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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16

 

 

 



 

 

■토론의 장

미풍양속인가? 우상숭배인가?

 

제사장면기독신앙과 전통문화

부질없는 소리 9월호 집중기획 -「한국 기독교와 무속신앙의 최대 합작품 '추도예배'에 대한 칼을 대자」에 대한 나의 의견(먼저, 나의 생각이 모자라 그릇된 논리를 주장한다 할지라도 주님 앞에서 영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자의 생각이려니 여기시고 바른 해석과 지도를 바랍니다).

잡지를 읽어보고 믿지 않는 불신자 여럿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1. 현시적으로 '조상숭배'와 '조상공경'이라는 단어 중 어느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2. 조상숭배라는 말에 부합될 정도로 제사시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나 예배하는 행위, 주술적 행위 (목욕재계, 부정한 생각·만지는 것·성관계 금지, 의식에 맞는 의복, 귀신을 부르는 행위, 귀신이나 조상을 찬양하는 의식)을 하는지? 아니면 형식적으로 겉치레에 불과한 음식 만들기 - 상차리기 - 절하기 - 먹고 마시는 순인가?

3. 제사상에 절을 할 때 무슨 마음으로 하며, 제사 및 절하는 행위의 초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첫번째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현시적 입장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공경'이라고 본다. 과거에는 물론 '숭배'의 측면이 함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숭배의 성향이 더 강하였으며 지금도 숭배의 측면이 남아있는 가정도 소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숭배'의 측면이 사라져 갔음을 말하고 싶다. 이는 선진 종교나 과학의 발달, 이성에 의한 자기 발견 등으로 인간의 이성은 한낱 귀신에 불과한 영적 존재에 대한 의존보다는 앞서 말한 종교, 과학, 이성으로 그 의존도가 전환했다고 본다. 옛날의 무속신앙은 우리 조상들의 분명한 우상숭배였지만 하나님을 발견하기 어렵고 알지 못하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종교본능에 따른 행동이였으며, 신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자연물, 신하, 조상(부모)등에서 찾을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종교본능을 충족시켜줄만한 것 중에서 부모·조부모(즉 조상)님들이 그들에게는 의존할만한 가장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였나 싶다. 우리 민족이 여타의 민족보다 '孝'에 대해 투철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감사, 의존하는 마음이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되어 하나의 신앙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과거의 조상숭배는 부모에 대한 '공경'과 '숭배'의 두 가지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떨쳐 버려야 하는 것은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조상이지, '공경'의 대상으로서의 조상까지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공경'까지 배척하라고는 안했지만, '숭배'에 대한 금기시 때문에 '공경'의 측면을 간과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과거의 측면을 살펴 보았다. 그렇다면 현대적 관점은 두 번째 질문에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물어본 사람중 한 명이 성직자님들께서 말씀하시는 우려의 측면 '숭배'를 볼 수 있었으나 그 또한 경미한 것으로 정결케하는 의식 중 부모님들께서 제사 전에 목욕을 하신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고 내가 지켜본 제사 중 대부분은 경배로 여길 만한 의식보다는 음식만들고, 상을 차리며, 절하고, 먹고 마시는 정도였다. 신을 만난다는 의미에서 행해졌던 의식이 점차로 사라져 가고, 그 자리에 흩어졌던 가족과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먹고 마시며 이야기하는 '가족 공동체'의 의미로 대체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과거 대가족과는 달리 핵가족인 가족에게 일년에 3∼4번 모이는 시간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다음 세대는 제사가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가족의 중요성과 공동체애, 孝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아직까지 '숭배'의 측면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고수하려는 극소수의 가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며, 9월호에서 주장하신 '원천봉쇄'는 그러한 경우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성경은 '숭배'가 만연했던 과거의 사실에 대해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를 조명하기 위한 말씀이다. 9월호에 주장한 우상숭배의 모습이 진정으로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우려하고 경계할만한 것이 제사행위 속에 남아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먼저 우선시되어야 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세상은 빠르게 변모하고 있지만, 기독교문화는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또한 별다른 대안없는 "원천봉쇄"로 우리가 누려야할 '가족애', '孝'마저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번째 질문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여기서 기독교는 율법이 아닌 기준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산 사람에게는 절을 해도 되지만, 죽은 사람에게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니 하지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뜻 보면 옳은 말인 것처럼 들리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올무에 얽매이게하는 율법이다. 산 사람에게 숭배의 의미로 절을 하는 것을 이교도나, 이단, 사이비 등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으며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신분의 은혜에 감사하여 절을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서 볼수 있다. 즉 산 사람에게는 禮이니 절을 해도 되고, 죽은 사람에게는 '우상숭배'니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산 사람에게도 예배,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죽은 사람에게도 공경, 감사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 바로 율법의 한계이며, 이런 율법으로 말미암아 가족, 친척공동체에서 함께 누려야 할 자유를 잃어 버린채 'Trouble maker'로 자리남는 게 율법의 폐단이다.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산 사람, 죽은 사람에게 어디까지가 공경이고 숭배인지, 넘지 말아야할 선이 무엇인지, 그 선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게 우리의 본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누구나 두 번 이상은 겪게 되는 아픔이겠지만, 부모님께서 돌아가셨고, 돌아가신 분의 사진을 앞에 모셔두고 자녀들은 그 앞에 있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혹은 귀신)이니 절해선 안된다고 말할 지는 모르지만 돌아가신 분의 자녀들은 자신있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자녀의 마음 속에 극진한 감사와 공경의 의미로 절을 하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인식은 우리 한국 사람이 가르치지 않아도 우리의 앞선 세대를 통해 배운 전통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살아 계셨을 때도 나의 부모님이셨고, 돌아가신 후에도 부모님이다. 그분이 돌아가셔서 죽은 사람이 됐다고 해서 어떤 초월적인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연약한 한 인간에 불과했듯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그렇다.

실제적인 모습에서 살펴보자. 안믿는 가정에서 제사시 절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따돌림, 핍박을 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집안의 높으신 어른들이 강요하시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혼자 만의 의지를 홀로 지키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살펴 보아야 하는 것은 그 강요의 성격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 '숭배, 예배'를 강요하는 것인지 아니면 가족공동체와 함께 하길 거부하거나, '공경'에 대한 반대적 입장으로 오인하셔서 그러한 강요를 하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 전자의 경우라면 마땅히 목에 칼이 들어와도 조상을 가장한 사탄에게는 꿇어 엎드리지 않는다는 믿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과거의 제사문제로 순교한 많은 신앙의 선배들의 충성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다음 문구를 살펴보자. 대안책으로 제시된 것 중의 문제점을 가진 것들이다. '열심히 일을 돕고 제사 전에 몸만 빠져 나오는 것이 좋다.', '사정상 갈 형편이 못되면 예의를 갖춰 일주일전 쯤에 넉넉한 비용을 대는 것도 좋다.'(이상은 9page) '불신 가족들의 악의에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제사를 지내겠다면 일단 내버려 두라. 그러나 그들과 함께 제사행위에 동조하거나 참여하여 음식을 만드는 일 등은 삼가해야 한다.' (이상은11page) 9월호에서 제시한 대안들 중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들의 주안점이 공경, 효, 가족공동체에 있다면 이것은 선한 것이며 이것을 거부할 만한 마땅한 명분은 없다고 본다.

신앙의 눈으로 전통문화와 사회문화를 바라볼 때 그 문화들 중에서 부정적인 일면이 있다고 해서 금기시하는 방법은 그것이야말로 율법적이며 비성경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제사의 경우를 통해 언급했지만, 하나의 문화를 이룩되어지는 데는 그에 따른 여라가지 부여된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크게 나누어 보면 2가지로 첫째, 인간의 사회를 보다 건전하게 유지시키려는 목적. 둘째, 그 가운데 직·간접으로 자리잡은 사탄의 계략이다. 따라서 인간사회에 있어서 인간이 주도된 모든 일들 중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은 없다고 본다. 사탄의 음모를 완벽하게 뿌리칠 정도로 인간이 그렇게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도 아닐 뿐더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양심과 자신의 '형상'이 완전히 소멸된 사탄처럼 그렇게 절대적으로 악한 존재는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 변혁과 하나님나라의 확장은 주체가 인간에서 주님에게로 이양되고, 전통문화와 사회문화에 영향을 끼쳤던 사탄의 영향력을 제거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과거의 제사를 통해 사탄의 계략은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의 사탄의 계략은 사라진 개념에 구속받게하여 가족공동체를 와해시키고 세상과 문화에서 크리스천을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과거 보수교회(지금도 몇몇 교회에서도 그렇지만) 국악찬양을 금지시킨 일이 있었다. 사용되는 악기들이 굿이나, 제사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런 부정한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악기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인간을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무지와 연약함으로 하나님대신 죄와 사탄을 찬양하고, 인간을 위한 악기로 바꿔버렸다. 여기서 바람직한 회복, 문화 변혁은, 사탄이 차지한 자리에 본래의 주권자셨던 하나님이 자리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영역이 확장되어지는 것이다. 금기시하고, 율법적인 해결책을 찾는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영역을 축소시키는 결과가 아닌가?

전통과 사회문화에 대한 나의 의견은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한다."에 반대하여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야하고 누려야할 범위와 하지 말아야 할 기준을 바르게 설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서 행하자는 것입니다.

 

제사에 대한 기독교적인 자세

김종원 목사 (광주중부교회)

1. 제사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

세계에서 제사를 지내는 민족은 몇 군데 있다. 그 중 제사를 가장 성대하게 지내는 곳은 아프리카다. 아프리카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멀리 묻지 않고 집 가까운 곳에 묻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일년 동안 방 구석에 모셔두었다가 그 시체가 다 썩은 뒤에야 장례를 지내는 풍속이 있다. 그 당시에는 부모에게 제사지낸 것이 아니고 뛰어난 황제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 후 세습제가 되면서부터 훌륭한 임금들에게만 제사 지내던 것을 자기 아버지가 훌륭하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때무터 자기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조상을 위한 제사가 아니라 자기 위치가 더 든든해지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사를 지내게 되었던 것이다.

초기에는 왕실에서 황제들만 제사를 지냈는데 그 후에 제후(황제 밑에 조그마한 소국가의 제후)들도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재상들도 제사를 지내다가 춘추 전국 시대에 이르러 모든 질서가 무너지면서 평민들이 "왕들의 조상만 훌륭하냐? 우리 조상도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부터 왕의 허락도 없이 평민들도 제사를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중국에서 이론적인 뒷받침으로 제사를 강조하게 된 것은 훨씬 후대인 송나라 때부터다. 송나라 유교학자인 주희(혹은 주자라고 함. 주후 1130∼1200)가 처음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것이 하나의 철학으로까지 발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나 고구려 때에 모든 왕이 아니라 특수한 왕에게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삼국, 고구려 시대에 걸쳐서는 불교가 성행하여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일이 없다. 오늘날도 불교 국가에서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절에 가서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낸 것은 무속과 불교가 섞여서 후대에 생겨난 특이한 현상이다. 본래 불교국에서는 제사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가 성행할 때까지는 제사가 별로 심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려말에 중국에서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당을 짓기 시작했다. 이 사당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그러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라 뛰어난 인물들을 위해서만 사당을 만들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이 태조는 고려와 근본적인 차이를 강조하기해서 고려의 불교를 물리치고 성리학을 도입한 새로운 형태의 유교를 조선의 종교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주자가 강조한 조상의 제사를 장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정에서 제사를 장려할 때는 평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성종 때에 가서는 오히려 평민들의 관심이 줄었다고 한다.

그 후에 다시 제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자 제사를 어떻게 지내야 하느냐가 매우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였다. 이것은 큰 쟁론이 되어 큰 사화로 발전하게 된다. 문제의 발단은 국모가 죽었을 때 복(服)을 1년 입어야 하느냐 3년을 입어야 하느냐의 문제로 사람을 죽이게 되는 비극이 발생하게 된다. 그후 서원 문제가 크게 발생하게 된다. 당시 서원은 교육의 행위와 위대한 선비에 대한 제사가 동시에 행해졌다. 조선 시대의 비극은 바로 이 서원을 중심으로 발생하게 된다. 대원군은 서원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하여 아주 유명한 서원만 제외하고 모두 불태워 버리는 일까지 생긴다.

그러면 왜 제사를 하는가?

첫째는 죽은 사람의 사후 세계에 안정된 삶을 위해서다.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갈라져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하늘로 올라간 혼이 거처할 곳을 얻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다가 그 후손들이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면 죽은 조상의 혼과 백이 연합해서 사후에도 안정된 삶을 어느 정도 지속한다고 하였다. 신주가 그 거처가 된다고 하였다.

둘째는 살아있는 사람이 복을 받기 위해서다.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하늘의 뜻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낼 때 하늘의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이 복을 주는 대신 조상이 복을 준다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즉 죽은 조상이 하늘의 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2. 천주교의 제사에 대한 태도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1631년 중국 사절단의 일원으로 따라갔던 정두원이라는 사람이 북경에서 천주교의 신부인 Matteo Ricci가 저술한 천주실의(天主悉義)라는 책을 가지고 들어가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은 1784년 이승훈이 북경 사절단의 한 사람으로 갔다가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때부터다. 천주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엔 제사를 거부하였다. 교황청에서도 1715년과 1742년 두 번에 걸쳐 교황이 교서를 발표하였다. 특히 1742년 교황 베네디투스 14세는 유교적 조상 숭배는 성경의 교훈에 어긋나기 때문에 카톨릭 교회에서 용납할 수 없다고 하였다. 1791년 전라도에서 윤지충과 권상연 등이 제사를 거부하며 순교까지 당하였다. 윤지충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유교적인 장례를 거부하고 시주를 땅에 파묻었다. 윤지충은 이일로 지방 재판소에 끌려가 재판을 받았다. 그 때 윤지충은 "나는 천주를 나의 부모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천주의 명령은 어길 수가 없소. 천주의 종교는 나의 신주를 만드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파고 묻었소. 나는 돌아가신 내 어머니께 잘못할지언정 천주에게 잘못할 수 없소."라고 말했다. 윤지충은 순교를 당했다. 교황은 1939년 새로운 교서를 내렸다. 신사참배나 조상숭배는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 시민적 의식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카톨릭의 연옥 사상과 맞는 조치일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정치적인 이유도 다분히 있었다. 이탈리아와 일본은 동맹을 맺고 있어서 일본의 상당한 압력이 있었던 것이다. 카톨릭은 이 교서 하나로 80여년 동안 순교한 10,000여명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어 버렸다.

로마 카톨릭은 조상 숭배를 시민적인 의식의 하나로 허용함으로서 조상에 대하여 음식을 차려놓는 것과 향을 피우는 것을 정당화시켰다. 오늘날 카톨릭은 죽은 자를 위해 음식을 차려 놓는것과 향을 피우며 시체나 사진 앞에서 절하는 것도 다 허용한다. 뿐만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미사와 기도를 다 허용하고 있다.

 

3. 개신교의 제사에 대한 태도

개신교는 1878년 서상윤과 그의 형제 서상우가 상민으로 만주에 가서 Jon Ross선교사를 만나 감화를 받고 1879년 세례를 받았다. 서상윤은 로스 선교사의 조선말 성경 번역을 도와주었다. 서상윤은 1883년 고향으로 돌아올 때 번역된 신약복음서를 가지고 왔다. 그는 황해도 소래에서 복음을 전했고 소래 마을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어 교회가 세워졌다.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인천항에 도착한 것은 그 다음 해인 1884년이다.

개신교도 역시 제사 문제에 부딪쳤다. 이 문제에 대하여 선교사들과 신자들은 함께 조상숭배는 성경에 맞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세례를 받을 때 일곱가지 사약을 하였는데 그 중 첫째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영들을 숭배하는 것과 높이는 것을 미워하시므로 조상의 영을 숭배하는 것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순종하겠습니다."라는 것이다. 이렇듯 당시 기독교인들은 처음 예수 믿을 때부터 어려운 결단을 하고 세례를 받았다.

 

4. 최근의 위험한 동향들

1977년모 대형 교회의 목사는 제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다. "부모님 생각이 나니까 부모님 잘 잡수시던 음식이 생각나고, 우리끼리 먹으려니 마음이 안됐어요. 그럼 부모님이 앞에 계신 듯이 제사상 차려 놓고… 아무개 신전이라고 하면 우상이 되니 지방 쓰지 말고… 정 겁이 나면 십자가 하나 세워놓고 꿇어 앉아서 '아버지 어머니, 명절이 되니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그 은공을 생각하니 고맙습니다.' 하며 절하는 것이 왜 죄가 됩니까? …우리는 부모에게 절해서 섬기고 경배해서 섬깁니다. 산 부모에게 절하고 죽은 부모도 부모니까 절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부모는 죽어서도 부모인데 부모를 인식하고 부모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우상 섬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부모는 천국에 갔든지 음부로 갔든지 간에 부모입니다. 부모의 그 정성을 내 마음 속에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사드리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감신대 교수였던 변선환교수는 1983년 12월 24일 동아일보에 "조상숭배"는 하나의 효의 표시이며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하였다.

WCC(세계교회협의회)에서는 인디언의 종교적 영성이 성경에 모순되지 않는다고 하여 제네바의 WCC본부 앞에 인디언들이 만든 토템 기둥을 세워놓았다. WCC 안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각 지역의 종교문화적 전통을 매우 높이는 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최근 동향들은 현실의 문제를 편의주의로 해결하려는 경향에서 나타난 것이다. 즉 현실의 문제를 성경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중심으로 해결하려는 매우 어리석은 발상에 불과하다.

 

5. 제사에 대한 성경적인 해결방법

제사를 문화나 시민의식의 하나로 보는 견해에 대한 비판

제사가 아무리 민족 고유의 전통이라고 하여도 그것에 우상성이 내포되어 있다면 당연히 배제되어야 한다. 사실 제사가 한국 고유의 전통이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제사는 분명히 우리 조상들이 옛날부터 지켜오던 전통이 아니라 13세기 이후에 한 왕가의 강요에 의해서 생겨진 풍속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 본성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한국적인 것도 아니며 중국의 유교에서 들어온 것을 정착시킨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과연 한국적인 것인가? 외국에서 들어온 것 가운데 시간적으로 좀 먼저인 것은 한국적인 것이 되고 같은 외국에서 들어온 것일지라도 늦게 들어온 것은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인가? 왜 불교적이고 유교적인 것들은 한국적인 것이고 기독교적인 것은 한국적인 것이 아닌가? 기독교가 한국적인 것이 아니면 당연히 불교나 유교도 한국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결코 문화적인 전통을 내세워 제사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제사가 외국에서 들어왔으나 시간이 오래 되었다고 문화적 전통이라고 한다면 기독적인 것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문화적인 전통이 될 것 아닌가?

설령 제사가 한국적인 문화 전통이라 할지라도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그것을 결코 그대로 용납할 수 없다. 개인적인 면에서 자기 부인 없이 복음을 받아 들이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사회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문화적인 전통일지라도 그것이 우상성이 있으며, 비기독교적일 때는 당연히 거부되어야 한다. 오히려 문화는 복음 안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새로운 문화가 창조된다.

우리는 삶의 형편에 맞추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또한 성경을 우리 형편에 따라 이용하려는 것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으며, 성경이 가르치는 것에 순종해야만 한다.

제사에 대한 성경적인 대답

죽은 자에 대하여 어떻게 하라는 것을 성경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얼마든지 성경의 다양한 가르침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제사는 분명히 죽은 조상을 숭배하는 행위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우상숭배다. 물론 어떤 이는 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외부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형식적으로 하고 있을 뿐인데 이것까지도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겠는가? 형편상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지 않느냐고 한다. 이런 자세는 신사참배는 종교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국가 의식이라고 하며 신사참배에 참석한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뿐만 아니라 우리는 바울 사도의 가르침을 통해서도 제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얼마든지 알 수 있다. 바울 사도는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상의 제물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며 그것을 먹을 만한 지식이 있어 먹을 때에, 약한 자들이 이것을 보고 따라서 먹음으로 넘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형제를 실족케하는 것이라면 고기마저도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고전8:1-13). 이것은 제사에 대한 자신의 판단 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이 있기 때문에 나의 판단 뿐만이 아니라 다른 약한 사람들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사는 어떤 경우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가 되었느니라(고전8:1-3)"라고 하였다.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덕이라고 하였다. 지식이 최종적인 판단의 기준이 아니다. 덕과 사랑이 최종적인 판단의 기준인 것이다. 교회사 속에서 많은 교회의 분열과 싸움은 덕과 사랑보다는 지식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제사문제에 대한 토론이 지식의 싸움이 아니었으면 한다. 또한 세상 문화와의 타협도 아니었으면 한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운 기독교적인 문화를 이 땅에 실현해 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TheVoice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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