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ice21 Logo

 Voice21 No.33

 

 

 

 

 

 

두루마리 - 아모스서 강해 (1)

본문 : 아모스 1장 1절 말씀

아모스서를 읽어감에 있어서 아모스가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하게 된 원인과 그 역할을 살펴보며, 특히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예언을 하였기 때문에 북이스라엘의 시대적인 상황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아보도록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다루시는 방식은 변화가 있겠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에 대한 근본적인 뜻은 변하지 않고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지속된다. 오늘 다루는 내용도 계시의 방식에 있어서 차이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교회와 각 성도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변함없이 적용되고 있다.



아모스는 무엇으로 예언을 하는가?

여로보암 2세는 솔로몬이 차지했던 지경에까지 국토를 회복하였을 뿐 아니라 경제적인 부를 누렸다. 이렇게 모든 것이 태평해 보이던 시대에,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묵시로 주신 말씀을 따라 북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고 미래를 예언하였다. 그는 북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선지자직을 감당했다. 그는 선지자의 그룹에 속해있거나 교사로서 지낸 적이 없는 인물이다. 단지 남유대 땅의 조그마한 동네 드고아의 목자였다. 그가 어떻게, 언제 북이스라엘에 왔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모스의 예언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시를 인간에게 알려주실 때만 비로소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의 도에 대해 안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를 접하고는 있다. 하나님께서 일반계시를 통해 자신에게서 분여시키시는 지혜와 능력, 덕 등을 만물 안에 사는 인간들은 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대적자이기에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접하면서도 그 은총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도에 이르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생명의 계시를 깨달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택하시고 그 택하신 백성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밝히시는 방식이 기독교의 독특한 계시 방식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자신이 택한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감동시켜서 그의 계시를 드러내신다. 신명기 18:9∼4에서,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에 대해서 그가 명한 모든 것을 선포해야 하며, 그 말씀을 가감해서는 안되며, 여호와의 말씀을 다른 신의 이름으로 해서는 안되며, 그 선포된 말씀이 증험과 성취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달하는 내용에 있어서도 우리가 살펴야 하는데, 그것은 선지자에게 직접 소리를 내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음성을 듣거나 보아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 그것도 모세 오경을 아모스가 잘 알고 있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아모스서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모스가 독특하게 그 시대에만 국한된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던 그 때의 언약과 내용이 출애굽한지 약 700여 년이 흘렀어도 동일한 언약과 말씀으로 선지자를 통하여 하시는 것임을 보여주며, 결국 구약의 근본적인 하나님의 언약과 구원은 현재의 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아모스는 모세 오경, 즉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아모스를 감동하여 아모스서를 기록하였으며,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가감 없이 전달하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자세가 참다운 선지자의 자세이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계시를 전달하셨다. 이 내용은 아모스서에서 중요한 맥을 이루는 것 중의 하나이다.

아모스서에서 드러내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북이스라엘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는 지혜자가 잠잠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듣고자 하는 여호와의 말씀이 기근이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암8:11∼12) 이처럼 북이스라엘에는 종교지도자들은 많았으나 참다운 선지자가 드물었고, 종교적 행위와 여호와의 말씀은 읽혀졌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기근의 상태로 자신들을 선택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배도하는 상태였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교회를 통해 세우신 자들을 통하여 자신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신다. 교회를 담당하는 교역자들은 파수꾼으로서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의 자세처럼 하나님 말씀에 정직하게 대하며 성령께서 조명하신 바를 가감 없이 선포해야 할 책임이 말씀을 맡은 자에게 있다. 또한 구약의 백성들보다 더욱 분명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신약교회 성도들은 더욱 분명한 하나님의 복음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서 늘 받아들이며 알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자 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 분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감사하여야 할 것이다.

 

여로보암 2세 때의 북이스라엘 상황

북이스라엘은 주위의 다른 민족들에 의하여 솔로몬 때에 유지하고 있었던 영토를 많이 빼앗겼다. 그리고 이민족의 침입이 잦아서 이스라엘이 이민족에 대한 완전한 자유를 구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도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맺으신 백성이기에 여로보암 2세를 세워서, 이전에 솔로몬 시대에 누렸던 지역뿐만 아니라 다메섹까지 지배하도록 했다. 여로보암 2세는 정치적인 공적이 북이스라엘 어느 왕보다도 뛰어났다. 그의 이러한 치적은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이 당하는 고통을 넘어가지 않으시고 이민족들 가운데서 구원을 베풀어주신 때문이다. 그러나 여로보암 2세는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여로보암 1세의 종교정책을 그대로 따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율법의 근본적인 뜻을 망각하여 부도덕하고 불의하고 종교적으로 타락한 나라로 이끌어갔다.

솔로몬의 배교적인 정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둘로 나누셨다.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은 유대와 베냐민 지파를 구성하여 남유대로 지속하셨고, 여로보암 1세는 나머지 열 지파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북이스라엘을 세웠다. 여로보암 1세의 죄악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과 함께 역성혁명에 가담한 열 지파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려 한다면 자신의 왕권이 무너질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왕상12:27) 그래서 자신이 배워오고 익숙한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하나님의 법도에 어긋나는 배도의 종교적인 정책을 편 것이다.

그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벧엘과 단에 두 금송아지를 만든 후 그 금송아지가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 신이라고 공포하였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렸던 제사 대신에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에게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 일은 여로보암 1세만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낮은 분별력을 소유한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죄를 짓게 한 것이다. 이 죄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삶의 규범의 핵심으로 주신 십계명의 제 2계명을 직접적으로 어긴 죄이다. 이같은 사실을 볼 때, 교회의 참다운 본질을 깨닫고 지키고자 하는 노력보다 지도자의 부와 명예의 권력의 유지를 위한 판단으로 교회를 운영하였을 경우, 우리는 여로보암 1세의 근본적인 죄악을 동일하게 범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운 여로보암 1세는 그 우상을 섬길 제사장을 세우는 데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다.(왕상12:31) 이 죄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을 무시한 처사이다. 하나님의 율법에서는 레위 지파에서만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도록 하고 있다. 또 여로보암 1세는 보통 백성들이 지켰던 절기를 변경시켜서 자기의 사악한 종교정책을 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에 세 번, 즉 유월절과 칠칠절과 수장절에 예루살렘에서 예식을 행하였다. 그러나 여로보암 1세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유다의 절기(초막절 7월)와 비슷하게 8월 15일 절기를 정하여 벧엘에 쌓은 단에서 분향하도록 하였다.

이처럼 여로보암 1세의 종교정책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타락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여로보암 1세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고 이스라엘 역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들의 선조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전에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운 적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을 때, 산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모세 당시의 금송아지 숭배에 대하여 여로보암 1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의 우상의 형식을 취하여 시행한 것이다. 이와 같은 여로보암 1세의 죄는 북이스라엘 왕과 백성들에게 계속되었고 북이스라엘이 결국 멸망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아모스 당시의 왕인 여로보암 2세도 동일하게 여로보암 1세의 죄악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여로보암 2세의 북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강력한 국가이고, 이민족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소유하였기에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그 사회는 부익부 빈익빈이 심각하여 권력 있고 부유한 계층만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분위기였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돌보는 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것을 탈취하고 핍박하는 사회였다. 또한 사회적으로 기본적인 질서가 무너져서 뇌물이 이루어져야 일을 할 수 있고 정직한 자와 의인을 오히려 핍박하는 권력와 부만이 유일한 법이 된 사회였다. 특히 종교적으로 여로보암 2세의 죄악을 따르면서 바른 선지자들을 핍박할 뿐만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많은 제사와 거짓 선지자들을 등용하여 종교적인 형태만을 유지하는 타락상을 보여주는 사회였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타락상'을 보여주는 사회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여로보암 2세 때의 정치와 사회와 종교의 분위기는 하나님의 법도가 무너지고 인간의 권력과 부만이 중시된 사회라 할 수 있다.

우리 시대는 어떠한가? 북이스라엘처럼 종교적인 행사와 규정들을 잘 지키고 종교적인 열심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통하여 정작 드러내시려고 하는 그 분의 말씀은 강단에서 제대로 선포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역사를 섭리하면서 교회를 통하여 드러내신 많은 신앙고백과 교리 등이 우리 시대에도 귀중하게 자리잡고 있는가?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도록 하여 교회 회의에서 결정 내린 내용'에 먼저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권형록 목사 / 안산 푸른교회 담임 

 

 


Copyright(c) 1998, Voice21. But All right not reserved.
The grace of the Lord Jesus be with God's people. Amen (REVELATION 2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