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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27

 

 

 

 

 

복이 있나니, 심령이 가난한 자는!


    강해설교 연재 ① : 마태복음 5장 3절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에 걸쳐 기록된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말씀하신 주옥같은 한 편의 설교요 교훈이어서 우리는 이를 산상설교 혹은 산상보훈(수훈)이라 부릅니다. 이 산상설교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헌장과 같으며,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생활규범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산상수훈은 '이렇게 되라.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살아라. 그러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말씀이 아닙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본질적으로 이렇게 되게 되어 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본질적으로 이런 특성을 지닌 존재가 되게 되어 있다'고 가르치는 말씀이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니 본질적으로 이렇게 살아라'고 구체적인 예증을 들어 기본원리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산상수훈을 대할 때 우리는 이 말씀이 우리가 문자 그대로 적용해서 지켜야 할 규칙과 규범으로 주어졌다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본질적인 특성과 근본정신이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증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본질과 근본정신이 무엇인가를 배운 다음에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 그 본질과 근본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는 구체적인 적용에로 나아가는 지혜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산상설교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부분은 5장 3절에서 16절로, 산상설교 전체의 근본주제라 말할 수 있으며, 이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존재들인지, 그리스도인들의 본질적 특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첫 부분에서 말씀하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이 실제 생활과 행위에서 그 본질적 성격을 어떻게 나타내며 살 수 있는지, 또 어떻게 마땅히 나타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증을 통한 가르침으로 되어 있습니다.

산상설교 전체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근본적인 가르침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서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함으로 사는(행하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인이라면 '실제 생활과 행위에서 그 본질적인 특성들이 이러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상설교의 내용을 대할 때, '나는 과연 구체적인 삶과 행위 속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서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경외하며 사는 자인가?'라고 자문하면서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 성찰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상고하려고 하는 말씀은 마태복음 5장 3절로 12절 말씀에 기록된 소위 '팔복' 중에서 제일 먼저 언급되고 모든 복의 가장 근본이 되는 복인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3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원문을 달리 읽어보면, "복이 있나니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왜냐하면 천국(하나님 나라)이 저희들의 것이기 때문이다."입니다.

'복이 있나니'(Blessed, makarioi)란 원어는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인상깊은 강력한 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복'이란 말은 '신적인 즐거움과 완전한 행복'을 의미했습니다. 이 단어는 인간들을 위해서는 사용되지 않는 단어였고, 오직 신들이나 죽은 자가 경험하는 그런 종류의 즐거움과 행복을 기술하는 말이었습니다. 따라서 '복이 있나니'란 어구의 '복'은 외적 상황이나 환경에 의존하지 않는 내적 만족과 충족감을 함축하고 있는 말입니다. 이런 특별한 단어를 사용해서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복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복이 있나니, 심령이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ptochos, 프토코스(단), 프토고이(복)]란 원어는 수입이 적어서 근근히 먹고 사는 정도로 가난한 자를 의미하지 않고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존하여 먹고 사는 거지와 같은 자들을 뜻합니다. 본문에서 '가난한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서 영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란 자기가 아닌 다른 존재, 자기 밖의 존재, 곧 하나님의 도움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를 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심령이 가난한 자'란 그들이 영적으로 빈곤하여 가난하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들의 영적 가난을 깊이, 뼈저리게 자각하므로 하나님의 도움을 갈구하고 있는 자들이란 뜻입니다. 즉 자신들의 전적 무력함을 철저히 깨닫고 자신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자신의 어떠함'을 결코 신뢰하지 아니하며,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서만 모든 것을 기대하고 바라고 하나님 한 분만을 온전히 의뢰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자들이 곧 심령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천국은 바로 이런 자들의 것이라고 주님께서 선언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 아니고, 이런 자들이 이미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이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들이란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의 제일된 특성은 바로 심령이 가난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심령의 가난함이 있으면 나는 천국을 소유한 자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라고 말할 수 있다는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나는 정말 나 자신의 전적 무력과 결핍을 깨닫고 자신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있는 어떤 것도 의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서 모든 것을 기대하고 바라며 철저히 하나님 한 분만을 의존하며 사는 자인가? 나에게 만일 이런 본질적인 특성이 있으면 분명하고 확실하게 나는 하나님 나라, 천국을 소유한 자요, 나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본질적인 특성인 심령의 가난함이 나에게 아직 완전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 않는다고 해도 심령이 가난해지기를 원하는 바램이 있고 갈망이 있으면, 그것은 분명히 내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만일 하나님 한 분만을 의존하며 하나님 한 분에게 나의 소원을 두고 도움을 구하며 살려고 하는 노력과 투쟁이 미약하나마 내 안에 있으면 나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이 과연 천국을 소유한 자라고 확신하십니까? 여러분에게는 심령의 가난함이 있습니까? 심령의 가난함이 뚜렷하고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런 소원과 바램, 의욕과 투쟁이 여러분 속에 있으면 하나님 나라의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이며,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기의 소유와 부를 자기의 힘으로 삼고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소유가 많아서 어깨에 힘을 주거나 목을 뻣뻣하게 세우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자기에게 그런 많은 소유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자랑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아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의식을 가지고 겸손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것을 기꺼이 사용하는 자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기 지식이나 교육이나 학벌을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기의 타고난 혈통이나 집안이나 가문이나 국적을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자기의 재능이나 능력이나 자기의 지위나 직업이나 자기의 어떤 개성이나 기질을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고 살피는 자이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고 비교 평가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철저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피고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서 자신을 바라본다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소유가 무슨 자랑거리일 수 있으며 지식이나 교육이나 학벌이 무슨 자랑거리가 되며 나의 가문이나 혈통이나 나의 재능이나 능력이나 직업이나 지위가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습니까? 그것들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가지고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며 교만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심령의 가난함을 가진 자들이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되도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천국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천국은 매우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단어이지만, 마태복음에서 천국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심령 속에, 삶 속에 왕으로 통치하시는 상태',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기 때문에 그 결과 통치를 받는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복과 은총을 포함한 완전한 구원'을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과 은총을 포함한 구원을 덧입은 자들이니 참으로 복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복되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마음의 보좌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곧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까? 여러분의 삶은 그리스도의 다스림과 통치 아래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모든 영역 말입니다. 여러분이 한계 지어 놓은 신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왕이라고 고백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제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으며 왕이 주시고자 하는 복과 은총과 구원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 길은 심령이 가난해지는 데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며, 예배를 통하여, 교제를 통하여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볼수록 자신의 무력과 무능과 부족을 더욱 깨닫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더 낮아지게 되고, 자신을 바라보는 데서 눈을 돌려 더욱 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도움을 구하면서 하나님 한 분만 의뢰하고 살게 됩니다. (고린도 후서 11장 5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결코 부족한 것이 없는 사도인 것을 주장했으나 세월이 흘러 에베소 교회에 편지할 때에 에베소서 3장 8절에서 그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있으며, 그의 말년에는 디모데 전서 1장 15절에서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나님의 은혜 받기에 가장 부적합한 자가 있다면 바로 자기인 것을 생각하면서 그런 자기에게까지 구원의 은혜와 복음전파의 사명과 사도의 직분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읍하여,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고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왕으로 통치하시며 복과 은총과 구원을 주실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며 베푸시는 모든 복과 은총과 구원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대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심령의 가난함의 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서세일 목사 / 광주산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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