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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

본문말씀 : 열왕기상 3장 1절 - 15절

광주중앙교회 변한규 목사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때문에 가장 좋은 것을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남기려고 한다. 이때 믿는 사람들은 그 답을 성경에서 찾아야겠다. 다윗을 소개하는 솔로몬의 말이 본문 6절에 있다.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를 섬겼다는 내용이다. 솔로몬은 여기서 성실, 공의, 정직을 바탕한 아버지 다윗의 믿음을 유산으로 받았다. 다윗을 보자. 다윗은 목동 일 때부터 하나님만을 의지했다. 맹수와 싸울 때도 입을 찢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힘을 주셨기 때문이다. 골리앗과 싸울 때에도 다윗이 말했던 바를 기억해 보자.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즉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하여 그의 믿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다윗은 시편 23편 1절에서 하나님을 자기의 목자라고 고백했다. 시편 139편 7절에서는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하고 했다. 이 말은 항상 자기 앞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같이 다윗을 다윗되게 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다. 그의 이같은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향해서 다윗이 주의 맘에 맞는 자라고 칭찬하던 것이다.(본문 10절 말씀) 그러면 솔로몬의 경우엔 어떤 점이 주님의 맘에 맞았을까? 이 경우도 역시 그의 믿음으로 인해서다. 본문 4절에 보면 솔로몬은 기브온 상단에서 믿음으로 1천 번제를 드린 바 있다. 뿐만 아니다. 그는 이스라엘 3대 왕이 되었을 때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들 다윗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7절).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은 솔로몬의 노력 때문이 아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다. 솔로몬은 그것을 깨닫고 감사한 것이다. "세상에서 나의 나된 것은 나의 노력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 바울이 말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솔로몬은 열국의 왕이다. 얼마든지 권세의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참으로 겸손하게도 "종은 작은 아이"라고 했다. 이같은 놀라운 고백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사람의 능변이나, 풍부한 경험, 그리고 지식으로는 그같은 고백을 가능케할 수 없다. 오직 믿음만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문과 혈액형 따위을 보시기 전에 가장 먼저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 "종은 작은 아이"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을 보신다.

우리는 어린이 주일을 맞이할 때면 으례히 학교, 교회, 가정에서 아이를 잘 양육하고 있는가를 물어 보곤 한다. 왜 어리고 작은 아이를 잘 양육해야 할까. 지금은 작디 작은 아이라도 미래의 어른이 되고 민족의 소망이 되고 교회에 큰 일군이 되기 때문이다. 작은 아이의 양육이 중요한 까닭은 본문에서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첫째, 작은 아이라도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스스로를 "작은 아이"라고 했다. 그의 키가 작거나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 아니다. 경험이 부족하고 지혜가 모자라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하시니 솔로몬은 부도, 원수 값는 일도 구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를 "작은 아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오직 지혜를 달라고 했다. 그의 이런 모습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지 않았던 것까지도 풍성하게 주셨다. 기독인들이 인생을 살아갈 때 항상 지혜가 필요하다. 믿는 사람들의 호흡이 되어야할 기도를 하는 때도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혜로운 기도는 지푸라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금덩이를 구하는 것이다. 지혜를 가지고 2차적이고 쓸데없는 것을 구하기 전에 1차적인 것을 구해야 한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눈 먼 거지 바디매오가 주님 앞에 나왔을 때 주님께서 물어 보셨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이에 바디매오는 자기가 거지이면서도 빵이나 물질을 구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근본적인 것을 구한 것이다. 그렇게 눈을 뜬 후에야 비로소 필요한 빵과 물질을 풍족하게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은 어렸을 적부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배워둬야 한다. 어린 아이라도 기도하면 마귀가 그 영혼을 건들지 못한다. 작은 아이라도 그 영혼은 어른들의 영혼과 똑같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한 사실에는 전혀 다른 점이 없다. 작은 아이라도 큰 일을 기도할 수 있고 작은 아이라도 가족과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경건을 가르쳐야 한다.

아이의 양육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작은 아이라도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 3절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했다고 말했다. 작은 아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서 작은 아이를 어찌 부모가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솔로몬이 쓴 아가서를 보라.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인 성도의 사랑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솔로몬은 아비인 다윗의 사랑을 배웠기 때문이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엥겔 동굴로 피했을 때 사울은 그것도 모르고 들어 왔다. 사울을 능히 죽일 수도 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부은 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때문에 칼을 든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베었을 뿐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다윗은 자기를 여러번 죽이고자 했던 사울을 무던히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솔로몬은 다윗에게서 이러한 사랑을 배웠다. 부모된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본을 보이고 그 사랑을 자녀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래야만 아이들에게도 사랑이 넘칠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 그리고 먼 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한다. 분명 작은 아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이여야만 이웃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아이가 성숙해서는 인류의 십자가를 지고 눈물을 흘리는 기도를 할 수도 있고 가슴을 치면서 백성을 사랑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작은 아이라도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 7절에서 솔로몬을 왕이 되게 하셨다고 했다. 솔로몬이 비록 어른은 아니였지만 큰 직분을 맡을 수 있었다. 작은 아이라도 교회에서 거룩한 성직을 맡을 수 있다. 힘없는 아이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작은 아이라도 왕이 될 수 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 지금은 작은 아이이지만 장차는 큰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작은 아이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이는 항상 작은 아이가 아니다. 아이는 내일의 어른이요, 미래의 장군이요, 왕인 것이다. 링컨이나 에디슨도 본래는 작은 아이에 불과했다. 모세, 예레미야도 원래는 작은 아이였다. 지금 보기에는 아이이지만 그가 장차 노벨 수상자가 될 수도 있고 암을 치료하는 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종은 작은 아이"라며 솔로몬이 고백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한 인간성을 지닌 자신을 알았다. 그의 혈관 속에서 흐르고 있는 더러운 피를 알고 있었다. 그는 남의 아내를 강탈하고 그 남편을 죽인 아버지 다윗을 알았고, 또한 현숙한 부인이 못되어 바람을 피운 그의 모친 밧세바를 알고 있었다. 솔로몬은 그러한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악의 아들인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고개를 바로 들 수 없었고 무엇이 잘났다고 뽐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왕이면서도 '내가 왕이다', '나는 똑똑하다', '나는 이만하면 됐다'라고 할 수 없었다. 솔로몬은 또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떠한 백성이었던가. 출애굽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얼마나 불평을 했으며 거역하고 반항했던 이들이었는가. 때문에 그들을 비유컨데, 자기의 아이를 죽이고서는 남의 아이가 자기 아이인 양 생떼를 부리는 기생과 같은 백성이라고도 했다. 솔로몬은 그러한 백성 중의 하나인 자신을 알았다. 그래서 종은 작은 아이라고 했던 것이다. 자기를 아는 일, 이것은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경건이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 아닌가', '나는 입을 닫아야 할 때에 입을 여는 사람은 아닌가' 물어야 한다. 세상에는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자기를 알기는 알되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은 데도 그 생각과 행동이 마치 작은 아이같은 사람도 많다. 어리고 작은, '아이'같은 자신을 알아야 한다. 솔로몬처럼 종은 작은 아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식은 여호와가 주신 기업이다. 성경을 보라. "어린 아이와 같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누구든지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는 큰 자니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 내 자녀를 노여케 하지 말고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러면 늙어서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성도여. 솔로몬이 말한 것처럼 우리 모두가 가정, 교회, 사회에서 작은 아이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작은 아이를 사랑해야겠다. 작은 아이라도 우리 모두의 꿈이 될 수 있고 교회의 큰 일군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은 아이는 우리의 소망, 우리의 기쁨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할 것이다. 그 작은 아이들에게 부모되는 우리가 유산으로 남겨야 하는 것은 오직 '믿음'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겠다.

말씀 : 변한규 목사 / 광주 중앙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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