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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29

 

 

 



 

 

두루마리

산상 수훈 강해③ : 마태복음 5장 9절

 

"복이 있나니 화평케 하는 자는. (왜냐하면)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께서는 본문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가 (화평케 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므로 복이 있다고 선언하신다. (다른 자가 아니라 오직 화평케 하는 자만이!)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본문은 약속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말씀은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선언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화평케 하는 자가 화평케 함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원리적으로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화평케 함으로 실제적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화평케 하는 자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자녀 됨, 하나님의 아들 됨을 드러내 보이고 (나타내 보이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함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 될 때, 화평을 이루는 자가 될 때, 화평을 만드는 자가 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 큰 소리 쳐도 화평케 하는 자 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실제적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화평을 이루는 자가 될 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화평을 만드는 자가 될 때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난 자요,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자,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자란 뜻이다. "부전자전(父傳子傳) (Like a father, like a son)-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아들이 그 생김새뿐 아니라 성격에 있어서나 말씨에 있어서나 행동이며 습관에 있어서까지 그 아버지를 쏙 빼 닮았을 때 하는 말이다.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와 화평케 하는 그리스도인이 부전자전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하나님 아버지를 쏙 빼 닮아,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은 화평(평강)의 하나님이요, 화평을 만드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전제하고 있다. 히브리서 13장 20절에서는 하나님을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한다. 골로새서 1장 19-20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진정 평강의 하나님이시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신 분이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심으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배역하여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와 존귀와 위엄을 친히 내어놓으시고 우리를 섬기는 종의 형체를 입고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한 희생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그의 거룩하신 피로 하나님과 우리를 가로막는 죄의 장벽을 제거하시고 우리로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와 화평을 이루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자라면 하나님 아버지처럼 화평을 이루는 자,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 될 때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드러내어 증거 하는 것이다. 화평케 하는 자 될 때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는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어떻게 화평을 만드는 자, 화평의 역사를 이루는 자가 될 것인가? 그것은 먼저 화목하게 하는 말씀, 화목의 복음을 전함으로 가능하다. 고린도 후서 5장 19-20절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 즉 평화의 복음을 부탁하시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평화의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만이 진정으로 화평의 역사를 이룰 수 있다. 평화의 복음을 전함으로 화평의 역사를 이룰 때, 그때에만 진정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증거하고 나타내 보일 수 있다. 그럴 때에야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된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불릴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지는 못한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어 있고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을 따라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하나님과 원수 된 자리에 있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형제, 자매, 친구,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평화의 복음을 전하여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놀라운 일을 행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하며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나타내 보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평화의 복음을 전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평화의 복음을 전함이 반드시 육체를 따라 화평을 이루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때로는 평화의 복음을 듣고 죄인들이 평화의 왕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면 화평을 얻기도 하지만 반대로 복음 전파는 하나님의 영적 싸움, 신앙의 싸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마태복음 10장 34-36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 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이럴 때 불신앙과 타협하는 것은 화평이 아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말하는 화평은 복음 안에서 이루어진 화평,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화평이다.

둘째 우리가 화평을 만드는 자, 화평의 역사를 이루는 자가 되는 것은 십자가의 사랑과 겸손과 희생의 정신을 따라 행함으로 가능하다.

그렇다면 십자가의 사랑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와 의견이 다른 자와 우리를 싫어하는 자와 우리를 공격하고 비난하며 우리를 대적하는 자와 화평할 수 없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따라서는 이런 자를 이해하고 용납하며 관용하고 사랑함으로 화평할 수 없다. 이것은 오직 십자가의 사랑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만 가능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덧입은 자들이다. 우리 같이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 우리 같은 원수들을 사랑하셔서 자기의 자녀를 삼으셨던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덧입은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우리 안에 부어진 바 되었다. 그러므로 사랑할 수 없는 자에 대하여 "하나님 나는 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고 기도하고 행하면 우리도 알 수 없는 사랑의 능력이, 성령의 능력이 역사 하여 사랑하며 화목을 이루는 데 나아가게 한다.

십자가의 겸손과 희생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사람 사이의 불화와 다툼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말과 행동 등 우리의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다. 주님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셨다. 하나님으로서의 자기 권리와 특권을 주장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종의 자리에까지 낮추셨으며 자기의 생명을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주셨다. 때문에 우리가 다툼과 허영으로 행하는 자들 되지 않기 위해, 즉 화평을 이루는 자들 되기 위해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겸손과 희생)을 품으라고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명령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삽지가의 사랑과 검손과 희생의 정신을 따라 화평을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될 때 우리는 참으로 복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루는 화평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화평을 진정으로 체험하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 됨을 가장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증거 하는 자가 되며 하나님의 아들의 존귀한 신분에 합당하게 사는 자 되기 때문이다.

이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다. 우리 모두가 화평케 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 되는 구체적 증거를 드러내 보이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한다.

 

서세일/광주 산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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