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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29

 

 

 



 

 

■TheSight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

어느새 말씀에서 벗어난 임역원 이야기

 

공궤를 일삼는 교회

몸집이 불어가면서 교회들은 저마다 좀더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스스로 조직화를 꾀하기 시작한다. 할 일이 많아짐에 따라 행정적 부서가 나뉘게 되었으며 그 활동 분야들도 다양해진다. 이 같은 현상은 초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행6:2)'

여기서 '공궤를 일삼는다'는 말은 헌금 관리 및 서비스 활동, 프로그램 운영 등 여러 가지 행정관리를 말한다. 교회의 조직이 커지면서 행정적인 일에 지나치게 매이다 보니 말씀 자체는 너무 소홀히 여기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경로인 듯하다. 그런데 같은 현상을 놓고 그때와 지금은 문제의 핵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사도들은 교회의 장로로서 은혜와 진리의 말씀 자체는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일에만 너무 분주했다며 자신들의 잘못을 먼저 뉘우쳤다. 그에 반해 오늘날 교회들이 고민하는 것은 그때와 방향이 다른 듯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소홀히 다루어지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삼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운영해나가고 소화해 낼 것인가에 치중되어있다는 것이다.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소홀해진, 공궤를 일삼는 데 더욱 가속화가 붙은 교회가 된 것이다.

 

직분이 생겨난 이유

그림-1초대교회 때로 돌아가 보자.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행 6:3)' 말씀을 소홀히 하게됨을 두렵도록 깨달은 사도들은 그에 대한 대안으로 직분을 나누었다. 분산된 힘을 다시금 모아들여 말씀을 새기는 데 더욱 집중시키는 것, 직분의 의미가 여기서 성립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엔 이미 만들어진 직분에 힘을 쏟게 마련이다. 초대교회가 아닌 이상, 직분이라는 것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이 임역원으로서 맡아야할 직분들이 과연 원래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솔직히 임기동안 임역원에게 맡겨진 일들은 너무 많다. 일에 치여 학교 생활도 소홀해지기 일쑤이거나 심지어 학교 생활에 적응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또 주일 하루 동안은 파김치가 되기 일쑤다.

게다가 임역원이 맡은 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안에는 자기 교회 상황에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일도 많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어도 그 직분이나 부서의 행사, 일들을 과감히 버리지는 못한다. 왜인가? 이미 하나의 직책으로 굳어져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그 직분이 가지는 정당성이 너무 강해졌기 때문이다. 필요해서 만들어놓은 '자리'에 오히려 인간이 엉덩이를 꿰어 맞추는 형국이 벌어진 것이다. 예배 시간에도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임역원들을 우리는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얼마나 앞뒤가 안 맞는 현실인가.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함에도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 인간들은 참으로 관대하고 나약하기만 하다. 그저 참으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용이 얼마나 그럴싸한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얼마나 사악하고 인간 중심적인 것인지 알아야하는 것이다.

이런 우리의 상황을 보자면 직분은 더 이상 말씀의 권위를 더욱 굳게 하려는 고민에서 우러나온 방안책이 아니다. 도리어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게 만드는 사탄의 고지능적인 책략일 수도 있다.

 

하고싶은 사람을 시켜야

해년 마다 임역원을 선출할 때면 우스운 광경이 발생한다. 직분의 수를 모두 채우기 위해 이른바 '물밑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도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임역원을 하라고 설득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더욱더 개인적인 사정이나 신앙의 성숙도를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사람이 많아지다보니 개인화되고 고립화되어 서로에게 그다지 관심두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사람을 선출할 때도 어렵게 되었다. 개인의 은사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심지어 내부적인 믿음의 확신이 없는 상태를 지닌 사람이더라도 겉보기에 성실해보이면 우선 뽑아두고 보는 식이다. 개중에는 직분의 힘든 일을 감당하다보면 신앙이 성숙해지리라는 착각도 섞여있다.

초대교회에서는 어떠한 직분을 맡길 때 '하고싶은 사람들에게 맡기라'는 전제를 두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監督)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딤전 3:1)"

교회의 직원 선택에 대하여 가르친 말씀이다. 성경에 직분을 맡은 자의 직무 실행은 권리 행사의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역적 혹은 봉사적인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선한 일을 사모한다'는 말은 직분의 지위를 탐할 것이 아니라 오직 교회에 유익한 실제적 봉사를 애모(愛慕)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임역원 물밑 작업에는 그다지 개인적인 애모함이 없어도 이미 그 표적이 됨을 볼 수 있다. 설득시키다보면 애모함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또 정작 설득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구임역원의 모습들도 보인다.

이 같은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임역원이란 직분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교인들이 생긴다. 그들은 으레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제의받은 임역원 직분을 흔쾌히 수락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더더욱 죄스럽기만하다. 그 주된 요인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죄송함이다. 언제부턴가 '일=봉사'라는 교회 공식 아래, 교회는 수많은 일들을 마구잡이로 벌여놓고 교인들의 수고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엉뚱한 죄의식까지 감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임역원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 혹자는 일말의 안도감을 가지기도 한다. 인간들이 정해놓은 그 '직분'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봉사'라는 이상한(?) 개념으로 변질되어 버려 나타나게 되는 현상들이다.

 

엎드려 절 받기 식 사고

한국 교회의 임역원 생활은 대부분 매우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수반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이렇게 힘든 시간들을 하나님께서 이미 마련해 놓은 고난이라고 착각하는 데에 있다. 고난을 자초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신앙이 성숙할 수 있으리라는 어리석은 신앙 형태가 아직도 남아있는지 살펴봐야 할 터이다.

원인과 결과가 뚜렷한 어떤 불행은 고난이라고도 불러주지 않는다. 그것은 대개 벌(罰)의 개념이다.

'고난이란 어떤 신비가 있고 따라서 거기에는 어떤 존엄성이나 고귀성 같은 것이 있다. 질서 속에 불가해한 악의 요소가 작용하고 있고, 따라서 역사의 진행을 위하여서는 뭔가 큼직한 희생이나 대속(代贖)같은 아픔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곧 고난의 체험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난은 합리나 의리로써는 설명되어지지 아니하는 초월적 가치가 있는 체험이다.( 민경배 / 연세대학교 신학대학 교수(한국 교회사 속에 나타난 고난의 유형 中)'

이미 마련된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오히려 인간의 교만이었음을 깨달아야한다. 이는 고난의 선택권마저도 하나님께 있으며, 인간을 자신에게로 더 가깝게 하시는 이도 온전히 그 분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방법

교회가 공궤를 일삼게 되자 더욱 말씀을 굳히기 위해 직분을 두게되었다. 그리고 그 직분에 맞는 사람들을 선출하는데 있어 초대 교회에서는 어떤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가.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행6:3∼4)"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두 가지 조건하에 선출된 일곱 명의 사람들이 행정을 관리하게 되었다. 모든 업무가 분담된 것이다. 그제서야 사도들은 자신들의 본연의 임무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행6:3∼4). 이렇게 해서 원망과 시비가 들끓던 교회가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었던 것이다(행6:7).

 

번 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e)

번 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e)은 오늘날 모든 직업에서 증가하는 직업병. 현대 사회에서 갈수록 증가하는 증상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처음엔 신나게 일을 시작하던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 그 보람을 잃고 돌연 슬럼프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슬럼프에 빠지면 신체적·정서적인 극도의 피로감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무기력증이나 자기 혐오, 직무 거부 등에 현상이 나타나는 데 이것이 바로 번 아웃 신드롬의 증상이다. 마치 연료를 모두 소진한 것처럼 갑자기 일할 의욕을 잃고 직장에 적응할 수 없게 되는 현상. 이러한 증상은 현대의 직업 사회에서 뿐 아니라 교회의 임역원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임기 중에 마지못해 일에 매달려 학교생활이나 심지어 가정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는 임역원들이 허다하다. 임기가 끝나고 임역원이 교체되어도, 허무한 마음이 들고 왠지 교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영혼이 피폐되어버렸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무엇이 교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하나님께서는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설 수 있는 신앙을 요구하신다. 지금 우리가 처란 이 시점이 바로 그 서야할 때는 아닐까. 우리는 '가는' 데에는 참 용감한 것 같지만 멈추어 서는 데는 너무나 힘들어 한다. 롯의 아내가 두고 온 살림살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머뭇머뭇 뒤를 돌아보고 있다.

이미 만들어진 부서나 직분의 이름, 확장되어 가는 일들에서 손을 놓고 이제는 멈추어 서자. 그러면 그 안에서 허덕이고 있던 영혼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우리 모두 잠잠한 채 경청해 보자.

정설기자(pulitzer21@hotmail.com)

 

PC통신에서 첮아낸 임역원들의 호소

제목 : 주일학교 교사가 부담스러워요

저는 약 10년 정도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 자신이 미약하고 어린 아이 신앙임을 느낍니다. 하지만 교회에선 그렇게 생각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찬양대를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자신도 없고 부담 되어서 그만 두고, 그렇게 또 하다가 그만두곤 했습니다. 9개월 전부터는 고등부 교사를 맡고 있는 데 다시 두렵고 부담스럽습니다. 어쩔 땐 교회에 가기 싫어지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미약한 제 자신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가 없다고 판단되고부터 그런 생각이 자꾸 듭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길 노력하지만 그때 뿐…. 이럴 땐 믿음 마저 의심스러워 집니다. '내가 정말 신앙을 가진 사람인가?' 하구요.

하지만 교회를 가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집니다. 기도를 해야 하면서도 기도가 안되고 열심히 해야 하는데도 짜증이 나고 싫어집니다. 사람들을 대할 때도,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가까운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고…. 암튼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그만 두면 좋겠는데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고….

주님, 제발 저를 붙잡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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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1851/2558 등록일시:97/06/12 22:42 길이:27줄

제 목 : 교회 나가기가 힘들어요.

제게 직분이 없을 때는 일을 도와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직분이 생기고 나니, 할 마음이 없어집니다.(그것도 너무 어려운 직분이구요)

처음부터 직분이라는 것에 별로 호감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봉사하게 되었네요.

제가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은 청년부 사회를 보는 것입니다. 청년회 임원이면 다 하는, 앞에 나가서 예배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힘들어서 3월 달인가 4월 달부터 지금까지 교회에 못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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