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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직전의 우리의 '골육'

북한 식량난의 심각함을 알리는 각국 북한 전문가들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북한동포의 굶주림을 보는 남한의 시각은 그리 절실하지 않은 듯 하다. 중풍에 걸린 불편한 몸을 이끌면서까지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할 정도로 북한의 사정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한이 배고픔의 상황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할 정도의 풍요함에 처해 북한의 고통을 절실히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가 분명한 골육인 북한의 고통을 몰라라 해도 될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울과 같은 동포애와 유다과 같은 골육애이다. 바울은 로마서 9장 3절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라고 말하고 있다.

유다는 형제들의 손에 죽을 뻔한 요셉을 위해 골육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자고 형제들을 설득하여 훗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게 하였다. 우리는 지난 50년 가까이 골육의 정을 느낄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을 지속하여왔다. '사상의 굴레'를 넘지못하고 온갖 수작과 술수를 동원해 서로간의 증오와 미움을 키워왔던 것이 사실이다.

수천만 겨레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갈림은 사상의 대립에 이용되었고 권력 창출에 이용되었다. 심지어 북한에 쌀을 지원하겠다는 민간 단체들의 노력들이 남한정부의 이해 관계에 역행하기도 하였으며 북한 동포들이 굶주림에 고통 당하는 가운데도 북측은 무장 공비를 남파시키기까지 하였다.

이렇듯 남과 북은 동포애를 전략처럼 사용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말과 행동들에 진실이 없었음은 그간의 열매가 없음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렇듯 지금까지 통일과 화합의 열매를 기다려 왔지만 이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인간의 노력이나 정치의 힘으로 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을 지난 반세기동안 기다려왔다는 것이다.<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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