고 간주된다. 도덕적 목적에 종속된 예술에 대해 사람들은 오히려 진부하다고 느낄 수 있고 도덕적 가치를 예술에서 명시적으로 제시하려할 경우 오히려 그것이 예술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 도덕적 목적은 많은 경우 정치적 목적이나 이념적 목적으로 변형되기도 하는데 이 때 예술의 순수성은 더욱 문제가 된다. 흔히 정치적 예술은 불순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도구로서의 예술에 관한 강의록의 일부 부분이다. 이 부분 바로 뒤에 나오지만 참여예술 측의 입장은 이와 반대이다. 참여 예술인들의 눈에 보이는 순수예술인들은 예술적 순수의 경지를 내세워 정치적 중립이나 정치에서 예술을 분리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순수예술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예술로서 기존의 정치 질서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거나 옹호, 또는 선전하고 재생산하는 존재이기에 아이러니컬하게 스스로 불순한 예술이 되어버린다. 어째서 이러한 주장들이 지금 대립된 양상을 보이고 있는가. 이러한 갈등은 서양의 학문에서 드러난 것인가 아니면 한국 고유의 상황적 결과물들인가. 솔직히 서양의 사정은 잘 모른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이 한국이고 한국의 허고많은 도시 중에서도 '광주'라는 것을 고려해볼 때는 이러한 갈등을 여유로운 논리 싸움으로 치부해서는 곤란해진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위협당하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순수예술과 참여예술의 이 같은 갈등이 현실의 갈등으로 불거져 나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해 말부터 올 초까지 계속되던 '광주비엔날레 문제'때문이었으니까.
◎ 순수들의 갈등 폭발, 비엔날레 잠시 비엔날레에 대한 설명부터 하자. 알다시피 광주에 국제적 미술 행사인 비엔날레가 걸맞았던 이유엔 광주가 가지고 있던 문화적 자원들에 있었다. 첫째로는 80년 이전에 이 지역이 가졌던 예술정신이었고 둘째는 80년 5월 광주항쟁의 경험이 그것이다. 그러나 비엔날레를 개최할 수 있는 문화적 조건은 충분하다 할지라도 행사의 유치와 제작과정에 있어서는 그 주체가 매우 불분명한 상태였다. 행사가 유치될 당시 정치적으로 세계화 정책을 등에 업고 '위로부터 만들어진'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민들은 그러한 행사가 있었는지도 몰랐던 것이 사실이었으며, 게다가 시민간의 충분한 논의도 없이, 위에서 문화적 자원을 선취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비엔날레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이러한 점에 있었다. 이런 식으로 유치된 비엔날레 그 자체엔 이념 또한 불분명했다. 80년과 90년 초 전두환 정권 하에서 예향이란 단어와 예술의 거리(동구 궁동)라는 공간명들이 사용된 바 있다. 이것은 순수하게 미술이나 문화 및 예술적 의미 외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이중적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고 설명할 수 있는데, 반 정부 민주주의에 대한 도시의 요구를 은폐할 수 있는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광주엔 한국예술인총연합회(예총) 중심의 순수 예술을 지향하던 예술인 그룹과 5.18 광주정신을 예술적으로 승화하려는 그룹들 즉 민족예술인총연합회(민예총)이 존재한다. 80년대 초 심예연이나 광미공이 대표적이다. 순수예술 대 참여예술이란 갈등이 한 도시 안에서 대립 구도 아래 존재해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정권은 정치적인 의도로 민주주의 욕구를 은폐하고자했으며 그 가운데, 광주 예술계의 갈등부분인 이념적인 부분이 정립되거나 승화 및 정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비엔날레가 90년대 중반 유치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갈등과 대립 구도 아래에서 민주주의의 예술로서의 승화는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2회 때 민예총 유명인사인 강연균 씨를 영입하여 이같은 갈등구도에서 타협을 보아 발전적인 승화를 기대 받았던 비엔날레 자체적으로도 제 3회를 앞두고 최민 총감독을 해임하고 오광수씨를 영입한 데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결과를 드러내고 말았다.
◎ 순수의 양면성 80년 당시와 군부 정권 하에서 순수예술을 주장했던 이들. 그들 대다수는 민중예술의 지적대로 '예술로서 기존의 정치 질서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거나 옹호, 또는 선전하고 재생산하는 존재'로 남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한 선택으로 그들이 얻은 대가는 무엇인가. 그들은 그 때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후로도 풍족함과 안락함을 오랜 동안 누릴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그것을 지켜낼 수 있었다. 광주에서 단적인 예로 예총은 시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데에도 별 어려움이 없다. 아직도 국가의 인정을 받지 못한 민예총이 받게 되는 지원금 1백만원 가량에 비해 예총이 받는 지원금은 천만원대에 이른다. 연극 공연 한번 하는 데 드는 비용이 수천만에 이르는 것을 볼 때에 그 차이가 너무 뚜렷하다.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민중 미술인의 그림이 '레드계'라고 부정적 대우를 한 전력을 가진 오광수씨는 이 곳 광주에서 떳떳하게 제3회 비엔날레 전시 총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뿐인가. 비엔날레의 두뇌격인 대다수 전시위원회 위원들도 순수예술인 측의 인사들로 몸통을 교체한 바 있다. 예술계의 참여냐 순수냐의 이념 구도가 전혀 해결되지 않던 상황에서 새롭게 선임되었던 전시위원회 위원들 중에서 누구 하나 자신이 맡게될 위치에 대해 의문을 표하거나, 재고를 택한 사람은 없었다. 수많은 시민들과 지식인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상부구조의 인사들은 눈도 까닥하지 않는 듯 하다. 여기까지 보면 순수 예술인들이 말하는 순수가 곧 자신들의 삶의 안락을 위한 도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곧 그들이 말하는 순수는 예술 주체들의 지고한 정신과 삶의 자세를 드러내주는 가치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참여예술은 과연 그들이 말하는 순수를 지켜낼 수 있었는가. 80년 당시 운동권에서 크게 부각된 참여예술, 민중예술. 이것은 당시 광주시민항쟁을 주도하고 그 뜨거운 민주화의 열망을 전국에 펼치는 데 큰 몫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5월 시민항쟁이 끝난 후에도 몇몇 살아남은 자들은 그 진상을 예술을 통해 광주를 비롯한 전국에 전달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시대, 세계화를 바라보는 90년대 이후에 들어서면서부터 참여예술 측의 반성의 목소리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과거 부흥했던 문화운동들의 쇠퇴를 맛보는 지금, 80년 이후 모든 예술의 흐름을 과도하게 주도했던 그들이 획일성과 보수성의 기제로서 작용한 나머지 다양한 접근과 예술적 시각들을 수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들이 광주정신을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민중극, 민중가요이어야만 순수한 것처럼 그 외의 것은 배제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제 그러한 예술 정신을 어떠한 자유로운 형태들로 승화시켜, 시민들의 의식에 전달할 때가 된 것이다.
◎ 결론 어떤 것에 예술이 도구화가 된다는 의미가 어느 종교에 귀속한 이들에게는 기꺼운 일일 수 있고 이러한 면들이 긍정적일 때도 있다. 그러나 예술의 도구화는 어느 시대에서는 그 축적되어온 힘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정치나 현실의 권력에 부합하여 예술인 개인의 안전과 영리를 취하거나 때로는 타 예술인의 예술 세계를 강제로 매몰시키는 광주의 예술계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나아가 동시대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짜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한 해답의 추구를 방해하는 악영향을 미치게 할 수도 있다. 현실의 조망과 목격을 통해볼 때, 예술에 있어서 지금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순수를 주장하는 예술의
뒤에는 오히려 그 순수성을 믿기 어려워진다. 즉 동서양을 막론하고 순수에 대한 가치관을 놓고 볼 때 그 양면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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