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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see
가을 바람이 불라치면 남자들은 말한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밥맛이 꿀맛 같다고 자꾸만 왕성해 지는 식욕을 핑계하기 위해 사람들은 말한다. 예로부터 가을은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 하였으니, 식욕이 왕성해지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고. 그래 가을은 '식욕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옆구리가 시린 젊은 사람들은 가을이 '고독의 계절'이니 '외로움의 계절'이니 해 가며 마치 낭만을 먹고사는 사람들인 양 입을 모으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많은 청춘 남녀들은 이 해를 넘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짝짓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가을은 예식장이 호황기를 이루는 '결혼의 계절'로도 불린다. 풍성한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수확의 계절', 선선한 바람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도 이리저리 흘러가려고만 하는 '여행의 계절', 온 산을 가득 수놓은 단풍이 살림살이에 찌든 아낙의 마음까지 설레게 하는 '낭만의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가을을 두고 이렇게 많은 이름들이 붙여진 것은 아마도 가을을 통해 사람들이 하고싶은 일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을의 이름이 있다면 그건 '독서의 계절'과 '사색의 계절'이 아닌가 싶다. 새 해를 맞이한 후 우리는 많은 계획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 왔다. 봄에는 계획을 세우느라 여름에는 그것을 이루어가느라 멈추어 설 시간도 없이 말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싶었고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었고 누구보다 존경받으며 누구보다 선두에 서서 살고 싶었다. 바쁘다는 사실 자체로 만족하면서 말이다. 그건 언제나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다른 생각, 다른 고민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내 일에 내 생활에 충실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으니까. 그러나 가을이 소중한 것은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우리에게 삶의 여유를 준다는 데 있다. 바쁘게 사는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사색의 시간을 준다는 데 있다 그것이 기분에 취해서건 바람에 취해서건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건 간에. 그것이 가을이 우리에게 주는 여유가 아닌가 싶다. 우리의 신앙에도 가을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만 보면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인 것 같다. 할 일도 많고 할 말도 많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늘 분주하다. 멈춰 설 줄 모른다. 가을이 왔는데 이제 멈춰 서서 생각할 때인데 부지런히 달리기만 한다. 벼랑 끝이 다다랐는지,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도 해 보지 않고서 말이다. 신앙은 어찌 보면 느림을 선포하는 것이라는 한 전도사님의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바쁜 가운데에는 다른 무엇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갈 틈이 없다. 이웃의 어려운 이야기들이 들어갈 틈이 없다. 힘들고 지쳐 있는 형제자매들이 들어갈 틈이 없다. 심지어 그 속엔 자기 자신이 들어갈 틈조차 없다. 헛것이다. 아무 것도 아니다. 바쁘기만 한 것이 모두 헛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모습이 바쁜 것만은 아닐진대. 바쁜 일정들을 내려놓고 이 가을을 즐기는 건 어떨까. 가을을 통해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껴 보는 것 말이다. 독서와 사색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건 어떨까. 청명한 하늘 아래 성경을 펴 들고 앉아 햇살처럼 따스한 그분의 손길을 느껴보는 것, 사색에 잠겨 바람결처럼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부드러운 음성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마음을 열고 우리 생각을 열고 잠잠한 가운데 그분의 말씀을 듣도록 말이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이 일을 다 마쳐놓고서 하겠다고는 제발 말하지 말자. 가을은 그리 길지 않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을 때, 그만 바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씀하실 때, 생각할 만한 시간과 생각할 만한 것들을 허락하셨을 때 하자.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과의 교류가 없는 분주함이었는지,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기쁨이었는지. 일로 인해 하나님과 소원했던 관계들을 회복하자. 그리고 그 동안 소홀했던 이웃들에게, 형제 자매들에게 이제 그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전화기를 통한 딱딱한 기계음으로 말고 소슬한 바람 부는 거리를 걸으며 얼굴을 마주 대하고서 말이다. "요즘,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한 마디를 건네는 것, 그것이 잊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이요 일에 밀려 있던 우리의 지체들을 돌아보는 것이 아닐까. 달라진 가을을 살자. 훌쩍 여행을 떠나더라도 돌아와선 다른 모습의 내가 되어보는 것, 멋진 가을을 연출하는 그리스도인 아닐까. 아직도 여유를 갖지 못했다면 바쁜 자신의 모습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기억하자.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전도서 11장 9절) 김후지(hujee@hotmail.com) / 본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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