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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21 No.10

 

 

 

 

 

 

  

    본문말씀 : 고린도전서 12장 1절 - 3절

    말씀 : 김진홍 목사 (경기도 화성군 활빈교회 담임목사)


누구나 교회의 본질은 봉사나 세상을 섬기는 일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교회를 개발하고 교회가 구제사업에 힘쓰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교회의 핵심은 아닐게다. 사회정의 실현, 통일운동, 인권운동 등 이러한 것도 교회가 해야 할 일에 분명이 속하지만 이런 일들을 가지고 교회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이것에만 명분을 내게운다면 분명 그 것은 교회답지 못하고 '치우친 교회'일 뿐이다. 교회가 가장 먼저 해 놓을 일은 바로 '신령한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농촌을 개발하는 것과 구제하는 일 등 그 모든 사업을 벌이기 이전에 교회 자체가 영적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정치를 하기 위해 인권을 위해 혹은 구제품을 받으려고 교회에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신령한 양식을 찾아 영적인 요구를 위해 교회에 온다. 그러므로 교회는 근본적으로 영적인 것을 갖추어야 한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교회가 해야 될 여러 가지 사명 중에 그 시대에 맞는, 백성과 사회를 돕는 사업들을 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영적인 교회, 영적인 것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과 기독교에서는 도대체 어떤 것을 영적이라 말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영적'이란 간판을 내세워 놓고 전혀 영적이지 않은 행동을 한다. 또 영적인 것을 가장하여 인간의 권위를 내세우는 이도 있다. 때문에 교회가 영적이 되려면, 먼저 우리가 성경적으로 어떤 것이 영적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해서 종교적인 영성과 성경적인 영성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를 믿되 일반 종교적으로 예수를 믿는 것이고, 성경상으로 빗나간 신앙이다. 종교와 복음은 구별되어야 한다. 일반적인 종교와 기독교의 영적 바탕은 판이하게 다르다. 그것을 구분해야 기독교의 진면목을 우리가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 종교에서 영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세상이 고난의 세상이고 죄 많은 세상이라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큰 가르침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의 첫째가 인생이 고해(苦海)라는 것이다. 이 고통의 바다에서 어떻게 해탈을 하느냐, 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다. 고통의 바다, 이 고해의 세상을 어떻게 건너서 고통 없는 저승으로 가느냐가 일반 종교가 말하는 영적인 것의 핵심이다. 즉 육신을 벗어나서 영혼의 세계로, 이 고통의 세상에서 평강의 하늘로 옮겨가는 것을 영적이라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다. 우리 기독교 신앙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를 잘못 믿어 온 것이다. 왜 그럴까? 일반 종교에서는 육신을 벗어나서 영혼의 세계로, 고통스러운 세상을 벗어나서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종교로 생각하지만 성경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서 하늘로, 육신에서 영혼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세상으로, 영혼에서 몸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기독교에는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이라는 3대 보배가 있다. 그것들은 각각 '무엇을 믿을 것인가(사도신경)', '어떻게 살 것인가(십계명)',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 것인가(주기도문)'를 나타낸다. 그 중 주기도문에는 기독교의 본질을 짚어 준 말이 있는데 바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영적인 것의 기준이다. 즉,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영혼 세계의 진리가 육신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고 이것이 영적인 생활이다. 또 기독교적인 영적 삶의 기준에 대해서 요한복음 1: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씀'은 '메시아 예수님'을, '육신'은 '성육신'을 뜻한다. 하나님이 세상으로 온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는 하나님과 말씀이 육신으로 변하여 세상으로 온 것이다. 다른 종교처럼 괴로운 세상을 벗어나서 하늘로 가는 것이 아니다. 서양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성경적인 신학을 하지 않고 헬라 철학으로서의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철학자들 중 플라톤이 말하기를 '육신은 영혼의 감옥'이라 했다. 즉 우리의 영혼이 육신의 감옷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또 육신 감옥을 벗어나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영적 이해이다. 이러한 잘못된 영적 이해를 가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에서 벗어나 버리게 된다. 이것은 헬라 사상이고 이방사상이다. 성경적인 사상은 말씀이 육신으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감옥으로 여겨 더럽고 추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 말씀을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일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였다. 이처럼 우리 몸은 성령님께서 계신 성전이다. 너희 몸은 더러우니 영으로써 영광을 돌리라는 것은 기독교 사상이 아니다. 몸으로써 열심히, 정직하게 땀 흘려 사는 것이 하나님 일의 시작이다. 성령이 계시는 성전, '몸'으로 드리는 이 헌신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적인 영성, 성경적인 영적 바탕은 우리의 온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장 14절)"

옛날에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할 때에는 천막을 치고 살았었다. 백성들이 저녁마다 천막을 쳤는데 맨 한 가운데의 천막이 바로 예수님의 천막이었다. 이것은 우리 모든 삶의 한가운데에 예수님의 교회가 있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교회의 주인되신 예수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직장생활, 가정생활, 정치생활을 다 이루어 나가는 것이 성경적인 영적 생활인 것이다. 이것이 확실해야 개혁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육신은 더럽고 세상은 죄 많으니까 죄많은 세상과 더러운 육신을 벗어나서 하늘나라로 가자는 사상을 가진 사람은 세상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정치가 썩고, 장사가 썩고, 공무원이 썩고, 교육이 망가져도 세상은 썩었으니까 열심히 예수를 잘 믿어서 천국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세상에서 도망가려고만 한다. 이것은 피하는 신앙이다. 한편 영적인 신앙을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 재미만 느껴 자꾸 세상 물질과 쾌락을 쫓아간다. 그리고는 병든 세상 속에 빠져 버린다. 전자를 신비주의, 후자를 세속주의라 하는데 우리의 복음은 신비주의도 세속주의도 아니다. 우리의 신앙은 말씀이 세상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이다"이다. 주기도문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그렇게 살겠다는 영적 다짐을 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이 우리나라 같은 세상에서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진실해져서 진리로써 정치, 경제, 교육을 하여 이 사회가 바른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9장 2절 말씀에는 변화산의 이야기가 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예수께서는 그들 앞에 변화하여 그 옷에 광채가 나서 심희 희어졌고 도 엘리야와 모세사 나타나 더불어 말씀을 나누었다. 이 광경을 보고 베드로는 종교 신비주의자가 된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한 초막 셋을 짓고 그 곳에 머물러 살자고 예수님께 제안을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산 밑으로 내려오셨다. 그 대 산 밑은 귀신 들린 어린아이의 고통과 그 아버지의 탄식, 그리고 여러 변론자들로 인하여 뒤죽박죽인 상태였다. 이처럼 변화산 위와 변화산 아래는 성경적으로 떨어져 있지 않다. 위 아래가 같이 연결되어 있기에, 위에서 얻은 영적 체험을 아래 내려와서 베풀고 아래서 얻은 인생의 탄식은 위를 보고 부르짖어 응답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산 위의 영광이 내려와서 산 아래 세상에 능력을 베풀어 백성을 구원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정의로운 사회, 인간이 인간대접을 받고 살 수 있는 사회, 인간의 죄가 용서되고 구원을 받아서 구원의 확신과 감격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인간답게 사는 삶…. 우리의 성경적이고 영적인 삶은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구원관이다. 또 이런 구원관 안에서 바르게 사는 것이 영적인 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리 : 조정효
극동방송 라디오 예배 96.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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