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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30

 

 

 



 

 

■포커스 1

한국 사회에서 인권을 말한다?

인권 운동가 서준식 씨 구속과 무죄 석방 운동

"국민의 인권을 무시하는 정부는 정부가 아닙니다."이 단정적인 어조의 한 줄 짜리 명제는 세계 최대의 인권운동단체인 국제 엠네스티(국제 사면 위원회, 한국 지부장 허창수)가 제작한 선전물에 담긴 문구이다. 국제 엠네스티는 양심수 석방, 고문 폐지, 정치적 살해 등 각종 인권 침해 행위의 종식을 위해 활동하여 세계 평화와 인권 보호에 기여한 바가 커, 국제적으로 그 공로를 인정받고 있는 단체이다. 인권운동가 서준식 씨

인권운동가의 구속과 불복종 운동

지난 11월 4일,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제2회 인권영화제를 기획한 서준식(49, 인권운동사랑방 대표)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서씨가 인권영화제를 통해 이적성이 있는 영화 <레드 헌트>(감독 조성봉, 83분)를 상영했다는 이유에서이다. 이 영화는 제주 4·3항쟁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올해 초에 열린 지난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외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당국은 이 영화를 '이적 표현물'로 규정했고, 서씨에게는 결국 정식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

국제 엠네스티는 서씨가 체포된 지 3시간만에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양심수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한국민이 있다면 멀리 볼 것 없이 서준식 대표를 보면 된다'고 지적하였다. 이어 13일 발족된 '인권운동가 서준식 무죄석방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공동대표 김승훈)'는 천주교 인권위원회와 함께 전국 대학, 교회, 성당 등지에서 <레드 헌트>를 동시 상영하기로 했다. 이들은 당국의 처사가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동시에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고 불복종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이 운동에는 제2회 인권영화제에 출품된 영화들의 작품설명회와 함께, 서씨와 같은 처지의 900여 양심수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도 포함된다.
공대위가 당국의 입장에 이렇듯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서씨의 구속은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민 모두의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회장 최영도)'은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하고, 서씨 사건을 계기로 삼아 국가보안법, 공연법, 보안관찰법 등의 위헌성을 집중 각 지역에서 열리는 인권영화제부각시킬 계획이다. 이 모임의 이석태 변호사는 "기본권을 제약하는 법률들이 국제 인권조약에 비추어 합당한 것인지 규명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땅에 양심은 죽었다?!

서씨의 구속이 인권 문제와 맞물려 그 의미가 점차 확대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14일 오전 신한국당과 국민신당 당사 앞에서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가 주관하고 종교계 인사들이 참여한 이색 장례식이 열렸다. '이 땅에 양심이 죽었다'는 의미에서의 '양심 장례식'이 그것이다. 이는 서씨의 구속과는 별도로, 최근 양심수 사면에 관한 논의들이 일어나면서 검찰이 이 땅에 '양심수는 없다'고 주장한 데 대해 인권단체가 들고일어난 것이다.

여기서 잠시 국제 엠네스티의 권위를 빌어 양심수를 정의하면, 양심수란 '폭력을 행사하거나 옹호함이 없이 정치적·종교적 또는 그 밖의 양심에 입각한 신념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규약에 위배되는 투옥·구금·육체적 억압을 비롯한 여러 형태의 구속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되면 '양심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당국의 태도에 인권단체가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된다.

그래서인지, 이날 침묵 시위에는 '이 땅의 비양심에 분노한다'라는 큰 주제가 내 걸렸다. 이날 시위 겸 행사를 통해 민가협은 '한국에 양심수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 수는 김영삼 정권 이후만도 800명에 달한다'고 설명하고, '구미 유학생 간첩사건부터 최근 구속된 서씨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부당하게 박해받고 있는 양심수들을 하루 빨리 전원 사면하라'고 주장했다.
 

보다 확대된 '인권'의 의미로

사회적 지위나 능력이 이미 우상이 된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는 어디까지 존중될 수 있는가. 강신석(광주 인권영화제 공동조직위원장)씨는 영화제 개최 인사말을 통해 '인권을 우선시하는 사회를 생각한다'고 하였다. 강씨가 바라고 생각하는 사회는, 말을 바꾸면 '헌법이 지켜지는 사회'를 말하는 것과도 같다.이적영화 <레드헌트>. 그러나 심판은 관객이?
그래서일까. 영화 <레드 헌터>는 제주 부녀자들의 구슬픈 <이어도> 민요 노랫가락으로 막을 내린다. 이 영화의 감독 조성봉씨는 지난 15일, 공대위의 입장에 따라 인권영화제를 개최한 광주 남동성당에 방문하여 관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고, "무엇이 인권을 우선시하는 것인지 딱히 규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초월하여 인간 그 자체이기에 부여받은 고유한 자격과 가치를 인권이라 부르는 것이며, 또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라며 최근의 답답한 심경을 간접적으로 토로하였다.

국제인권선언에는, "어느 누구도 독단적으로 체포, 격리되거나 추방당해서는 안된다."는 등의 조항이 담겨있다. 그러나 '인권'의 의미는 여전히 국가마다 추상적이다. 이는 종종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을 이중 기준에 따라 적용시키는 현실'에 대한 변명이 된다.

인권이라는 문제를 고문 금지·양심수 석방과 같이 항상 정치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현실. 그러나 언젠가 인권이라는 의미가 좀더 포괄적인 영역에서 폭넓게 이해되는 날이 오기를, '구속을 각오하고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이들 인권 운동가들은 한결같이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글 : 황희상 기자(pulitzer9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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