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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31

 

 

 



 

 

■TheSight

요즘 교회정치 '성경적'입니까?

장로와 목사직에 대한 바른 이해와 바람직한 교회 정치의 모습에 대해

교회의 지체가 바른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까.교회의 머리는 누구인가? 참된 교회는 어떤 인간, 혹은 집단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며,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를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통치하신다. 다 아는 이야기.

그런데 언제부턴가 교회에서 쉽게 발견되고, 이젠 익숙해지기까지 한 모습이 있다. 장로와 목사간의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인간적인 예의나 겸손 등의 추상어를 내놓으며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곤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법은 세상의 도덕이나 연장자에 대한 예우 등을 '초월'한다. 우리가 의지하고 해결을 강구할 분은 단 한 분, 성령님이심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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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착각하는 목사

목사와 반목하고 목사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장로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그 동안 못마땅한 생각이 들곤 했다. 어떻게 '목사님'에게 저렇게 공손치 못하게 대할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세상의 도덕이나 전통에 의존하는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진리를 훼손시키고 있는지.

우리 한국 교회 정치의 가장 큰 문제를 목사 1인의 '권력 독점'이라고 말한다. 목회자 한 명의 권력 독점 의식은 교회 내의 치리 문제 전반에 걸쳐 '독재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음은 교회 정치의 권력 독점의 폐해를 지적한 한 장로의 말이다.

"오늘날 교회 정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어떤 문제에 있어서 교인 99명이 한 가지 의견을 주장해도 목사 1명이 다른 생각을 내놓으면 그대로 따라간다.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들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교인들과 목사간에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게 해서 교인들이 교회를 이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이 잡고 있는 권력은 악하게 변질되기 마련. 중세 카톨릭의 교황 정치 부패가 이를 역사 속에서 입증하고 있다. 성경적으로 볼 때 교회 정치는 엄연히 어느 한 사람의 정치가 아닌 '장로 정치'다. 목사는 장로 중 한 사람으로서만 당회의 소속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장로교 헌법에 매우 분명하게 기록된 바다.

 

교인들의 '어른 모시기 근성'

문제의 원인은 목사 한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교인들이 도덕적이고 유교적인 사고 방식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도 문제가 된다. 때문에 성경적인 장로 정치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런 사실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교인들에게는 목회자를 교회의 가장이나 어른처럼, 혹은 왕처럼 '모시려' 하는 세속적 근성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까닭이다.

한국 교인들 대부분은 전통 유교 사회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이것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삼기 쉽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교회 정치를 행하는 데 커다란 방해가 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 방식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교회에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과 진리가 분명하게 드러나겠는가. 교회의 정치는 인간의 왕정 정치도, 중앙 집권 정치도 될 수 없다.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만 겸손히 수종드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보조자'로 전락한 장로

자신을 왕처럼 여기는 일부 목회자들의 경우도 우스운 일이지만, 자신을 목사의 '보조자' 정도로만 생각하는 일부 장로들의 의식도 문제다. 장로직이 목사직과 동등한 자격임을 모르고 있거나, 오히려 그것이 비성경적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일도 벌어진다.

행정에서 인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교회내의 모든 문제가 당회의 결정에 의해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당회의 의사 결정은 단지 형식에 그치고 만다. 실상은 목사 한 명의 의사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 나머지 당회원인 장로들은 이에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담임 목회자 한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의존은, 만약 교회가 잘못된 신앙으로 흘러갈 때 이를 제어하기 매우 어렵게 만든다. 진리의 선포가 변질될 위험이 있다. 100여명의 교인들이 다니는 A교회의 H형제(22, 전남대)는 이렇게 토로한다.

"설교에서 기복 신앙적 요소는 참으로 미묘한 곳에서 발견된다. 우리 교회의 경우, 이것을 장로들이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목회자를 지적, 설교의 방향을 바로잡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기복적인 신앙을 잘 분별하지 못하는 교인들이 이를 목회자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장로들을 제어하려 했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면 결국 교회 전체가 잘못된 신앙으로 흘러갈 위험성이 다분해진다. 진리가 훼손될까 두렵다."

 

장로는 국회의원?

장로라는 직분은 교회를 다스리기 위해 교인의 택함을 받는 형식을 통해 하나님이 세우신 봉사직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는 이를 '대표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장로를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국회 의원' 개념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우선 장로 스스로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되면 자신을 교인들의 대표자라 여긴다. 교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장로로서 직분을 다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교인들이 선택해 주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우리가 민주사회에서 살고 있는 탓에 쉽게 드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오해를 경계해야 할 것은, 이것이 장로직과 목사직을 상극 관계로 이끄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장로는 결코 세상 논리로 이해되는 '대표자'가 아니다. 교인이 투표를 하는 것은 '당회'라 부르는 '의회'에 대표를 파송하기 위함이 아니다. 교회의 투표는 주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잠시 짬을 내어 사도행전 1장 24∼25절을 읽어보자. 교회의 투표는 단순히 세상의 그것과 같지 않다. 대표자 선출이 아닌 것이다. 교회를 위해 봉사하기 합당한 자가 누구인지 투표를 통해 주의 뜻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탄핵소추를 적용하는 교인들

일단 선출된 장로는 교인들의 대변자로서 그들의 '뜻을 받드는' 자가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때문에 교인들 100%가 원하는 일이라도 그것이 성경적이지 못한 것이라면 단호히 거절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인들은 이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많은 숫자를 이룬 교인들이 자신들의 합치된 주장을 당회에 관철시키기 위해 장로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일이 잦다. '대변자의 역할을 자임한' 장로들은 다수의 뜻을 성경적으로 분별하지도 않은 채 당회에 내어놓는다.

간혹 교인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는 장로들이 있으면 거기서 마찰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때 못마땅한 장로들에게 국회 의원에게나 가능한 '탄핵 소추'를 적용시킬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교인들이 있음은 깜짝 놀랄 일이다. 민주사회에서 당연한 원리인 '다수결의 원칙'이나 '탄핵 소추' 등의 적용은 그러나 교회 정치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장로는 '명예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흔히 장로들을 교회 밖에서도 '장로님'이라고 부르며, 그것을 예의로 여긴다. 그러나 장로라는교회의 '직분 명'이 호칭으로 사용되는 곳은 우리 나라밖에 없다. '장로님'이란 호칭을 들으면 은근히 으쓱해지는 한국인 특유의 심리. 언제부턴가 장로직은 명예직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장로가 되고자 하는 이도, 장로를 우러러보는 교인도 많아졌다. 이같은 의식은 교회의 직분이 마땅히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란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결국 주일 예배시 장로석에 앉는 일과 당회에 참석하는 일만 겨우 해내는 이들이 발생하게 된다. 이들은 장로로서 교회의 어떤 일들을 감당해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교인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심방할 줄 모르고 어린이나 젊은이를 가르쳐 본 적도 없다. 이런 일들은 목사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장로라는 직분을 명함으로만 달고 다니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다.

 

장로가 하는 일, 사실 힘들어

1. 교회의 영적 상황을 목사와 함께 성경적으로 돌보는 자다.

2. 교리적 오해나 도덕상 부패를 방지하도록 기도하며 사역한다.

3. 신자를 심방하여 위로하고, 교훈하며, 보살핀다. 특별히 병자와 상가를 찾아 위로하며, 진리를 잘 알지 못하는 자와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며 돌봐야 할 것이니 일반 신자보다 장로는 개인적 의무와 직무상 책임이 더욱 중하다.

4. 신자의 신앙을 살피고 위하여 기도한다. 장로는 신자와 함께 기도하며, 위하여 기도하고, 목사의 설교를 바로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5. 심방할 자가 있을 때에는 목사의 심방을 청할 것이요.

6. 특히 환자와 슬픔을 당한 자와 회개하는 자와 도움 받아야 할 자가 있을 때에는 목사에게 보고한다.

 

위 표는 헌법(개혁교단)에 명시된 장로의 직무들이다. 얼른 보기에도 웬만한 봉사심 아니고서는 힘든 직무다. 이 직무들을 지금의 장로들은 얼마나 힘써 행하려 하는가. 거의 모든 일들을 목사 혼자서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장로들 개인적으로 직무에 대해 잘 모르는 데에도 원인을 둘 수 있다. 대부분 장로 장립 시험을 볼 때는 헌법에 명시된 장로의 권한과 직무들을 전부 암기한다고 한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잊고 만다는 것. 실제 교회에서는 유교적 전통과 자의적인 해석으로 자신의 직무를 한계 짓고 만다. 이는 분명 성경적이지 못하다. 그리스도 앞에 교만하기 짝이 없는 '직무 유기'다.

 

장로와 목사는 동등한 자격

이제 정리하도록 하자. 하나의 장로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가르치는 장로와 치리하는 장로다. 이를 구분하기 위하여 가르치는 장로를 특별히 목사라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장로와 목사는 동등한 자격이었던 것이며 차이점은 목사가 장로와 달리 더 받은 부가적인 은사, 곧 교훈하는 은사에 있다.

그러므로 감독과 장로의 이러한 이름 상의 구분을 가지고 계급의 상하를 따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목사직과 장로직은 동등하다. 헌법에도 장로가 "…각 치리회에서는 목사와 동등한 회원권으로 각 항 사무를 치리한다(딤전, 5:17, 롬 12: 7∼8) (개혁교단 헌법 교회정치 제9장 장로의 권한)"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행정자들이 서로 형제 되는 처지에서 봉사해야 된다고 가르치셨다.(마20:25∼28) 이와 같은 동등의 원리를 지키지 않는 교회에서는 지도자들에게 고집과 독재와 권리 남용의 폐단이 생길 뿐 아니라, 시기와 적대 의식이 성행하여 교회를 해치고 하나님께 욕을 돌린다.(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 주석', 72p, 박윤선 목사 저)"

 

무지가 낳은 다툼들

교회는 계급적인 구조로 구성될 수 없다. 교회에 구조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섬기기 위하여 존재할 뿐이다. 교회 정치에 있어 장로와 목사의 반목 상태, 그리고 어찌 됐건 그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은 교인들. 그로 말미암은 교회의 분쟁과 내분들을 바라보자. 다투는 교회에는 그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권위가 안중에도 없는 듯 하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교회를 이루고 연합해야 하는가를 잊은 지 오래다. 교회는 마땅히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 하나님이 바로 가르쳐 주신 장로 교회 정치를 바로 세우는 작업들이 그 첫 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죄인된 인간은 무지한 상태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섭리와 지혜가 아닌, 눈에 보이는 세상 지식이나 권위를 근거로 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런 무지 때문에 오늘날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죄악을 범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정설 편집장(pulitzer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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