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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26

 

 

 

 

 

■ 서로돌아보아

            
 사랑(愛)이 제일(一)이다

      무의탁 장애인들의 생활관, 애일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에 여남은 명의 여자들이 오손 도손 모여 앉아 있다. 얼핏 보니 이곳 식구들인 모양이다. 둘러앉아 파란 나물들을 다듬고 웃고 떠들어 대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원장님, 손님들 오셨습니다."

박기상 간사(남, 31, 전도사)께서 원장실 문을 향해 우리의 방문을 알렸다.

"……."

애일의 집 변귀숙 원장님, 그도 역시 장애인이다.문을 열고 나오시는 원장님의 모습에 기자는 순간 조금 당황했음을 고백한다. 전화상으로 유달리 힘있는 목소리로 빠르게 이야기 하는 것으로 보아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중년의 사역자 정도로만 상상하고 있던 탓이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시며 앉은 채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변귀숙 원장님을 향해 취재진은 엉거주춤한 상태로 인사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를 못쓰게 된 변귀숙 원장님(여, 43). 그녀는 스스로의 고통을 신앙으로 극복하고 오히려 전국 방방곡곡의 장애인들을 찾아 다니면서 힘겨운 전도 여행을 시작했다. 그 후 남편되신 박태재 목사님(남, 42)과 설립한 곳이 바로 '애일의 집'이다.

 

대빵 처녀와 30명의 아가씨들

애일의 집에는 30여명의 장애인들이 의탁하고 있다. 현재 이 곳 광산구 산정동 생활관 외에 덕림동에 짓고 있는 건물이 있다. 애일의 집은 전남 지방에서 유일하게 정신 지체와 뇌성 마비를 포함한 '성인 여성' 장애인들을 수용하고 있다.

해맑은 미소의 애일의집 식구들, 그러나 이들에게는 슬픈 사연이 많다.이 곳 사람들의 정신 연령은 2∼3살. 손질하기 어려워 짧게 깎은 머리, 통통하게 살오른 얼굴에 해맑은 미소 탓인지 매우 어려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실제 나이는 놀랍게도 30∼40살이다. 대부분이 어릴 적부터 시골이나 벽지에서 30, 40년 동안 방치되다가 이 곳에 맡겨진 이들이다. 어린 나이라면 특별한 훈련을 통해 발달이 가능하겠지만, 몇십 년이나 굳어질 대로 굳어진 상태에서는 별다른 훈련을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자활 자체가 어렵다.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 훈련만 하고 있다. '생활 훈련'이란 말 그대로 이빨 닦기, 세수하기, 이부자리 펴고 개기, 대소변 가리기 등의 생활에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훈련이다. 그러나 식구들에겐 이런 기초적인 훈련조차도 소화해 내기 힘들다.

정금자 전도사님은 이 곳 산정동 집에 상주하시며 식구들을 돌보고, 박기상 간사님은 덕림동 집을 맡고 계신다. 예순 정도의 나이에도 하얗고 고운 얼굴을 가지고 계신 정금자 전도사님. 옆에 계신 박기상 간사님께서 정 전도사님을 가리키며 '우리 집의 대빵 처녀'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신다.

애일의 집 개원 전부터 원장님과 친분이 있었던 정금자 전도사님. 이 분 역시 성한 육체를 가진 것은 아니다. 심장 판막증으로 인공 심장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 암울했던 시절, 이 곳에 삶을 바치기로 했단다. 작고 호리호리한 체구지만 훈련 때엔 식구들이 꼼짝도 못할 정도. 그래서 얻어진 별명이 바로 '대빵 처녀'. 그래도 30명의 아가씨들에겐 없어서는 안될, '대빵 처녀'시란다.

애일의 집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30∼40대의 여성들 뿐이다.

"우리 식구들에겐 슬픈 사연이 너무 많습니다. 어려서부터 집에만 버려진 채 살아오다보니 성폭행을 많이 당합니다. 그렇게 기구한 사연들을 가진 이들이죠. 한 사람 한 사람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라서 이 이상 이야기 해줄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슬픔에 대해서는 인식조차 못하는 듯, 연신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는 원장님의 시선엔 온통 안타까움과 아픔이 배어있다. 그 시선은 건강한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 닿아있는 듯하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애일의 집(산정동)은 건평 50평이다. 덕림동은 60평이고 현재 관리동이 지어지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변두리로 나가 대지를 넓히고 시설을 하나씩 추가시켜야 한다는 계획이 있다. 그 곳에 물리치료실 등을 갖춰 '수용' 뿐 아니라 '치료'의 역할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 마련되는 대로 대지를 매입해 덕림동에 210평의 본 건물을 지어나갈 예정이다.

애일의 집은 아직 정부의 법인을 인가받지 못한 상태다. 때문에 현재는 수용 시설의 역할밖에 감당할 수 없다. 복지 법인을 내야 하는 일이 시급하지만 재산 문제와 시설 문제 등이 걸려, 인가(認可)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법인을 내려면 개인 자산 5억원 정도를 보유해야 하고, 건평 210평의 부지(1인당 7평)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런 거금은 생각지도 못하죠. 또 그만한 돈을 선뜻 내줄 자산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없는 돈을 쪼개 나름대로 홍보 활동도 펼치고 있다. 1년에 2번 회지도 만들고 격월간으로 2천통 가량의 편지도 발송한다. 하지만 거기에 드는 우송료도 그들 형편에 만만치 않고 발송 작업 자체도 식구들이 감당하기는 힘들기만 하다.

법인 인가 문제 외에도 절실하게 부족함을 느끼는 것 세 가지. 첫째는 '재정 후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애일의 집이 받는 총 후원금은 한달에 100만원 안팎. 여덟 개 교회의 후원을 받고 있다. 개인 후원도 받고 있으나 별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애일의 집에 의탁되는 장애인들은 가정적으로 후원 여건이 안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시에서 영세민으로 지정된 식구가 9명 정도되어 개인당 생활 보조비가 3만원씩 나오고 있다.

둘째, '상주근무자(보모)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한 집당 보모들은 1명 뿐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 이런 보모들이 적어도 한 집에 다섯명 씩은 필요하다.

셋째, '끊임없는 자원 봉사자들의 도움'이다. 애일 식구들에게는 자활 능력이 없기 때문에 빨래나 창문 닦기, 밥하기 등의 일상적인 일들을 그리 쉽게 볼 수 없다. 하나하나 손이 가야 하기 때문에 할 일이 참 많다. 때문에 실질적인 일들 모두에 자원 봉사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지금 관리동이 지어지고 있는 덕림동 쪽에서는 형제들의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또한 오는 9월 27일에 남도예술회관 옆 지하 다방(1억조 다방)에서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자선 일일찻집을 열 계획이다. 이때도 자원 봉사자들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

 

우린 재활할 수 있습니다

'저 나라에선 나 사슴이 되리(저자 변귀숙, 도서출판 곰솔)'란 수기엔 역경과 고독으로 점철된 그녀의 삶이 녹아 있다. 또 아무 소망 없던 그녀를 강인한 휠체어 전도자로 키워, 능히 사용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있다.

"제게 소망이 하나 있다면 제 3자를 통해서라도 좋으니 이 땅의 120만 장애자들이 신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재활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장애인들은 '영적인 재활'이 가능합니다. 그들이 그것으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녀에겐 19살 수양딸과 6학년 짜리 아들이 하나 있다. 둘다 착하게 커줘서 고맙기만 하다는 원장님. 요즘엔 몸이 부쩍 안좋아졌다고 말씀하시면서 어린 아들에게 벌써부터 '내가 죽은 후에도 애일의 집 이모들을 잘 돌보라'고 자꾸만 당부 하신단다. 후계자와 함께 애일 식구들을 위해 원만한 운영체계를 마련해 주고 하늘에 갔으면 하는 바램인 것이다.

티없이 맑은 얼굴의 애일 식구들과 이 땅의 장애인들을 위해 살아가는 변귀숙 원장님. 그녀의 모습에서 이 시대에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 바로 주의 일을 위해 기꺼이 썩어갈 수 있는 '한 알의 밀알'을 찾아볼 수 있었다.

 정설 기자애일의 집 식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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