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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30

 

 

 



 

 

■팡세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진리
 

정영오 형제떨어진 낙엽들 위로 비가 투닥거리며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참으로 시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짜증나게 하는 것이다. 우산도 없이 수업시간에 늦어 비를 맞고 뛰어가는 나에게는. 남들은 그런 걸 모르고 멋있는 장면에 대한 상념에 잠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자아의 편견에 갇혀 지내는 존재들임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내가 다니는 학교 총학생회장 선거가 끝났다. 선거 결과에 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선거 과정 속에 나타난 두 갈래 사람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본다. 한편은 기존의 세력으로, 지금까지 많은 모순과 잘못들로 비판을 받아온 편이다. 다른 한 편은 새롭게 기존의 모순을 극복하겠다며 등장한 세력이다. 나는 그 둘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도서관 앞 5.18 광장에서 유세하는 내용을 들어보아야 했다. 전자는 기존의 잘못들을 반성하며, 그 모순들을 고쳐나가겠다는 다짐에 찬 연설이었고, 후자는 전자의 모순들을 비판하며 자신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향 없는 방향설정 내용이었다.

물론 둘의 성향과 선거 결과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것들로부터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관심을 갖는 건 자아의 편견이라는 우리 죄의 문제이다. 기존 세력은 계속해서 지금까지 일을 해 왔기 때문에, 완전하지 못한 인간 조직이므로 문제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내가 후자의 후보들에게 바라는 것은, 문제에 대한 비판만을 늘어놓는 선거 운동이 아닌, 자신들의 분명한 입장을 보다 자세히 알리는 방식의 선거 운동이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자아의 편견에 갇혀 지내는 존재들임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진리를 고수하면서 재판자의 자리에 서지 않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하시던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진리가 이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어려움은 커진다. 우리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방향을 지적하고, 그것을 위해 홀로 서야 될지도 모른다는 중압감은 너무도 부담스럽고 힘든 일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조심해야 하고, 올무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나 자신이 혹 재판자의 자리에 서서 남을 비판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나의 비판의 '자'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너무도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한가지 힘밖에 없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진리를 지켜오셨고, 교회를 지키셨으며, 우리는 죽고 썩어져 없어져도 그분은 살아계셔서 앞으로도 계속 진리의 교회를 지키실 것이라는 신앙의 고백이다.

낙엽 이야기나 선거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그들을 안고 있는 우리 안의 진리 문제는, 가벼운 떨림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무뎌진 나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며, 짜증 섞인 세상의 모습으로부터 나를 구원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시 나에게 느끼게 하는 소중한 것이다.

낙엽 위를 뛰어온 나에게 멋없다고 하는 아이들과, 선거운동을 위해 날 좀 살려달라고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그 속에서 정신없이 오고 간 나, 이런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마음이 나를 슬프게 한다. 주신 것만도 감당하지 못하는 이에게 뭘 하라고 요구하는 이 사회가 슬프다.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는 그것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비판의 도구, 정죄의 도구로 주신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주신 진리는 우리를 그 말씀에 순종으로 이끌며, 나는 그 진리의 부름에 인도 받아 가는 것이다. 나는 도무지 그것도 감당할 수가 없다. 학업을 챙겨야 하고, 주어진 과제들을 챙겨야 하고, 무엇보다도 진리를 지켜야 하는 나의 길을, 나는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시작된다는 말씀은 많은 위로가 된다. 베데스다라 하는 못에 내려가 병 고칠 기운도 없는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 값없이 나음을 받은 장면(요5장)은 나에게 커다란 말씀으로 다가온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에게 찾아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진리를 주셔서 그 가운데 거하게 하시는 하나님, 나에게는 그것뿐이고, 더 이상 나의 공로는 인정치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놀라운 일이며, 감히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나를 높이는 도구로 쓸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지금은 슬픈 나의 모습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만드심을 소망 가운데 바라보며 위로를 얻는다. 아직도 내가 뛰어갈 낙엽이 깔린 길은 남아있고, 비는 여전히 내리지만, 우산을 받혀줄 이가 있어 기쁘다.

글 : 정영오 / 개혁주의의 바른 이해를 위한 연구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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