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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16

 

 

 



 

 

■특집II

종교계혁이 오늘 우리에게....부족한 한 편의 가을 시(詩)와 함께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국 교회를 바라다본다. 성급함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종종 실수로 인하여 좋은 의도를 그르치게 함을 우리는 경험한다. 요사이 한국 교회가 너무도 빈번히 쓰는 말은 "교회가 개혁되어야 하고, 갱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새로워져야 하고, 누가 그리스도의 진정한 인격과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말인지. 우리 모두는 겸허하게 현재의 삶을 돌이켜 보게 된다. 그럴 때 과연 2000년의 교회사를 통해서도 절실히 깨닫게 되는 "늘 새로워져야 하는 교회"임을 우리는 부인할 길이 없다. 많은 것들을 제시하기 보다는 분단의 아픔 속에 있는 조국 그리고 조국의 교회가 동족상잔의 6.25 이후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갈라지고 나누어졌다는 사실은 그 이유를 다 헤아린다 할지라도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사랑은 분명 허다한 죄를 덮어주며, 용서하고 모든 믿음의 형제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띠라고 하나님의 말씀은 강권하는데, 오늘 한국 교회는 이 십자가의 사랑 앞에 할 말을 잊어버린지 오래인 것 같다. 우리 교회는 잃어버린 옛 사랑을 되찾고, 우리의 위선 때문에 힘이 없는 사랑의 설교를, 눈물의 회개와 실천적 인격의 회복으로 당당히 강단에서 되찾아야 하겠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의의

마틴루터1517년 10월 31일 썩어져가는 교회의 개혁을 위해 일어난 종교개혁자 말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더 이상 빈 껍데기의 교회의 부끄러운 실상을 옹호하며, 타인처럼 빈 껍데기만을 자랑하며 바라다 볼 수 없었다. 하나님의 교회가 달라져야 하고,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잘못된 구원으로의 확신에서 벗어나 바른 신앙과 그로 인한 진정한 성도의 삶을 교회가 회복하기를 루터는 갈망했다. 이러한 루터의 외침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켜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뜻이 구현되는 가장 능력있는 교회 개혁의 역사를 이루었다.

루터는 종교 개혁의 아버지로서 철학의 논리와 전통에 근거한 잘못된 중세의 기독교를 오직 성경 위에 세운 성경적 기독교로 전환시켰다. 이 루터의 복음적 전환은 다름아닌 성령의 도우심을 받은 그의 성경 연구와 영적 투쟁을 통해서 얻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결과로 참된 개혁 신학(Reform Theology)을 가져와서,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그리고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죄인들이 의롭게 된다는 의신칭의의 구원론을 회복시켰다. 또한 루터는 기독교인의 신앙과 행위의 유일무이한 최종적 권위는 오직 성격 뿐임(Sola Scriptura)을 견고히 하였다. 교회는 정결케 되기 시작하였고, 성도들의 삶은 생도감이 넘치게 되었으며, 비로소 교회는 성경적 교회(Biblical Christianity)로 변화되어 갔다.

 

칼뱅의 종교개혁의 의의

불란서 출신의 칼뱅(John Calvin, 1509-64)은 루터보다 한 세대 후(26년) 태어나서 어찌할 수 없는 어려움 때문에 조국을 떠나 나그네와 외국인으로서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하나님의 거대한 손에 사로잡힌 하나의 뜨거운 심장으로 당시의 그 어느 누구보다도 기독교의 역사를 가장 풍요롭게 만든 가장 영향력있는 교회사의 인물이 되었다.

당시 카톨릭 교회는 루터의 종교 개혁을 통하여 잃어버린 교회와 성도들을 되찾기 위하여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 1491/5-1556)의 "반종교개혁의 무서운 돌격대" 또는 "바티칸의 긴급 상비군"이라는 별명의 예수회를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무섭게 펼치고 있었다. 그들의 활약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는 카톨릭 자체의 종교개혁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추구하였으며, 둘째는 개신교 종교 개혁의 확산을 저지함에 있었다. 그들이 이루고자하는 카톨릭 개혁이란 중세의 경건한 행위와 가르침의 부활을 통하여 옛 로마의 영광을 회복코자하는 것이었다.(R.D.Linder)

이러한 때에 종교개혁의 제 2세대의 칼뱅의 출현은 보다 의미가 있었다.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가까이 있었던 독일의 멜랑히톤보다도 루터를 가장 잘 이해한 최대의 제자로서 평가를 받는 칼뱅이어야말로 루터 다음으로 가장 적절한 두 번째 종교 개혁자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칼뱅의 생의 작품이며, 종교 개혁 시대 최대의 조직신학적 명저로서 기꺼이 평가를 받는 '기독교 강요'가 루터의 '소요리문답'에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때 루터와 칼뱅의 신학 사상의 일치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고 칼뱅의 신학사상이 갖는 독창성과 조직성 그리고 명료성을 통한 탁월성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한 칼뱅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성경주해자, 가장 거대한 조직신학자, 가장 심오한 종교사상가로서 성경 중심적 가르침과 하나님 중심적 삶과 그리스도 중심적 신앙을 통하여 카톨릭의 반종교개혁적 온갖 박해와 시도를 오직 성경을 무기로 무력화하면서 종교 개혁을 보다 깊고 넓게 그리고 견고히 체계화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J.I.Packer)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분명 그 시대 마리아..시대마다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준비된 종들을 부르셔서 참으로 적절하게 사용하심을 실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종교 개혁자들에게 있어서 기독교인의 윤리를 생각해 보면서 지면관계상 글을 맺어야 하겠다. 특히 한국 교회는 신앙과 삶의 이원화로 심각성이 도를 넘고 있다. 기독교의 문화 내지는 기독교의 윤리가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절실히 요청되건만, 오늘 우리에게는 자랑스럽게 내놓을 것이 아직 없다. 도리어 신앙과 삶의 분리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짐은 어찌된 일일까. 신앙과 행위의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크리스천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 후 비로소 선행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동역자(Cooperatio Dei)가 된다. 의롭다함에 이른 신앙은 일상생활 가운데 실천을 요구한다. 신앙은 모든 선행의 원천이 된다. 그러므로 신앙이 선행을 중지함은 있을 수 없다. 사랑은 신앙의 열매이다. 성경은 "열매로 알리라"는 말씀을 분명한 음성으로 선포한다. 열매없는 교회는 종교개혁의 원인이며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른 삶과 바른 신앙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글 : 주도홍 교수 (기독대, Dr.th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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