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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18

 

 

 

 

 

 

■신학문서

종교개혁과 한국교회의 과제



현재의 한국교회는 심각할 정도의 위기의 징후들이 적잖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징후의 가장 가시적인 모습이 교인의 양적성장의 둔화현상이고 성경공회의 설립을 둘러싼 내부적 갈등상황이며 샤머니즘화된 가정제단이나 능력, 치유집회 위주의 열광주의적 무속신앙의 확산현상 등이다. 나아가 삶의 현장에서의 무력함과 사회적 불법, 부조리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개입의 양상은 사회적 공신력의 저하현상으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제현상은 교회가 지녀야 할 생명력의 상실과 그리스도인들의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그릇된 오해에서 비롯된 것들로서 한국교회에 대한 본질적이며 진정한 실상을 다시금 점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마르틴 루터가 로마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반박하는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城)내에 있는 예배당의 정문에 붙임으로서 촉발된 종교개혁의 역사도 어언 478년주년을 맞이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영적인 능력을 상실한 채 점차 세속화의 일로를 치닫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와 함께 제2의 종교개혁이 이땅 위에 다시금 일어나야 한다는 재각성의 외침이 도처에서 들려오는 지금 16세기에 있어났던 종교개혁에 대한 깊은 의미를 재확인하고 오늘날의 한국교회에 대한 심각한 반성과 아울러 바람직한 미래적 전망을 모색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사료된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16세기는 매우 종교적인 시대였다. 특히 종교개혁 전야의 독일은 매우 종교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3만 여명이 사는 콜론이라는 조그마한 도시 안에 백 여개 이상의 교회와 기도처소가 있었고 2백 여개의 수도원이 난립해 있었다. 감동을 주는 종교의식이 곳곳에서 성행했고 모든 주위가 온통 종교적인 것들로 특징을 이루고 있었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의 전야의 유럽은 매우 종교적이었다. 그러나 그 종교는 타락한 종교였고 기독교의 본질을 상실한 뒤틀려진 기독교였다. 종교개혁 이전의 타락하고 왜곡된 교회의 특징은 먼저 윤리적, 도덕적 타락과 잘못된 교리와 신학 등의 두가지 측면에서 고찰해 볼 수 있다. 도덕적 타락을 우선 구체적으로 몇가지 살펴보자면 교황들과 신부들과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돈과 여자에 탐닉하여 부당한 세금징수와 면죄부 판매, 성직매매 등을 일삼았고 축첩제도를 실시했으며 중앙집권적인 교권주의의 전횡으로 세속적인 권력투쟁이 난무하여 교회의 세속화가 극도에 도달하고 있었다. 또한 교리와 신학의 잘못을 지적한다면 성경이 가르치는 은혜와 믿음의 복음을 왜곡하여 종교의 본질과 기초를 인간의 자연성에 두어 금욕주의적 고행, 선행, 자신과 봉사, 종교의식과 제도에 대한 헌신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행위구원적 종교로 전락한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이 내세웠던 종교개혁의 모토는 첫째 오직 성경만, 둘째 오직 은혜만, 세째 오직 믿음만, 네째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다섯째 만인 제사장주의 등이었다.

중세교회는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인간의 이성, 그리고 교회의 전통, 교회의 가르침을 내세웠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진리의 구원과 기준을 가져오는 것이 오직 성경임을 강조했다. 은혜와 구원을 전달해 주는 것과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바른 모습을 제공해주는 것은 오직 성경 뿐임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의 한국교회의 성경적 가르침의 많은 부분이 인간의 신앙적 체험이나 간증, 도덕이나 윤리적 교훈, 세속적인 가치관 혹은 사회적 통념 등에 의해서 포장되거나 재해석되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중세교회의 그릇된 방식의 또다른 형태로서 경계해야 할 모습들이다.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이 내세웠던 개혁원리의 두번째와 세번째는 오직 은혜에만 그리고 오직 믿음만이었다. 구원이 나 자신의 선행이나 공로나 의에 근거하지 않음을 철저히 강조하는 입장인 것이다. 또한 이것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매주일 행해지는 예배의식과 헌금, 교회봉사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거나 도덕적으로 계명을 지키거나 선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함을 받으며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잘못된 신앙의 행태를 지적해 주는 중요한 원리가 된다.

네째 원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인데 이것은 루터보다는 칼빈이 내세운 입장이다. 구원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는 것이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라고 강조하는 입장이다. 이것은 역사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입장으로 모든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참된 개혁주의적인 전통인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개인구원과 선교에만 몰두하거나 좁은 의미의 종교적인 봉사와 헌신에만 치중하고 있는 실정을 지적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직업, 교육, 성(性), 가정 등의 모든 영역에서 적극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경주함으로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실현하도록 촉구하는 원리가 되고 있다.

한 가지 원리를 더 첨부한다면 만인제사장주의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중세교회가 만든 성직자와 평신도의 교계제도를 철저하게 깨뜨려 부순 원리이다. 중세교회는 교회를 성직자들의 상위교회와 평신도들의 하위교회의 이중교회개념으로 구분하여 놓고 있었다. 그리하여 미사 등의 예배의식 집전과 성경해석 등의 모든 종교적 행위의 주체를 성직자그룹에 집중하여 놓음으로써 갖은 독재와 교권적 횡포를 자행하였다. 루터와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다같이 제사장이며 특별히 구약적인 제사장 제도가 필요치 않다는 입장을 명백하게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입장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점차적으로 목사 직분의 사제화 경향이 짙어지고 교권주의적 경향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새롭게 상기해야 할 종교개혁의 원리로 생각된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날마다 개혁되어가는 개혁교회로서의 모습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대략 5가지의 과제를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본다. 먼저, 올바른 교회관을 회복해야 한다.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적 경향은 파편화되고 고립된 신자 개인을 양산하였으며 각각의 신자도 일주일에 한번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동호회원 정도로 스스로를 여길 뿐만 아니라 성도 상호간에도 사실상 참된 영적교제를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교회는 날로 개교회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띠어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접한 다른 교회와의 상호 적대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한 교회 간의 교인쟁탈전(Sheep Stealing)이 더욱 심화되어가고 농어촌 교회는 무관심 속에 더욱 소외되어가고 있다. 교회 간의 연합운동 역시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상호 유기적인 연합과 지속적인 영적교제를 통하여 이루어가는 보편적이며 종말론적인 교회상을 회복해야 할 시점에 놓여있다.

다음으로는 성경적인 직분론의 바른 이해가 절실하다. 한국사회의 유교적 관료주의의 경향은 교회 내의 각 직분 간에 수직적인 계급개념을 야기시켰다. 한국교회에는 교회의 각 직분을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기기 위한 기능적인 이해로서보다는 명예나 신분으로서 바라보는 계급적인 이해가 팽배해 있다. 목사의 카리스마적 독단주의, 신앙의 연륜과 함께 더 높은 직분을 가져야 한다는 계급적 이해, 직분에 대한 매관매직, 사회적인 부와 명예의 측정정도로서의 직분획득의 동기, 전임 목회자 그룹에 대한 고용의식 등이 대표적인 경우들이다. 교회는 수많은 장로와 집사, 권사와 권찰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와 소수의 충성스러운 성도들에 의해서만 운영되어진다. 극단적인 경우에 직분자의 직분에 대한 몰이해는 교회를 위한 바른 봉사보다는 교회의 파벌형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급기야 교회분열에까지 치닫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세번째로는 성령론에 대한 바른 정립이 필요하다. 신비적 체험을 강조하는 신오순절주의의 영향은 한국교회 내에 극단적인 무속화된 신비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올바른 전인격적인 인상보다는 주관적인 체험에 신앙의 토원을 더 즐겨 찾으며 은사 혹은 신유집회 등을 더 추가한다. 그릇된 방언, 예언기도, 투시, 영서, 입신 등을 강조하는 극단적인 성령운동은 하나님의 교회를 허무는 무속적인 혼합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올바른 성령론에 대한 교육이 절실히 요청된다. 네번째로 한국교회는 샤머니즘적인 기복신앙과 배금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대대로 전해오던 민간의 기복신앙은 현대의 물질만능주의 혹은 배금주의와 더불어 교회 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나님을 예배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물질적인 축복이나 개인적인 행복을 위한 도구로 퇴위시켰으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목적을 개인의 영달과 사업의 번영 등의 현세적인 것에 두게 하였다. 각종 기도회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나 교회활동에 충성스럽게 봉사하는것, 헌금이나 자선활동에 이르기까지 많은 경우에 기복적인 샤머니즘적 요소가 개입되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교회 역시 외형적인 성장에 급급하고 있으며 교회건물의 크고 작음과 교인숫자의 많고 적음이 목회성공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성경은 현세에 있어서 물질적 축복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강조하고 있으며 메시야, 곧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체가 가장 축복받은 상태임을 역설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속을 구분하는 심각한 이원론의 영향을 극복해야하며 복음전도와 사회, 문화적 책임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19세기 서구라파에서의 보수적 성격의 복음주의 교회는 사회적 현실에 대하여 대단한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후 복음의 본질을 상실한 자유주의에 대한 배타적 반동과 세속화의 영향으로 인해 철저히 개인적인 신앙으로 점차 제한되어갔다. 개혁신앙이 모든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교회와 교인들은 성속을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교회 내에서와 밖에서의 생활을 다르게 영위하고 있다. 그리스도인 개인은 세상 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거의 알지 못하고 있으며 교회 역시 사회, 문화적인 관심이 극히 희박하며 성도들에게 올바른 사회관 및 사회참여에 대한 의식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임을 아는 바른 인식이 절실하다.

오늘의 한국교회를 향한 위기의식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교회는 거룩하며 동시에 끊임없이 거룩을 지향해야 한다는 당위적 인식이 새롭게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글쓴이 : 윤성헌 (빛고을기독학생연합 간사, 광주은성교회 교육전도사)
<이 글은 월간 '은성' 95년 10월호에 실렸던 글을 필자와의 합의하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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