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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10

 

 

 

 

 

 

  

■ 수필



그 삼남매 중 맏이가 누구인가에 대하여는 내 친구와 나와의 심심할 때 화제거리였다. 교회 안에서 남의 분행을 화제삼는 것은 그 때 나의 어린 마음에도 불문율로 붙여진 금기사랑처럼 느껴졌다. (맏이가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그 소아마비 소년이 정확히 몇 살인지를 묻는 것이나 같았는데 그런 것은 몰라도 그만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삼남매 중 둘은 항상 붙어 다녔다. 셋 중 하나가 몸이 불편한 소아마비였기 때문에 누가 항상 옆에 같이 있어 주어야만 했다. 그 소아마비 소년의 나이는 고작 10세 미만인 듯 했지만 그의 형제 중엔 그에게 함부로 대하는 이는 없었고 (실제로 나는 그들이 서로 대화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같이 예배를 드리는 유년주교 친구들도 그에게 말을 거는 아이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외로웠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예배에 나왔던 것 같다. 그의 형제들을 보면 체격 면에서 나머지 두 명이 훨씬 컸다. 내 친구는 어디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한 때 항상 나에게 맏이가 누굴까라는 질문으로 그녀의 호기심을 나타냈다.

몇 년 후 난 중학생이 되었고 또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옮겼다. 고3이던 어느날 아침, 그 날은 좀 늦었던 바람에 우리 집 근처의 남학교로 등교하는 많은 남학생들 틈을 거슬러 학교를 가고 있었다. (평소엔 이 길은 가급적 이용하지 않았었다) 지나가던 남학생들을 무심코 스치던 내 시선이 어느 한 소년에게 돌아갔다. '어디서 많이 봤다'고 생각하던 찰라 그가 누구인지 생각이 났다. 예전 교회에서 보았던 소아마비 소년이었다. 여전히 옆엔 그의 남동생인지 형인지 모르는 이가 부축해 주고 있었는데 그는 키가 훌쩍 커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몸이 불편한 그 소년은 내가 예전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시간의 화살이 그를 비껴 간 것임이 틀림없었다. 나도 이렇게 컸고 그의 형제도 저렇게 컸는데, 그는 그 옛날의 모습으로 그렇게 있었다. 그는 그 옛날의 모습으로 그렇게 있었다. 그에게 시간이란 그저 빳빳한 종이 달력에 불과했던 것이었을까? 그날은 하루종일 시무룩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항상 그 형제의 맏이를 묻곤 했던 친구. 그 아이가 직장을 얻어 타지역으로 떠나게 된다는 소식을 연초에 들었다. 어렸을 땐 그렇게 친했건만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소식을 알게 한 그 아이가 참 섭섭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서운한 건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러버렸고 유년시절의 즐거움을 함께한 그 친구는 과거 속에서만 그리워할 수 있는 친구로 남을 거란 사실이다. 현재의 이 친구는 과거의 그 친구가 아니기에 말이다.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는 그만큼이나 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섬에서 이사 온 그 애는 말이 별로 없었다. 집이 가까웠고 교회를 같이 다니면서 서로 친해졌다. 어벙할 정도로 순진하고 착하던 그 친구의 모습이 나의 뇌리에 꽉 박혀 있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우리가 서로 바빴을 때 그 친구는 변화를 겪었고, 대학교 입학 후 내가 만난 그 아이는 내가 이제까지 기억해 왔던 아이가 아니었다. 물론 착하긴 했지만 왠지 느낌이 달랐다. 그 애도 나를 보고 그렇게 느꼈을지 모를 일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변화를 겪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작은 씨앗에서 푸릇푸릇한 새싹을 기대하듯이 또 아름다운 꽃을, 더 나아가선 탐스런 과일을 기대하듯이 살아있는 것은 모두 변화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그 친구에 대해 변함없기를 바랬던 내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비쩍 마르고 키만 껑충하던, 나보다 더 말수 적고 수줍은 웃음을 잘 흘리던 꼬마 여자 아이가 이젠 균형 잡힌 몸매에 자신감 넘쳐 보이는 새내기 간호사로서 나보다 더 먼저 자신의 길을 박차고 나아간다. 이 세상 모든 부모님들이 즐거워하시는 것은 바로 그것일 게다. 자녀들이 오늘 내일이 다르게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을 보는 것 말이다.

내가 하나님을 나의 주 아버지라고 섬긴 것도 거의 청년기의 나이가 되어간다. 나는 나의 영적 나이에 맞게 잘 자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혹시 주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눈길이 성장이 멈춘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가슴 아픈 심정이 아닐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만 부모의 심정을 그 어느 효자가 헤아릴 수 있을까?
 

글 : 김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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